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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문경새재 고라니 연쇄추락사

등록 2012-12-07 15:31수정 2017-09-29 21:48

물어뜯긴 채 발견 된 노루.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물어뜯긴 채 발견 된 노루.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깊은 산 어둠속의 살해… 제1용의선상에 표범
밤엔 인적 없고 수렵도 금지
야생동물 천국인 그곳
고라니 셋 절벽에서 떨어지고
노루 1마리는 물어뜯긴 채 발견

국내에 맹수는 과연 살아 있을까? 일제 때 해수 구제를 명분으로 호랑이, 표범 등이 대거 포획되면서 멸종 위기에 빠졌다. 호랑이는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포획된 뒤 표본이나 사진 등 서식 증거가 없다.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동물은 표범이다. 나무를 타고 다녀 눈에 잘 띄지 않는데다 비교적 최근까지 목격담이 나왔다. 눈밭에 찍힌 표범의 발자국은 발가락이 네 개로 발톱이 찍히지 않는다. 나무를 오른 뒤엔 송곳으로 찍어 긁은 듯한 네 줄의 발톱 자국이 난다.

지난여름 한상훈 박사(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장)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올봄 경북 문경에서 절벽에서 떨어진 고라니 사체가 잇달아 발견됐다는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취재를 시작한 건 10월 말이었다.

‘고라니 추락사 미스터리’의 무대는 해발 1106m의 주흘산 어귀의 문경새재 옛길.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벌이는 강순석(48·야생동물연합 운영위원)씨를 문경새재 앞에서 만났다. 문경시청 산림과에서 일하는 그는 고라니의 죽음에 관한 제보를 챙기고 현장을 확인한 터였다. 우리는 문경새재를 오르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 차를 통제했어요. 비포장도로 그대로 남아있죠. 요즈음 걷기 열풍이 부는데, 문경새재에서는 예전부터 1년에 세번씩 걷기대회를 했어요.”

걷기대회를 하지 않는 날인데도, 걷기대회를 하는 것 같았다. 가을 등산객들이 문경새재 옛길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낮에 붐벼도 밤에는 쥐새끼 한마리도 없어요.” “공원 같은 분위긴데요?” “저 밑에 관리사무소 당직 서는 사람 말고 없어요.”

추락사한 고라니가 처음 발견된 곳은 문경새재 제1관문 100m 좀 못 미친 지점, 걷기 인파가 흘러가는 바로 옆이었다. 작은 시냇물(초곡천)을 병풍처럼 두른 25~30m의 절벽을 강씨가 가리켰다.

“저기요?” “네, 바로 저기에서 떨어졌어요.”

지난 2월의 어느 날, 시냇물 위로 떨어진 고라니를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침 순찰 도중 발견했다. 두번째 추락사는 며칠 뒤 깊은 산속에서 발견됐다. 제1관문에서 약 1㎞ 떨어진 여궁폭포 아래에 고라니가 죽어 있었다. 절벽의 높이는 약 20m.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벼랑의 끝이 보였다.

맹수에게 쫓겼을 가능성 커
호랑이 등 이미 자취 감췄지만
표범은 최근까지 목격담 전해져
백두대간 따라 내려왔을 수도

문경시청 공무원들이 세번째로 고라니를 발견한 곳은 <한국방송> 드라마 촬영장 입구의 높이 3m 초곡천 제방 아래였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도랑에 처박혀 죽었다’고들 했다. 높이 폴짝폴짝 뛰는 고라니가 고작 도랑에 처박혀 죽다니. 강씨가 드라마 촬영장을 가리켰다.

“무언가에 쫓긴 게 틀림없어. 산에서 내려와 허겁지겁 촬영장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그만 계곡으로 처박은 거겠죠.”

둘러보니 드라마 촬영장은 번잡한 마을처럼 보였다. 강씨가 “밤에는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문경새재는 낮에는 사람, 밤에는 동물의 땅이 된다. 거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밤에는 한시적인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될 만했다. 동물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동물은 산 깊은 곳에 살지 않는다. 동물은 사람 주변에 붙어산다. 들개와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여우, 너구리, 고라니, 호랑이도 그렇다는 말이다. 옛날에도 밤이 되면 고라니는 농작물에 손을 대고, 호랑이는 동네 가축을 훔쳐 먹고 살았다. 2011년 국립생물자원관 조사를 보면, 고라니는 가로세로 1㎞ 정사각형 땅에 7.3마리가 산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이유는 고라니가 밤에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산악지대에는 7.6마리, 구릉지대에는 7.1마리가 산다. 고라니는 깊은 산속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문경새재의 주요 서식종은 고라니, 노루, 너구리다. 1980년대만 해도 오소리가 많았는데, 오소리 쓸개가 반달곰에 못지않다고 해 밀렵으로 급격히 줄었다.

