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비전홀에서 정승일 사장(맨 오른쪽)과 임원들이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정 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정승일 한국전력공사(한전) 사장이 12일 부동산 자산 매각과 임직원 임금 반납 등 내용을 담은 25조7천억의 자구안을 발표한 뒤 사의를 표명했다. 올해 2분기(4∼6월) 전기요금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한전의 추가 자구안과 정 사장의 사퇴를 내걸었던 여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다음주 초 당정 협의회를 열어 전기요금 인상안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정 사장은 이날 오전 전남 나주시 본사에서 열린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 대회’에서 자구안을 발표한 직후 “전기요금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달 28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한전의 경영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지 14일 만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6월 임명된 정 사장은 임기를 1년 정도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이념적 환경 정책에 매몰돼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 조치를 하라”고 지시한 다음날 산업부의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2차관이 교체되면서, 정 사장의 사퇴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정치권이 (전기요금 결정 등에) 개입해 한전의 정상화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인데, 일종의 망신주기 방식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이날 사의 표명 뒤 “전기요금 정상화는 한전이 경영 정상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전기요금 적기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깊은 이해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한전은 이와 관련 지난 2월 재정건전화 계획에 담긴 20조1천억원에 추가로 5조6천억원을 더 늘린 자구안을 발표했다. 2026년까지 총 25조7천억원의 재무 개선을 추진하는 새 자구안에는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를 매각 추진을 비롯해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3개 층 등 전국 10개 사옥의 임대를 추진하는 방안이 담겼다.
또 한전 및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10개 자회사의 2급(부장) 이상 임직원 4436명의 올해 임금 인상분 전체, 한전 3급(차장급) 4030명의 임금 인상분 절반을 반납하기로 했다. 아울러 2만3000명에 달하는 전체 한전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분을 반납하는 방안을 추가로 추진한다. 이와 관련해 한전 사쪽은 노조에 동참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다만 논란이 됐던 한전에너지공대에 대한 출연금(올해 1588억원 예정) 삭감은 자구안에 담기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 산업부와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가 끝나면 종합대책에 포함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전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전 상황이 워낙 어려워서 한전공대에 대한 출연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 사장의 사의 표명과 한전의 자구안 발표가 동시에 이뤄짐에 따라, 당정이 이르면 15일 당정 협의회를 열어 전기요금 인상 폭을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당과 정부 안팎에선 1㎾h당 7원 안팎의 소폭 인상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렇게 결정되면, 월평균 307㎾h를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주택용 저압) 전기요금은 5만9740원으로, 현재보다 2440원을 더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요금 인상 등을 통해 올해 하반기 영업적자를 2조원가량 줄일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올해 1분기 한전의 영업적자 6조1776억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 노조는 전 직원 임금 인상분 반납 동참에 대해 “수용할 수 없는 안”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강천구 인하대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는 “한전 적자가 1조~2조원 정도라면 자구안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현재 상태대로라면 한전 적자가 40조원이 넘어가기 때문에 이번 자구안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과)도 “자산매각 같은 경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 등을 들어 “한전 적자 해소에 도움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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