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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바퀴벌레는 어떻게 좀비가 되었나

등록 2012-12-14 19:54수정 2012-12-14 19:55

[토요판] 생명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너무나 놀라운 상황에 닥치면 악몽 속에서처럼 ‘발이 안 떨어진다.’ 감각과 운동 신경은 작동하지만 뇌가 충격을 받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바퀴벌레를 ‘좀비’로 만드는 말벌의 일종은 바로 이런 수법을 쓴다.

이 벌은 숙주인 미국바퀴를 만나면 정교한 침을 바퀴의 목에 놓고 굴을 파러 떠난다. 바퀴는 넋이 나간 듯 도망도 가지 않고 더듬이로 열심히 몸을 손질한다. 돌아온 말벌은 더듬이를 끌어 바퀴를 산 채로 묻고 알을 낳은 다음 낙엽 등으로 덮는다.

바퀴가 저항은커녕 순순히 끌려가는 이유는 몸이 마비돼서가 아니다. 말벌이 뇌 신경절에 독물을 주입해 일종의 ‘뇌수술’을 했기 때문에 상황을 뻔히 알고 느끼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기생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만큼 길다. 그 가운데서도 앞서 말벌처럼 숙주의 신경계를 하이재킹해 좀비로 만드는 것이 가장 ‘악질적’이다. 숙주의 창자를 그득 채우고 영양분을 가로채는 촌충은 오히려 순진한 편이다. 이런 기생동물은 숙주에서 가장 취약한 부위인 뇌를 조작해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숙주를 좀비로 만드는 ‘신경 기생’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잘 알려진 유형은 상대를 숙주가 쉽게 잡아먹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흡충에 감염된 옆새우는 이상하게 물 표면으로 도망쳐 흡충의 숙주인 물새가 잡아먹기 좋도록 한다.

기생동물이 숙주를 자신의 번식지로 이끄는 것도 흔하다. 최근 널리 알려진 연가시가 그런 예이다. 연가시에 감염된 메뚜기나 사마귀는 미친 듯이 개울로 뛰어들어 자살하는데, 거기서 연가시는 숙주의 몸에서 빠져나와 번식한다.

전염을 가속시키는 유형도 있다. 병을 옮기는 벼룩은 피를 잘 빨지 못한다는 사실이 10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병원체가 위의 앞부분을 가로막아 피를 잘 빨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이 차지 않은 벼룩은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옮겨다니고, 그 과정에서 병원체를 확산시킨다. 감염된 모기에게서도 이런 현상이 발견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최근 관심을 모으는 것은 경호원 유형으로 숙주의 몸속에 알을 낳는 기생벌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어떤 애벌레는 자기 몸속의 기생벌 애벌레가 몸을 뚫고 나가도 바로 죽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 번데기가 되는 기생벌 위에 자리를 잡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포식자를 쫓는다. 반쯤 마비된 상태에서 기생자의 고치 위에 올라타고 사방을 경계하는 무당벌레도 있다.

신경 기생에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고양이과 동물의 창자에서 번식하는 톡소포자충(톡소플라스마 곤디)이라는 원생동물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의 소변 냄새에 이끌리는데, 남성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 겁이 없어지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모두 고양이에게 쉽게 잡아먹히도록 원생동물이 유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생동물은 사람에게도 감염돼 뇌 속에 낭종을 형성하며, 정신분열병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된 남성은 더 남성적이고 감염되지 않은 사람보다 키가 3㎝나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독감 백신을 맞은 사람은 맞기 전보다 더 활발해져 사람들과 많이 만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 과정에서 독감 바이러스가 번져나간다. 좀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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