기후변화총회에서 지구와 인류와 수많은 생명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 미래로 가는 경로가 결정된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회의의 핵심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 가 있는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이 생생한 해설서를 띄운다.
① 시나이산에서 한국 정부가 새길 세 가지② ‘숨은 화석상’ 후보 한국이 취할 세 가지 방향
14일 환경단체 ‘멸종저항’ 회원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바닷가에서 ‘이대로 계속 가면 죽음에 이를 것’이라며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세계기후변화총회 참가국들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케이프타운/AP 연합뉴스
이곳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현장에서는 매일 저녁 6시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바로
‘오늘의 화석상’(Fossil of the Day) 시상식으로, 전 세계 1800여 개의 기후위기 대응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기후행동네트워크(CDN)가 주관하는 행사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악영향을 주는 데 최선을 다한 ‘기후악당’ 국가를 선정해서 불명예를 안겨 준다. 기후총회에 참가하는 글로벌 시민사회의 오래된 전통이다.
화석연료 산업을 대변하거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변화하지 않는 그야말로 화석 같은 국가를 콕 집어 해학과 풍자로 비판하는 시상식은 마치 우리의 마당극을 보는 것 같다. 이번 당사국총회에서도 지금까지 일본, 이집트, 미국, 러시아, 아랍에미리트(UAE)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일본은 화석연료 투자 1위 국가라는 이유로, 이집트는 개최국이면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제한하고 화석연료 기업 로비스트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러시아·아랍에미리트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데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오명을 뒤집어썼다.
당사국 총회 협상장에서 존재감을 찾기 힘든 한국은 시민사회의 비판에서도 나름 자유롭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했을 때, 케이-팝(K-POP)·손흥민·오징어게임·기생충을 언급하며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지만, 한국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더 큰 역할을 요구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드물다. 심지어 그린피스 동료들도 30년 전 기후협약에서 개도국으로 분류되었던 한국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이제는 북유럽 5개국(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덴마크)과 영국과 네덜란드를 합친 양과 비슷하며, 1인당 배출량이 대부분의 선진국을 넘어선 지가 이미 10년이 넘었고, 이 분야의 ‘넘사벽’ 타노스(영화 ‘어벤저스’에 나오는 악당)인 미국과 별반 차이 없다고 설명하면, 통계를 보여줘야 믿을 정도이다.
2016년 4대 ‘기후악당’에 선정되고 나서 한동안은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비판이 거셌지만, ‘2050년 탄소중립’도 선언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꼼수를 포함해 40%로 강화해 제출하면서 이제는 줄어든 듯하다. 그러면 한국은 이제 기후악당에서 벗어난 걸까?
‘꼴찌에서 4등’ 성적표 받고도, 목표 낮춘 한국
마침 14일 이를 판단해 볼 수 있는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최신 성적표가 공개됐다. 매년 세계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기후변화 성과지수를 공개하는 저먼워치가 올해 평가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성적표를 받는 학생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59개국과 유럽연합이다. 과목은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에너지 사용, 기후정책 이렇게 4과목이다. 1~3위는 항상 비어 있다. 그만큼 기후위기 대응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한 국가는 아직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60위가 아니라 63위가 꼴찌이다.
기후행동네트워크가 지난 10일 이집트를 ‘오늘의 화석상’ 수상국으로 선정했다고 알리는 안내 포스터. 기후행동네트워크 제공
한국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60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국가는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밖에 없다. 이번 당사국총회에 대통령을 대신해 한국 대표로 연설한 나경원 특사는 기후변화를 두고 “우리 모두의 생존 문제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번 성적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두 해 줄었다가 다시 늘고 있으며, 전력 생산의 60% 이상을 여전히 석탄과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화석연료 퇴출 계획은 수립한 적도 없다. 세계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도 일본과 캐나다에 이어 3위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다. 그나마 지난 정부 때 조금 증가했으나, 새 정부는 이미 미흡한 2030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더 낮춰버렸다.
윤석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 참석한 나경원 기후환경 대사가 지난 8일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샤름엘셰이크/AP 연합뉴스
이것이 이번에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수학 성적이 10점도 안 나와 꼴찌인 상황에서 일단 30점으로 높이기 위한 공부 계획을 세웠는데, 제대로 몇 시간 해보지도 않고 목표를 20점으로 낮춰버렸으니 성적이 나아질 리가 없다. 이 정도면 대안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이 있듯이, 누가 한국 정부에 ‘오늘의 화석상’ 대신 ‘오늘의 숨은 화석상’이라도 수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나경원 특사 말대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한국과 같은 산업국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 2019년과 2020년에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것은 미세먼지 계절 관리제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도입의 결과였다. 윤석열 정부 역시 추가적인 정책의 도입 없이는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되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목표도 결코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과거 2020년까지 배출량 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을 약속했다가 슬그머니 폐기해 버린 것을 다시 반복할 것이 아니라면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부문의 감축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제 할당 계획을 강화된 감축목표에 맞춰서 다시 수립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기후변화 비용을 반영하여 너무 낮게 유지되고 있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 또한 국가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 상향 조정과 함께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늘리거나 투자하는 기업에는 당근을 주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채찍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력 다소비 소수 대기업에는 더 큰 책임과 역할을 부과해야 한다. 신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시점을 미리 설정하여 자동차 산업계에 전환에 대한 신호를 주고,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는 기업에는 국민연금이 투자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기업이 의무적으로 작성해 공개해야 하는 사업보고서에 기후위기 대응 관련 내용을 담도록 기후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의 정책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 효과를 거두기 위한 의지는 예산으로 표현돼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인류 생존의 문제인 시급한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충분한 재정 투입은 필수적이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둬 수십 년간 운영되어 온 경제사회 시스템을 탈탄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일은 막대한 예산 투입 없이 가능하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유럽의 그린딜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의 사례를 보아도 이는 명확하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 속에서 막대한 예산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 에너지 전환에 쓰는 것이 맞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지금 시급하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쓸 수 있는 정책을 쓰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 배, 수십 배 더 큰 비용이 적힌 청구서를 우리 사회가 받게 될 것이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