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이별의 공포 아는 개·고양이라면 나를 찍어라

등록 2013-06-07 19:47수정 2013-06-08 16:49

서울 마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물병원 생활협동조합인 ‘마포우리동물병원 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은 지난달 말 창립총회 때 ‘사람 대표’와 함께 ‘동물 대표’를 뽑았다. 정관도 사람 회원용과 동물 회원용을 따로 만들었다. ‘개껌 하나의 행복’을 표어로 내세워 초대 동물대표에 선출된 보리. 우리동생 제공
서울 마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물병원 생활협동조합인 ‘마포우리동물병원 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은 지난달 말 창립총회 때 ‘사람 대표’와 함께 ‘동물 대표’를 뽑았다. 정관도 사람 회원용과 동물 회원용을 따로 만들었다. ‘개껌 하나의 행복’을 표어로 내세워 초대 동물대표에 선출된 보리. 우리동생 제공
[토요판/생명] 동물대표 선거
▶ 서울 마포에서 동물 대표를 뽑는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동물병원 생활협동조합인 ‘마포우리동물병원 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에서는 지난달 말 ‘사람 대표’와 함께 ‘동물 대표’를 동시에 뽑았습니다. 예비선거를 거친 4마리의 개·고양이가 나와 동물병원 ‘대표님’ 자리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 과정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동물병원 생활협동조합인
‘우리동생’ 동물대표 선거에
무척 진지하게 입후보한
개와 고양이 각각 두 마리

1차 선거에서 3위 그쳤던
‘개껌 하나의 행복’ 보리가
2차에서 동생이한테 극적 역전승
동물병원 모델 하며 조합 홍보

선거가 시작됐다. 국내 처음으로 시도되는 동물병원 생활협동조합인 ‘마포우리동물병원 생명협동조합’(약칭 우리동생)은 사람 대표와 함께 동물 대표도 뽑기로 했다.

1차 선거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름 덕택이었을까? 코리안쇼트헤어 고양이 ‘동생’이 1위를 차지했다. 호야, 보리, 실마리가 뒤를 이었고 ‘꼴찌’를 한 사랑이는 2차 선거에서 제외됐다. 우습다고? 우리동생은 선거 알림판에 ‘우리들은 무척 진지합니다’고 밝혔다. 어쨌든 산전수전 다 겪은 동물 후보들의 삶은 진지했다.

마포우리동물병원 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의 동물대표 선거에 입후보한 보리, 동생, 실마리, 호야가 나온 선거포스터. 보호자가 직접 정견발표문을 작성해 인터넷에 올리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투표가 진행됐다. 우리동생 제공
마포우리동물병원 생명협동조합(우리동생)의 동물대표 선거에 입후보한 보리, 동생, 실마리, 호야가 나온 선거포스터. 보호자가 직접 정견발표문을 작성해 인터넷에 올리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투표가 진행됐다. 우리동생 제공
■ 출마소견문(요약)

개껌 하나의 행복-보리 일본을 가야 한다며 한 분이 보리와 보리 새끼 세 마리를 인터넷 카페에 내놓았습니다. 새끼들은 예뻐서 바로 입양이 되는데, 믹스견인 보리는 안락사 위기까지 몰렸다가 나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막상 집에 데리고 와 보니 입질도 심하고 사료를 거부하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구석진 자리만 찾아다녔습니다. 체벌 위주로 복종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끝까지 이해심을 발휘했습니다. 1년 반 뒤, 보리에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 훈제 닭을 시켜 먹는데 어느새 패턴을 이해하고 배달음식 책자 앞에서 ‘아웅~’거리며 조릅니다. 전화 주문 뒤에는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5분 뒤에 보채기 시작합니다.

보리의 옛 주인이 부르던 이름을 슬쩍 불러봤습니다. 고개를 휙 돌리더니 슬프디슬픈 표정으로 뚫어져라 나를 응시합니다. 보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날 이후 보리의 옛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보리는 주인이 바뀌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별에 대한 공포감 때문인지 잠깐 떨어지기만 해도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합니다.

반려동물이 주인과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고통을 잊기 위해 강아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보리의 사례를 통해 유기견의 고통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다음 포털 아고라 메인페이지에도 몇 차례 소개된 적 있는, 미모 또한 자신만만한 보리를 지지해주셔요.

노령 고양이의 노련함-동생

서울 망원동에 사는 임국희입니다. 남편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와 삽니다. 생협 가칭이 ‘우리동생’으로 결정됐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고양이 이름이 ‘동생’이거든요. 동생이는 11년 전 남편이 입양했고, 집안에서 막내인 제 남편이 이 고양이가 자기의 첫째 동생이라며 ‘동생’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대요. 동생이는 11살, 수컷, 코리안쇼트헤어(한국 길고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종)입니다. 흰 장갑, 흰 장화를 완벽히 소화하는 늠름한 턱시도 무늬를 지녔습니다. 겁이 많지만 사람을 잘 따르고 캔사료를 먹을 때는 손을 쓰는 똑똑한 고양이입니다.

우리 동생이가 동물 대표가 된다면, 11년 동안 무탈하게 살아온 노령묘의 노련미로 우리동생의 당당한 얼굴이 될게요! 우리 동생이를 뽑아주세요!

장애견이 뛴다!-실마리

2008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폭스테리어, 실마리입니다. 저는 아주 호기심 많은 견이에요. 크리스마스에 산책 나갔다가 도망가는 쥐를 쫓아 센강 한가운데 몸을 던진 적도 있어요.

