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레겐바누 바누아투 기후장관은 16일(현지시각) 이집트 샤름엘셰이크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회의장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태풍과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고 있는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의 기후장관이 한국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자 이산화탄소 배출국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랠프 레겐바누 바누아투 기후장관은 16일(현지시각)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회의장에서 <한겨레>와 만나 “한국은 (기후변화로 발생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해야 하고, (개도국이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여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겐바누 장관은 “한국은 매우 부유한 국가이고,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한 나라다. 바누아투는 이런 탄소 배출의 영향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한국이 도움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는 문제는 이번 총회의 주요 의제다. 레겐바누 장관은 “바누아투가 1991년 유엔 기후변화협상에서 ‘손실과 피해’라는 용어를 처음 소개했다”고 말했다. 바누아투는 기후위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자문 의견도 구한 상태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의견은 구속력이 있지는 않지만, 향후 전세계 기후소송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바누아투를 포함한 태평양 섬나라들은 기후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다. 미국 대기환경청(NOAA) 등 14개 기관이 지난 4월 발표한 ‘2021년 태평양 섬나라 기후변화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태평양 섬나라의 기온은 1951년 이후 평균 1.1도 올랐다. 1993년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이래 해수면은 열대 서태평양에서 10~15㎝, 열대 중앙태평양에서 5~10㎝ 상승했다. 폭염 일수도 1980~2000년대 5~16일에서 2010년대 8~20일로 늘었다. 보고서는 탄소 배출량이 적은 시나리오에서도 해수면 상승이 이뤄져 연안이 침수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로 어획량이 줄고, 산호초가 점차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레겐바누 장관은 “바누아투는 바다에 자원이 부족해져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고, 홍수로 집과 농지가 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를 복구하거나 막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든다. 그는 “바누아투는 국가 예산의 15%를 기후변화 완화에 사용하고 있다”며 “2015년에는 사이클론(태풍과 유사한 열대성 저기압) 피해 복구를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반을 썼다. 지난 10년간 1억달러(약 1339억원)의 기후자금이 바누아투로 들어왔지만, 사이클론 한번에 5억달러(약 6695억원) 이상을 썼다”고 했다.
그는 이번 총회에 대해 “지금까지는 매우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선진국들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제대로 된 재원 마련 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총회는 실패”라고 말했다.
개도국은 한국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3년간 36억원을 신규 지원하기로 한 것 외에 별다른 기금 공여를 약속하지 않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이날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 지원과 관련해 “신규 재원 수립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 정리될 것 같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샤름엘셰이크/글·사진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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