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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등지느러미 없는 돌고래를 아십니까

등록 2013-11-15 20:07수정 2013-11-17 20:05

2~3마리 정도 무리지어 다니는 상괭이는 몸길이가 1.5~2m까지 자라는 ‘작은 돌고래’다. 등지느러미가 없고 몸 옆에 붙은 지느러미는 달걀 모양이다. 새끼 때는 몸의 색이 흙색이지만 자라면서 흑갈색으로 변하고 회백색이 된다. 위키미디어 공용
2~3마리 정도 무리지어 다니는 상괭이는 몸길이가 1.5~2m까지 자라는 ‘작은 돌고래’다. 등지느러미가 없고 몸 옆에 붙은 지느러미는 달걀 모양이다. 새끼 때는 몸의 색이 흙색이지만 자라면서 흑갈색으로 변하고 회백색이 된다. 위키미디어 공용
[토요판] 생명 / 여수 앞바다의 상괭이
▶ ‘상괭이’라고 하니, 누가 ‘살쾡이(삵)’냐고 물었습니다. 또 누구는 ‘돌고래 새끼’라고 불렀습니다. 상괭이는 크기가 작은 돌고래의 한 종류입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이 정하는 부속서 1급에 속하는 보호종이지요. 이렇게 귀한 상괭이의 최대 서식지가 서해와 남해 연안입니다. 전남 여수 바다에서 상괭이를 보고 왔습니다. 여수환경운동연합은 여수 바다에서 2년 동안 500마리 넘는 상괭이를 관찰했다는군요!

고래를 보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하늘은 높고 맑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파고는 1~1.5m로 높은 편이었다. 보통의 돌고래처럼 삼각형의 등지느러미가 없는 돌고래, 상괭이를 눈으로 관찰하기에 바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아침 전라남도 여수 국동 어항단지에서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1.99톤의 작은 배는 시속 26노트의 빠른 속도로 하얀 물보라를 만들며 수면 위를 내달렸다. 오전 11시30분 여수에서 동남쪽으로 25㎞ 떨어진 섬 금오도와 월호도, 개도 사이 바다에서 성난 엔진 소리가 멈췄다. 상괭이가 자주 보인다는 곳이었다. <한국수산과학학회지> 2010년 2월호에 실린 ‘남해안 상괭이의 분포’ 글에서도 이곳을 지목했다.

“상괭이는 부끄러움이 많은 돌고래예요. 돌고래처럼 선박에 가까이 붙어 선수파를 타고 놀지 않고 사람을 경계하죠. 조용해지면 나타나는데 어떤 날에는 ‘푸우’ 하고 상괭이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요. 섬 세 곳에 인접한 이곳이 상괭이가 제일 많이 나타나는 곳이에요.”

2012년 7월부터 20회 이상 여수 바다에서 상괭이를 목시조사(눈으로 관찰)해 온 여수환경운동연합 박근호(45) 해양환경위원장이 설명했다. 배의 시동을 끄고 상괭이를 기다렸다. 고정된 부표가 떠내려가는 것같이 푸른 물살이 속도감 있게 움직였다. 물살 때문인지 배는 계속 제자리에서 밀려나 표류했다. 얼마가 흐른 뒤, 박 위원장이 소리쳤다.

“상괭이다! 11시 방향!”

고개를 돌려 보니 흑갈색의 원기둥 두 개가 수면 위로 쑥 올라왔다. 배에서 개도 방향으로 5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두 원기둥은 큰 고무타이어가 구르듯이 미끄덩 물을 타고 넘었다. 매끈한 상괭이 몸이 눈 깜짝할 사이 바다 위에 드러났다 사라진 것이다. 상괭이의 등지느러미는 융기한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돌고래보다 상괭이의 몸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멀리서 유영하는 상괭이의 몸이 시골집 담을 넘는 큰 구렁이같이 유연해 보였다.

지난달 30일 여수 동남쪽 25㎞ 금오도와 월호도, 개도 사이에서 상괭이 2마리를 보았다. 고무타이어 같은 상괭이의 몸이 찰나의 순간 물 위를 지나갔다.  여수/최우리 기자
지난달 30일 여수 동남쪽 25㎞ 금오도와 월호도, 개도 사이에서 상괭이 2마리를 보았다. 고무타이어 같은 상괭이의 몸이 찰나의 순간 물 위를 지나갔다. 여수/최우리 기자

상괭이와의 숨바꼭질은 1시간 남짓 계속됐다. 배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2~3마리씩 상괭이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금모래가 부서지듯 반짝이는 수면 위로 올라온 상괭이의 머리나 몸통이 10여차례 더 발견됐다. 지난 2년간의 목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여수지역 상괭이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한 여수환경운동연합 정비취(28) 간사가 말했다.

“고래는 다 높게 점프하는 줄 알았는데 상괭이는 조용히 헤엄쳐요. 신비롭죠. 여수 사는데도 상괭이 조사 및 보호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상괭이에 대해 잘 몰랐어요.”

여수환경연합의 보고서를 보면 여수 바다 화태도, 하화도, 금오도, 월호도 등지에서 올해만 약 470마리의 상괭이가 발견됐다.

