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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영하 35쯤이야…추위 먹고 ‘꼬물꼬물’

등록 2017-01-06 11:31수정 2017-01-06 11:40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1> 소한의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3천만원짜리 귀하신 몸…환생해 선녀처럼 나풀나풀
발열 조끼 입은 듯 한파 속에 성장하는 유일한 생물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사진 이강운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 사진 이강운

 세월의 흐름을 표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이 있다. 농사와 관계된 24절기가 있으며 과거로부터 현재의 어느 시점, 혹은 다른 과거의 어느 시점까지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과학 달력 ‘Julian date’가 있다.

 온대지역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1년을 네 계절로 나누고, 사계절을 12개월로 나누고 다시 열 두 달을 24절기로 나눠 놓았다. 24절기는 농경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농업의 역사이고, 농업의 역사는 온도, 강수량 등 비 생물적 요소와 다른 생물들과의 교감을 함축하는 생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농본주의 사회인 조선에서 농업을 선진화 된 기술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설계가 필요했고, 자연에 대한 일정하고 규칙적인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 해결책으로 자연의 흐름을 파악한 24절기를 만들고, 절기에 따라 농경을 해왔다. 지금도 이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고 있다.       

 지구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절기가 생기고, 절기에 따라 계절이 결정된다. 철에 따라 빛의 양이 정해지기에 절기는 온도를 주관해 뭇 생물들의 생태를 결정짓는 진정한 자연의 시간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절기에 따른 영농은 다른 생물들의 신호에 맞춰 농업을 시작하고 갈무리하는 발전된 영농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정보화 시대로 생활 방식이 바뀌면서 영농의 과학적 설계인 절기에 대해 무감각해졌지만 24절기는 기후에 민감한 다양한 동식물을 살펴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가늠하는 좋은 지표라 할 수 있다. 명확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24절기의 한 때쯤 되면 코끝에 닿는 공기의 느낌이 달라지고 그 때에 맞춰 생물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으니 참으로 실증적, 과학적 자료라 할 수 있다.

 365일 자연의 흐름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절기에 따른 생물들의 생태를 자세히 보고 기록했다. 24절기 연재를 통해 생태계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일을 하려한다.

붉은점모시나비 암컷. 사진 이강운
붉은점모시나비 암컷. 사진 이강운

엊그제 알에서 부화한, 온 몸에 보송보송한 검은색 털을 지닌 붉은점모시나비(Apollo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1령 애벌레가 ‘한파가 뭐냐?’라는 듯 나뭇잎 속에서 꼬물꼬물 기어 나와 무심히 기린초 싹을 먹는다. 비록 지금은 시커먼 볼품없는 애벌레이지만 약 170일 후에는 모시처럼 반투명한 날개에 붉은 점이 있어 이름도 그렇게 붙은 붉은점모시나비로 환생한다. 암컷에게서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점은 마치 새색시의 연지곤지처럼 곱고, 모시 옷 휘날리듯 나풀나풀 날아가는 모습은 우아함 그 자체다. ‘나비’라는 이름이 나풀나풀 날아가는 나비 모습에서 따온 이름인데, 날아가는 자태만으로 고귀함을 보여주는 붉은점모시나비야말로 가장 ‘나비’다운 나비라 할 수 있다. 게다가 3천만 원짜리 나비로 귀하신 몸이다.

“이런 철모르는…” 했는데 통설 완전 뒤엎어

 하지만 3천만원은,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를 취미 삼아, 재미 삼아 잡는 몰상식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벌금이다. 알을 가득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불쌍하게 잡힌 그 나비를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반년 조금 넘게 약 190일을 알 속의 애벌레(Pharate 1st instar) 상태로 있다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에서 12월 초 부화한다. 기온이 오르고 만물이 기지개를 펴는 봄철에 다른 곤충과 마찬가지로 알에서 부화하여 애벌레가 나온다는 통설을 완전히 뒤엎는 생활사(Life Cycle)다.

