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군 어업인들이 지난 22일 완도항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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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추진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은 아무래도 ‘안전할까’인 것 같다. 하지만 안전성을 따지기 전에 먼저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한다. 최악의 원전 사고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을 수많은 생물의 삶터이자 인류 공동의 자산인 바다로 방류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방류에 부정적인 쪽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방류를 하려는 쪽에서 “따르겠다”고 하는 ‘국제 안전기준’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시설과 활동의 정당화 △보호의 최적화 △개인에 대한 위험의 제한을 방사선으로부터 인간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세가지 기본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맨 앞에 배치된 ‘정당화’ 원칙은 “방사능 위험을 발생시키는 시설과 활동은 전반적인 이익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의된다. 방사능 피해를 유발하는 활동은,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이익이 피해보다 클 때만 정당하다는 것이다.
‘최적화’는 방사선 위험을 유발하는 활동이 정당해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고, ‘위험 제한’ 원칙은 앞선 두 원칙에 따르더라도 충분한 안전 보장이 안 되니 방사선 노출의 ‘선량한도’를 지키라는 요구다. 오염수가 배출 기준만 준수하면 된다는 주장이나 심지어 마실 수도 있다는 누군가의 호언장담은 세 원칙 가운데 맨 마지막 원칙만 두고 하는 얘기다.
원자력기구는 2021년 9월부터 오염수 방류계획의 안전성을 검토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에 대해 질문해야 했지만 포기했다. 정당화를 포함한 세가지 기본원칙의 이행지침 격인 ‘공중과 환경의 방사선 방호’ 일반 안전지침(GSG)-8번을 검토 기준에서 배제한 것이다.
‘지에스지-8’은 “정당화는 방사선 방호의 범위를 훨씬 넘어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도 고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전기준에 따라 방사선 피폭의 이해당사자를 판단할 때 국경선은 중요하지 않다. ‘지에스지-8’을 적용한다면 한국과 태평양 도서국가들의 경제·사회·환경적 득실도 고려돼야 하는 것이다.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해온 태평양도서국포럼(PIF) 과학자 패널의 아르준 마키자니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달 10일 국회 토론회에서 “오염수 방류는 한국이나 태평양 도서국들에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0이기 때문에 ‘지에스지-8’을 적용하면 정당화 조건을 위반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에 따라 과학자 패널은 원자력기구의 방류계획 검토 기준에 ‘지에스지-8’을 포함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원자력기구가 ‘지에스지-8’을 검토할 책임은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있다며 거부해왔다는 것이 과학자 패널과 소통해온 양이원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쪽의 전언이다.
원자력기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계획의 안전성 검토 결과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한다. 일본이 이 보고서를 명분 삼아 다음달 밸브를 열면 오염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방류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 답이 없는 채로.
김정수 기후변화팀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