2010년 여름이었어요. 우리 식구들이 이사를 해서 나도 새집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있었어요. 마침 대문 밑에 조그만 틈이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알 게 뭐예요. 구멍으로 나가봤죠. 새 세상이었어요. 달리다 보니 길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뒤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하룻밤이 지나고 마취제에 취한 내가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울면서 달려온 언니를 본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나긴 나네요. 왼쪽 뒷다리가 세 조각으로 동강이 난 채 쓰러진 저를 누군가가 신고해서 경찰 아저씨가 수의사에게 데려다 줬고, 제 귀에 있는 식별번호 덕분에 언니와 오빠가 저를 찾아내게 된 거죠.

그 사고로 왼쪽 발가락이 하나 없어졌어요. 지금은 많이 회복돼 한국에 와서도 청계천을 뛰어놀며 잘 살고 있어요. 사실 저는 프랑스의 애완동물 식별시스템 덕분에 목숨을 구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우리 언니들은 한국에 와서도 제일 먼저 제 목에 식별표를 달아줬어요. 새로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꼭 권하곤 하죠.

난 커다란 포부나 공약은 없지만요, 한국에 사는 많은 제 친구들이 주인들과 끝까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제 한 몸 다 바쳐,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열심히 뛰어볼게요!

제가 호야다, 이 말씀입니다-호야

홍대 ‘힙’ 고양이 호야입니다. 서울 서교동에서 김소연, 고세진 집사와 8년째 살고 있습니다. 인간과의 소통은 대변인 지오씨(함께 사는 고양이)를 통해서 하고 있고요. 싱크대 설거지 더미에서 라면 국물 같은 걸 떠먹고 다니는, 뭐, 그저 그런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동물 대표를 나섰느냐!!!! 바로 집사들 때문입니다. 저는 똥오줌도 구분 못하는 어린 나이부터 고세진 집사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무섭다는 길 위의 추위와 배고픔을 잘 모릅니다. 매일 저의 똥이나 치우고 살던 집사들이 어느 날부턴가 늦은 밤에 제 사료를 들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씩 근본도 알 수 없는 고양이와 개들을 집으로 들여 씻기고 먹이고 재우더군요.

대변인 지오씨를 통해 알아본 결과, 많은 고양이와 개들이 우리가 그들보다 하찮다는 선입견을 가진 인간들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 했습니다. 병원 의료비와 시스템 문제로 좋은 집사를 거느리고도 믿음 가는 주치의를 만나지 못한다고도 했습니다. 집사들에게 버림받고 길 위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남은 생애 동안 집사를 독차지하고 편안한 여생을 지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우리동생’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말씀입니다. 마포에서만이라도 고양이, 개와 집사들이 걱정 없이 가족을 이루고, 다시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나섰다, 이 말씀입니다.

동물대표 선거는 지난달 23일 낮부터 24일 밤 12시까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대국민 소셜선거’ 방식으로 진행됐다. ‘좋아요’가 눌러지거나 ‘리트위트’ 될 때마다 한 표씩 받는 것으로 쳤다. 결과는 의외였다. 1차 선거에서 3위에 그쳤던 ‘개껌 하나의 행복’ 보리가 65표를 획득해, 40표를 얻은 2위 동생이를 제치고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개와 고양이의 싸움에서 개가, 조합원 대 비조합원의 표 경쟁에서 비조합원이 이겼다고 주변 사람들은 분석했다. 보리는 조합 밖의 일반인 표를 많이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4일 보리 언니 송인숙(42)씨와 인터뷰를 했다.

-극적인 역전승을 올리게 된 이유는?

“조합원들 대부분이 고양이를 키워 고양이가 유리한 상황이었거든요. 나는 페이스북, 트위터의 팔로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링크와 리트위트를 부탁하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했어요. 그게 주효한 거 같습니다.”

-앞으로 포부는?

“보리는 원래부터 인기 강아지였어요. 다음 아고라에도 팬이 많아요. 앞으로 동물병원 모델 등 우리동생 홍보활동에 나서야죠. 음, 동물대표 인사말부터 써야겠군요.”

창립 초기부터 참여한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김효진 이사는 우리동생이 ‘다른 동물병원’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동물병원에는 정해진 의료수가가 없어 진료·치료비가 천차만별이다. 김효진 이사는 “노령견이 병원에 가면 몇십만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과잉진료도 있는데, 보호자들이 잘 모르다 보니 병원을 믿지 못한다. 이런 고민에서 우리동생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리동생은 저소득층 보호자와 동물에게 도움을 주는 등 사회적 연대도 실천할 계획이다. 김 이사는 “높은 진료비 때문에 유기견이 생겨난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동생의 출자금은 5만원이다. 6월1일 현재 149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우리동생은 내년께 동물병원 개원을 목표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사람 대표는 지난달 25일 열린 창립총회에서 정경섭(41) 마포 민중의 집 대표가 선출됐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시민 10만명, 체감 -10도에도 “내란 안 끝나” 분노의 집회 1.

시민 10만명, 체감 -10도에도 “내란 안 끝나” 분노의 집회

“작은 윤석열까지 몰아내자” 대학생들 극우 비판 시국선언 [영상] 2.

“작은 윤석열까지 몰아내자” 대학생들 극우 비판 시국선언 [영상]

건물도면 올리고 “척살” 선동…‘헌재 난동’ 모의 커뮤니티 수사 3.

건물도면 올리고 “척살” 선동…‘헌재 난동’ 모의 커뮤니티 수사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4.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누나 생일엔 일어나길 바랐지만…6명에 생명 주고 간 방사선사 5.

누나 생일엔 일어나길 바랐지만…6명에 생명 주고 간 방사선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