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비싼 커피가 된다는 이유로 야생 사향고양이는 비좁고 지저분한 우리에 갇힌 채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어야 한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사육되는 사향고양이가 수만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플리커, BY-SA
[토요판] ‘루왁 커피’의 불편한 진실
식민지 시대 가난한 농부들이 몰래 먹던 커피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똥 누는 기계로 만들다
식민지 시대 가난한 농부들이 몰래 먹던 커피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똥 누는 기계로 만들다
▶ 인간의 탐욕, 자본의 탐욕은 어디까지일까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다가 광우병이 창궐했고, A4용지 면적보다 작은 닭장에서 알 낳는 기계로 암탉을 키우다 조류인플루엔자가 퍼졌습니다. 평생 몸통 한번 돌리지 못하는 우리안에서 돼지를 사육하다 구제역이 번져 수백만마리를 산 채로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값비싼 고급커피 이면에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사향고양이를 소개합니다.
서울 장충동의 신라호텔에 가면 한 잔에 4만9000원인 커피가 있다. 바로 원두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루왁커피(luwak coffee)다. 이 커피는 독특한 생산 과정으로 유명하다.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인도네시아어 luwak, 영어 civet)의 대변에서 채취한 원두가 바로 루왁커피의 원재료다. 커피 열매는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껍질과 과육만 제거된 채 원두가 온전한 상태로 변과 함께 배출된다. 특히 소화기관의 효소는 원두를 발효시키며 특유의 떫고 구수한 풍미를 만든다. 그렇게 똥에 섞여 나온 원두를 씻어서 살짝 구운 뒤 갈아서 뜨거운 물로 내리면 커피가 완성된다. 생산 과정이 독특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한정되고, 이로 인해 루왁커피 원두는 커피 품종들 가운데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국내에서 루왁커피는 100g에 10만~40만원을 호가하고, 대한항공 기내면세점에선 150g의 루왁커피 분말을 128달러에 판매한다. 국내외의 동물보호단체는 ‘최고급 커피’로 알려진 루왁커피의 이면에 동물학대라는 추악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커피열매 먹은 사향고양이의
똥에 섞여 나온 원두를 구워
뜨거운 물로 내린 최고급 커피
<버킷 리스트> 영화로 알려진 뒤
수요 늘자 고양이 가둬놓고 생산
수마트라섬의 농장을 찍은
한 동물보호단체의 폭로 영상
닭장처럼 비좁은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들 이상행동 보여
스트레스로 수명도 대폭 단축 “야생에서 채취했다”며 라벨 조작도 아시아 지역의 동물보호단체인 페타아시아(PETA Asia: People for the ethnical treatment of animal)는 지난해 10월30일 사향고양이의 사육 실태가 담긴 비디오 영상을 공개하며 루왁커피의 소비를 거부(보이콧)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한 농장에서 찍힌 이 영상을 보면, 야생에서 잡힌 사향고양이들이 닭장처럼 비좁고 지저분한 우리에서 커피 열매를 먹으며 생활한다. 갇힌 사향고양이들은 좁아진 공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리 안을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이상행동을 보이고, 자신의 팔다리 털을 물어뜯기도 한다.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는 수명도 줄어든다. 야생에서의 평균 수명이 10~15년이지만, 우리에 갇히면 불과 2~3년밖에 살지 못한다. 페타아시아는 “현지 농부의 말을 종합하면 사향고양이가 우리 안에서 지내는 기간은 최대 3년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감금에 대한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더이상 루왁커피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면 다시 사향고양이를 야생에 방사하고, 그중 대부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페타아시아의 제이슨 베이커 부회장은 “루왁커피를 구매하는 것은 동물학대를 지지하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페타아시아가 3개월간 실시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의 사향고양이 농장 현지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페타아시아 쪽은 ‘야생에서 채취된 커피(wild-sourced)’임을 인증하는 라벨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페타아시아는 “야생에서 채취됐다는 문구가 있는 제품들도 상당수 좁은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에게서 얻은 루왁커피이고, 현재 판매되는 수준의 양을 야생에서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페타아시아는 사육된 사향고향이에게서 채취한 커피에 ‘야생에서 채취된’이란 라벨을 붙였다는 이유로 체눙코피루왁(Che Nung Kopi Luwak)이란 업체를 고소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인 <자카르타 포스트>는 체눙코피루왁이 한달에 300㎏의 루왁커피를 생산하며 생산량의 10%를 중국에 수출하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루왁커피가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2007년 한 영화에 소개되면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돼 2007년 전세계에 개봉된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 잭 니컬슨이 죽기 전에 마시고 싶은 음료로 ‘루왁커피’를 꼽았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2009년 7월 신라호텔이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핸드드립 전문점들과 카페 가맹점 등이 루왁커피를 팔았다. 신라호텔 직원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는 아니지만, 하루에 1~2잔씩은 꾸준히 판매된다”고 말했다. 2011년 4월 문을 연 서울 강남의 칼릭스서울이라는 카페에서는 100% 루왁커피를 한 잔에 4만원에 팔고 있고, 커피전문점 ‘벨라빈스’는 루왁커피 가루를 섞은 블렌딩 커피를 대표 메뉴로 내세워 마케팅을 한다. 벨라빈스는 자사의 루왁커피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자연산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원두커피의 소비가 급격히 느는 한국이 루왁커피의 새로운 소비처로 부상중이다. 문제는 주요 선진국들이 루왁커피를 소비하는 양을 맞추기 위해선 공장식 축산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동물자유연대의 이형주 팀장은 “야생 사향고양이로부터 얻는 루왁커피로는 지금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농장마다 수백개의 비좁은 우리에 대규모로 사육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의 동물보호단체들은 루왁커피의 생산 실태를 알리기 위해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대한항공 기내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루왁커피의 불매운동을 지난해 5월부터 시작했고, 동물자유연대 역시 “루왁커피 생산량의 대부분이 동물학대의 산물인 만큼 수입과 판매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형주 팀장은 “해외에서는 루왁커피 제조 과정에서의 동물학대를 인지하고서 판매 중단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동참하는 기업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판매 중지에 동참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싱가포르의 하이엇호텔과 영국의 백화점인 셀프리지는 올해 1월 루왁커피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독립환경보호단체이자 농산물 인증기관인 엇서티파이드(UTZ certified)는 올해 1월4일 루왁커피에 대한 인증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때 가난한 농민들에게 위안 주던 커피
루왁커피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한때 가난하고 힘없는 식민지 농민들이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커피였다. 18세기 초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는 동쪽 섬인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커피 재배를 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총독이었던 판덴보스는 퀼튀르스텔설(Cultuurstelsel)이란 단일경작정책을 1830년부터 1870년까지 시행하며 현지인 농부와 소작농이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것을 금했다. 현지 농부들은 커피의 명성을 익히 알고 맛보고 싶어했다. 게다가 자신들이 재배한 커피로 인해 네덜란드가 세운 동인도회사가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와중에 인도네시아 농부들은 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서 소화되지 않은 커피콩을 배설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지인들은 사향고양이가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배설물을 남긴 특정 위치를 따라다니며 커피콩을 수집했다. 배설물에서 채취한 커피 원두를 수확한 열매처럼 볶고 갈아서 커피로 만들었다. 맛은 의외로 좋았다. 야생의 사향고양이는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 열매들을 골라서 먹었기 때문이다. 커피맛이 좋다는 것이 알려지자 농장주들도 루왁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결국 루왁커피는 식민지 시대에도 가장 귀하고 비싼 커피로 유럽에 판매됐다. 적은 생산량 탓에 20세기 말까지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늘어난 고급 커피에 대한 수요가 루왁커피로 이어지자 생산 방식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야생 사향고양이를 포획해 커피 열매를 강제 급여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동물복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로 인해 시작됐다.
