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연구기관들의 ‘12대 국가전략기술’ 관련 연구개발 예산이 올해 대비 19%가량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2대 국가전략기술은 정부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집중하기로 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모빌리티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기술을 말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박완주 의원(무소속)은 5일 전자통신연구원과 에너지기술연구원 등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연구원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수행하는 12대 국가전략기술 관련 198개 연구개발 사업에 편성된 내년 정부 예산이 5148억원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금액은 올해 예산 6322억원에 비해 1174억원(18.6%) 줄어든 것이다.
전략기술 분야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첨단로봇이다. 올해 439억원에서 내년 289억원으로 150억원 줄면서 34.3%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다음으로는 이차전지가 470억원에서 336억원으로 29% 줄었고, 인공지능(AI) 28%, 첨단모빌리티 27%, 반도체·디스플레이 26%, 차세대통신 24% 순으로 감소율이 높았다. 다만 차세대원자력 분야는 12대 전략기술 가운데 유일하게 44억원에서 45억원으로 2% 확대 편성됐다.
연구사업별로 보면 인공지능과 관련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국가지능화 융합기술 개발로 혁신성장 동인 마련’ 연구사업의 삭감액이 54억44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삭감률이 가장 높은 것은 첨단로봇 관련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과학·공학 및 산업·공공분야 초고성능 컴퓨팅 기반 구축’ 연구사업으로, 올해 42억원에서 전액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완주 의원은 “대부분의 과학기술 아르앤디는 단기적 성과 도출보다는 긴 호흡의 정부 지원이 절실한데 정부가 12개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선언하고도 정작 과기정통부 산하 연구원의 국가전략기술 연구비를 무려 19%나 삭감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10월 경제 및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올해 3월 과학기술정책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도 기술주권 및 미래성장 기반 확충을 위해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등 투자 확대를 의결했다.
하지만 정작 12대 국가전략기술의 기초를 다지는 과기정통부 산하 연구기관들에 편성된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비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도 국가전략기술에는 올해(4.7조원)보다 6.3% 증가한 5조원이 투자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5조원은 모든 부처에서 집행하는 관련 예산을 합한 것이다.
박 의원은 “국가재정운용계획과 국가과학기술자문위에서 의결한 정부의 아르앤디 투자 방향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무용지물이 됐다”며 “과기정통부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라도 당초 계획했던 미래성장 엔진을 회복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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