둥근 머리, 작은 눈, 매끈한 등. 상괭이는 쇠돌고래과(크기가 작은 돌고래)에 속하는 해양포유류다. 해안선에서 5~15㎞ 이내 떨어진, 수심이 얕은 곳에 서식한다.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만에서, 동쪽으로는 인도, 중국, 우리나라 연안을 따라 일본 북부까지 발견된다. 아시아 연안에서만 분포하는 특별한 돌고래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취급에 관한 국제조약’(CITES)에서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여수 바다에 나타난 상괭이는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상괭이는 조용히 헤엄쳐요”
3만6000마리 사는 서해는
상괭이의 최대 서식지다 

아시아 연안에만 분포하는
멸종 위기 보호종이지만
지난해 2189마리 혼획돼
부산 아쿠아리움에 전시된
상괭이 2마리는 방류 기다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가 상괭이의 최대 서식지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05년 서해에 사는 상괭이 수를 3만6000마리로 추정했다. 일본 규슈 연안에 사는 걸로 추정되는 개체수가 3000마리, 홍콩 연안의 상괭이가 200여마리인 것과 비교해 보면 훨씬 많은 수다. 국내에서 아직 상괭이에 대한 연구는 깊이 이뤄지지 않았다. 서해안 상괭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의 박겸준 박사가 12일 설명했다.

“우리 바다가 상괭이의 최대 서식지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죠. 한·중·일 말고는 상괭이에 대한 연구가 없어요. 우리도 남해안 상괭이나 상괭이 이동경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고요. 서해와 남해 연안에서 사계절 내내 상괭이가 관찰되고 있어 계절적으로 상괭이들이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정도예요.”

상괭이는 어민들에게는 ‘친숙한’ 존재였다. 조선시대 정약전의 책 <자산어보>에서도 ‘상광어’라고 상괭이를 소개해두었다. 지역에 따라 상괭이는 ‘상쾡이’, ‘쇠물돼지’, ‘시욱지’, 돌고래라는 이름의 ‘곱시기’로도 불렸다. 지난달 30일 여수 금오도 함구미 마을 입구에서 어구를 손질하던 주민 나상갑(76)씨는 사진을 보고 바로 상괭이를 알아차렸다. 여수 쪽 바다를 가리키며 나씨가 말했다. 그는 ‘상쾡이’라고 불렀다.

“요리로도 가고 저리로도 가고 수없이 봤어. 어쩌다 물에 밀려서 죽은 게 떠밀려 와. 70년대 유자 농사 짓는데 나무 아래 두면 이게 기름이 나온단 말이야. 거름이 되니까 과실이 굵은 게 맺혀. 지금은 상괭이가 많이 줄었어. 사람한테는 피해 안 줘. 이게 지나가면 물고기가 도망가서 그렇지. 어민들이 피해 보는 건 없어.”

연안을 헤엄치는 상괭이에게 가장 큰 위협은 다른 고래와 마찬가지로 혼획(그물에 걸림)이다. 지난해 혼획된 상괭이만 2189마리. 매년 2000여마리의 상괭이가 그물에 걸린다. 고래류 중 상괭이의 혼획량이 가장 많다. 지난 6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58차 국제포경위원회(IWC) 과학위원회에서 펴낸 연례회의 보고서를 보면 외국의 과학자들은 한국 바다에 사는 상괭이의 혼획량이 많은 것을 염려했다.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다음 회의까지 상괭이의 혼획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원회에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부산 아쿠아리움 전시장엔 정치망에 걸렸다가 구조된 2마리의 상괭이가 있다. ‘동백’, ‘바다’(수컷·4살 추정)라는 이름의 상괭이 2마리인데, 지난 2월 거제 이수도의 한 정치망에 걸렸다가 어민의 신고로 구조돼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부산 아쿠아리움이 방류한 상괭이 ‘누리’와 ‘마루’처럼 동백과 바다도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학위원회는 우리 바다에 사는 상괭이의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2011년 2~4월 상괭이 249마리가 새만금호에서 집단폐사한 사건이 있었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바닷물을 따라 1만1800㏊ 크기의 새만금호 안에 들어온 상괭이들이 수면이 얼어붙자 숨을 쉬러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해 질식사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 1년, 지난해 상괭이는 새만금호를 찾아오지 않았다. 한 해가 더 지나자 상괭이가 새만금호에 돌아온 것이 확인됐다. 올겨울 상괭이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새만금호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 환경관리팀 김상진 계장이 설명했다.

“2015년에 새만금호의 담수화 여부를 결정해요. 담수화하기로 하면 호수 안에 사는 상괭이들은 포획해서 바다로 내보내야겠죠.”

“2015년까지 겨울마다 호수의 물이 얼면 어떡하나요?”

“상괭이가 주로 발견되는 곳이 군산 신시도 배수갑문과 가력도 배수갑문 근처예요. 바닷물과 담수의 경계 지점인데 수심이 깊은 곳이라 그쪽은 사실 물이 잘 얼지 않아요. 그래도 호수의 물이 얼지 않도록 배를 타고 들어가 호수의 얼음을 깨뜨리는 방법을 고려중입니다.”

여수/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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