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 배설물을 찾아내는 ‘달인’ 경지에 오른 탐지견 ‘터커’가 배 위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사진 미국 워싱턴대 보전생물학센터 프레드 펠먼 제공
[토요판] 생명 /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크낙새는 남한에서 20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장 희귀하고 멋진 딱따구리이다. 광릉 수목원에 크낙새의 모형을 달아놓고 그 밑을 지나가면 ‘클락~ 클락~’ 하고 울도록 만들어 놓은 적이 있다. 부디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은 장치이지만, 만일 크낙새가 나타난다면 이 녹음 소리에 실제로 응답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딱따구리인 북부점박이올빼미를 조사할 때도 녹음된 울음소리를 이용한다. 미국 서북부 해안의 온대우림에 서식하는 이 딱따구리를 연방정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자 벌목 일자리 3만개가 사라진다며 큰 논란이 일었다. 이 새를 보전하려면 서식지가 어디인지 아는 것이 먼저다. 연구자들이 녹음된 북부점박이올빼미 소리를 번식기에 들려주면 영역 지키기에 민감해진 올빼미가 곧바로 반응해 울음소리를 낸다. 그런데 벌목이 이뤄지지 않는데도 이 올빼미의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북미 동부에 사는 줄무늬올빼미가 외래종으로 들어와 토종 올빼미를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외래종 올빼미에게 들킬 것을 겁낸 토종 올빼미는 과학자가 들려주는 녹음 소리에 잘 반응하지 않게 됐다.
이에 미국 워싱턴대 보전생물학센터가 내놓은 대안이 바로 탐지견이다. 암에 걸린 사람의 미묘한 체취 차이도 가려내는 개의 후각을 이용해 북부점박이올빼미가 게워내는 먹이 찌꺼기인 펠릿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센터 새뮤얼 와서 소장은 최근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 탐지견을 이용해 북부점박이올빼미를 조사했더니 87%의 확률로 이 올빼미를 탐지해 내 울음소리를 이용한 탐지 성공률 59%를 크게 앞섰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1997년부터 개의 후각을 이용한 야생동물 배설물 조사를 광범하게 해오고 있다. 조사 대상은 호랑이, 회색곰, 퓨마, 재규어, 늑대 등 다양한데, 특히 범고래의 배설물 추적이 유명하다.
야생동물의 배설물 탐지견은 유난히 집중력이 강하고 지치지 않고 놀이에 몰두하는 성격을 지닌 개에서 선발한다. 지나치게 공에 집착해 가정에서 기르지 못하고 보호소로 보낸 개가 그런 예이다. 그런 개만이 하루 종일 평원을 가로지르고 산을 오르고 눈밭을 헤치고 다녀도 마침내 주인과 공을 가지고 노는 보상을 기대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이 센터에서 범고래 배설물 추적의 ‘달인’인 터커가 바로 그런 개였다. 래브라도 레트리버 잡종견인 터커는 공놀이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 연구진은 조사선에 터커를 태우고 범고래 조사에 나선다. 범고래의 배설물은 물에 뜨는데 30분쯤 지나면 물에 풀려 사라져 버린다. 연구자들은 배설물을 수거해 분석함으로써 고래가 무얼 먹었는지, 스트레스와 영양 상태는 어떤지, 성별은 무언지, 어떤 개체인지를 알아낸다. 터커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쳐들면 전방에 배설물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개는 2㎞ 가까운 거리에서 배설물을 탐지할 수 있다. 배가 목표물에 접근할수록 개의 반응은 강해지는데, 반대로 멀어지면 개는 “뱃머리를 돌려라”라고 외치듯 뒤를 돌아본다. 물론 배설물을 수집하자마자 연구진은 터커와 공놀이를 해준다.
가축화 역사가 가장 긴 개는 야생동물보다 사람 편이다. 야생동물 사냥을 돕고 가축이 그들의 식사거리가 되지 않도록 헌신한다. 야생동물 시각에서 보면 일종의 배신이다. 이제 똥을 찾아내는 그들의 후각 덕분에 개는 야생동물 보전에 기여하는 역사적 변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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