지난 2월께 문경새재에서 잇달아 고라니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맹수에 쫓기다가 추락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번째 발견 지점인 여궁폭포의 절벽을 기자가 가리키고 있다. 문경/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월께 문경새재에서 잇달아 고라니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맹수에 쫓기다가 추락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번째 발견 지점인 여궁폭포의 절벽을 기자가 가리키고 있다. 문경/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렇다면 고라니는 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을까? 네번째 희생자는 고라니가 아니라 노루였다. 노루는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 길 건너편 숲에서 발견됐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데도 산죽밭 사이로 희미한 길의 흔적이 있었다. 과거 윗마을 동화원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라고 했다. 사람이 다닌 길은 동물도 다닌다. 강씨가 멈춰섰다.

“바로 여기서 발견됐어요. 목덜미가 뜯긴 채였죠. 맹수가 노루의 등을 꽉 누르고 목살을 먹은 거지.”

발견 당시 노루의 등에는 할퀸 자국이 있었고 목덜미 부위는 가죽만 남았다고 했다. 노루를 공격한 맹수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남한에서 호랑이, 스라소니, 표범, 늑대 등 중대형 포유류는 보인 지 오래됐다. 요즈음 목격되는 포유류는 삵과 여우, 오소리 정도다. 그럼, 삵이 그런 건 아닐까? 강씨는 고개를 저었다.

“삵은 이렇게 큰 노루를 공격 못해요. 발견 당시 노루의 몸길이가 102㎝, 키가 68㎝였어요.”

“밀렵 가능성은 없을까요?”

“할퀸 자국을 봤어요. 게다가 밀렵꾼은 고라니 안 잡아요. 재수 없다고. 고라니는 영이 높아.”

“영이 높다고요?”

“똑똑하단 말이죠. 영이 높은 고라니를 잡아먹으면, 영이 여섯달을 (사람에게) 붙어산다고. 어렸을 적 동네 형과 고라니를 키운 적이 있어요. 개보다 똑똑해. 산에 돌려보내는데 고라니가 흐느끼며 울더라고….”

문경새재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고라니와 노루의 죽음은 여러모로 미스터리다. 정말로 맹수의 짓일까? 맹수가 아직 살아있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동물은 표범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3일 한상훈 박사는 “누군가 사냥개를 데리고 수렵했다면 고라니가 놀라 도망가다 떨어질 수 있는데, 문경새재 주변은 수렵금지지역이다. 그렇지 않으면 맹수에게 쫓긴 건데, 그렇다면 목격담이 나오는 표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자취가 사라진 호랑이에 비해 표범은 꽤 오래 목격담과 생존 증거가 나왔다. 1960년대 초반까지 간간이 생포된 표범은 2002년 국립환경과학원이 강원 인제군 민간인통제선 부근에서 발자국(추정)을 발견한 게 가장 최근의 기록이다. 2006년 8월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사무국장은 경북 봉화와 강원 태백에 걸쳐 있는 면산에서 표범을 봤지만 사진은 찍지 못했다. 4일 조 국장이 말했다. “바위 위에 서 있는데 아래에서 톱을 줄로 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무엇인가 해서 신갈나무를 톡톡 쳤는데, 바위 아래에서 짐승이 기어 나왔죠. 표범이었어요. 어른 허리 정도의 키에 큰 셰퍼드 정도 되는 몸집이었어요. 천천히 걷다가 나를 훌쩍 쳐다보곤 사라지더군요.”

주흘산과 조령산 주변에서도 간혹 표범을 봤다는 얘기가 떠돌곤 했다. 백화산 아래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 등은 하도 산골이 깊고 범이 출몰해 사람도 무서워 들어가길 꺼린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고라니 추락사의 의문점은 또 있다. 왜 하필이면 올해에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1993년부터 문경새재 인근의 사유림을 관리한 대성합동지주의 장영두(49)씨도 그간 동물 추락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는 흔하지만 맹수가 눈에 띈 적은 없었어요. 고라니가 떨어져 죽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만약 미지의 맹수의 짓이라면, 다른 지역에 살던 개체가 어떤 이유에서 들어왔을 수 있다. 표범의 서식권은 8~63㎢에 이를 정도로 넓다. 서식지 변화나 먹이 부족 등으로 표범이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왔을 수 있다. 벼랑에서 떨어진 고라니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추락 직후 동물의 털이나 타액 등 유전자 분석 등 사후연구를 진행했다면, 공격한 동물을 알아내는 의도치 않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문경/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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