커피농장을 자유롭게 뛰놀며 커피 열매를 따먹던 사향고양이는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루왁커피를 생산하는 기계 신세가 됐다. 그들의 소화기관은 루왁커피의 생산을 위해 혹사당하고, 몸 전체가 고장난 다음에 버려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커피가 전세계 고급 백화점과 식당, 카페, 호텔 등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커피를 과연 ‘고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똥에 섞여 나온 원두를 구워
뜨거운 물로 내린 최고급 커피
<버킷 리스트> 영화로 알려진 뒤
수요 늘자 고양이 가둬놓고 생산
수마트라섬의 농장을 찍은
한 동물보호단체의 폭로 영상
닭장처럼 비좁은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들 이상행동 보여
스트레스로 수명도 대폭 단축 “야생에서 채취했다”며 라벨 조작도 아시아 지역의 동물보호단체인 페타아시아(PETA Asia: People for the ethnical treatment of animal)는 지난해 10월30일 사향고양이의 사육 실태가 담긴 비디오 영상을 공개하며 루왁커피의 소비를 거부(보이콧)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한 농장에서 찍힌 이 영상을 보면, 야생에서 잡힌 사향고양이들이 닭장처럼 비좁고 지저분한 우리에서 커피 열매를 먹으며 생활한다. 갇힌 사향고양이들은 좁아진 공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리 안을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이상행동을 보이고, 자신의 팔다리 털을 물어뜯기도 한다.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는 수명도 줄어든다. 야생에서의 평균 수명이 10~15년이지만, 우리에 갇히면 불과 2~3년밖에 살지 못한다. 페타아시아는 “현지 농부의 말을 종합하면 사향고양이가 우리 안에서 지내는 기간은 최대 3년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감금에 대한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더이상 루왁커피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면 다시 사향고양이를 야생에 방사하고, 그중 대부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페타아시아의 제이슨 베이커 부회장은 “루왁커피를 구매하는 것은 동물학대를 지지하는 행위”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페타아시아가 3개월간 실시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의 사향고양이 농장 현지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페타아시아 쪽은 ‘야생에서 채취된 커피(wild-sourced)’임을 인증하는 라벨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페타아시아는 “야생에서 채취됐다는 문구가 있는 제품들도 상당수 좁은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에게서 얻은 루왁커피이고, 현재 판매되는 수준의 양을 야생에서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페타아시아는 사육된 사향고향이에게서 채취한 커피에 ‘야생에서 채취된’이란 라벨을 붙였다는 이유로 체눙코피루왁(Che Nung Kopi Luwak)이란 업체를 고소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인 <자카르타 포스트>는 체눙코피루왁이 한달에 300㎏의 루왁커피를 생산하며 생산량의 10%를 중국에 수출하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루왁커피가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2007년 한 영화에 소개되면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돼 2007년 전세계에 개봉된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 잭 니컬슨이 죽기 전에 마시고 싶은 음료로 ‘루왁커피’를 꼽았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2009년 7월 신라호텔이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핸드드립 전문점들과 카페 가맹점 등이 루왁커피를 팔았다. 신라호텔 직원은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는 아니지만, 하루에 1~2잔씩은 꾸준히 판매된다”고 말했다. 2011년 4월 문을 연 서울 강남의 칼릭스서울이라는 카페에서는 100% 루왁커피를 한 잔에 4만원에 팔고 있고, 커피전문점 ‘벨라빈스’는 루왁커피 가루를 섞은 블렌딩 커피를 대표 메뉴로 내세워 마케팅을 한다. 벨라빈스는 자사의 루왁커피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자연산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원두커피의 소비가 급격히 느는 한국이 루왁커피의 새로운 소비처로 부상중이다. 문제는 주요 선진국들이 루왁커피를 소비하는 양을 맞추기 위해선 공장식 축산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동물자유연대의 이형주 팀장은 “야생 사향고양이로부터 얻는 루왁커피로는 지금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농장마다 수백개의 비좁은 우리에 대규모로 사육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의 동물보호단체들은 루왁커피의 생산 실태를 알리기 위해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대한항공 기내면세점에서 판매하는 루왁커피의 불매운동을 지난해 5월부터 시작했고, 동물자유연대 역시 “루왁커피 생산량의 대부분이 동물학대의 산물인 만큼 수입과 판매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이형주 팀장은 “해외에서는 루왁커피 제조 과정에서의 동물학대를 인지하고서 판매 중단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동참하는 기업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판매 중지에 동참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싱가포르의 하이엇호텔과 영국의 백화점인 셀프리지는 올해 1월 루왁커피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독립환경보호단체이자 농산물 인증기관인 엇서티파이드(UTZ certified)는 올해 1월4일 루왁커피에 대한 인증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신라호텔 1층 로비의 카페 ‘더라이브러리’에서 파는 루왁커피. 한 잔 가격이 4만9000원이다.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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