2005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이래 멸종위기 곤충 붉은점모시나비 복원을 위한 증식을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했다. 복원이 아니라 내 손으로 완전히 멸종시킬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끌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12월 영하 26도 혹한에 어슬렁거리는 애벌레를 우연히 관찰하고 기가 막혔다. 겨우 50여개의 알밖에 없는데 철모르고 알에서 일찍 나온 놈까지 있으니. “이 추운 겨울에 나비 애벌레가 움직이고 있다니! 결국 얼어 죽겠지” 하는 안타까움과 “그렇게 상황 판단 못하니 멸종되는 거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속상했다.

알은 영하 47.2도까지 버틸 수 있는 항동결 물질

 조심스럽게 건져 추위를 막아 주기 위해 두텁게 잎을 넣어 주고 살아주기만을 기원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다음날 계속해서 밖에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애벌레 숫자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뭘 먹을 것은 있는지?” 자세히 보니 손톱 끝만큼 나온 기린초 여린 싹을 조금씩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곤충들의 먹이인 식물과 식물들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의 먹이사슬 공생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 그러면 혹시 겨울에 살 수 있는 어떤 월동 시스템이 있지 않나 하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아예 겨울에 활동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봄이 될 때까지 보관만 하고 있었으니 부화한 애벌레가 먹을 게 없어 굶주려 죽었던 것이다. 급하게 알에서 부화하는 모든 애벌레가 먹을 수 있는 먹이 공급을 하면서 2011년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멸종위기종 붉은점모시나비 증식을 시작하고 7년이 되던 2012년, 개체수가 충분히 확보 된 후 실험을 시작했다. 과연 몸이 얼지 않고 계속 활동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얼지 않는 가장 낮은 온도(Super cooling point)를 조사하였다. 애벌레는 영하 35도의 혹한에도 살아남았고 알은 심지어 영하 47.2도까지 버틸 수 있는 항동결 물질이 들어있었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발열 조끼를 챙겨 입은 셈이었다. 다른 나비목 애벌레에도 몸속의 수분이 얼음결정이 되지 않도록 막는 물질이 들어있지만 버틸 수 있는 온도가 배추좀나방 -12도, 파밤나방 -7도 등 붉은점모시나비에는 미치지 못했다. 붉은점모시나비야말로 진정한 한지성 나비라는 증거를 찾는 순간이었다.

짝짓기하는 붉은점모시나비. 사진 이강운
짝짓기하는 붉은점모시나비. 사진 이강운

 세계적인 멸종위기곤충으로 극한 조건의 삶

 올해도 어김없이 한 겨울에 알에서 깨어났고 첫 애벌레는 겨울 햇살 따사로운 정남향의 양지쪽에서 기린초 여린 싹을 먹으며 느리게 자라고 있다. 5일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절기인 소한. 올해는 ‘가장 추운 절기’라는 말이 무색하지만 이 곳 강원도 깊은 산 속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1월의 겨울 한파는 2013년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27.4도, 2016년 영하 21. 8도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한파를 자랑한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붉은점모시나비들은 그들의 숙명이라 여기는 추위와의 전쟁에 과감히 뛰어들어 생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해 짧은 겨울을, 혹한을 즐기고 있다. 전 세계적인 멸종위기곤충인 붉은점모시나비는 단순히 겨울을 나기 위해 생육이 정지된 휴면 형태의 ‘냉동동물’이 아니라 겨울 속에서 발육, 성장을 하고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내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고 믿기지 않는 극한 조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이란?

환경부에서는 서식지내에서 보전이 어려운 야생 동·식물을 서식지외에서 체계적으로 보전, 증식할 수 있도록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외보전기관’을 지정하고 있다. 야생 동·식물은 기본적으로 서식지(자생지)에서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서식지 파괴, 밀렵 등의 남획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많은 야생종들이 서식지에서 멸종하였거나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보전·번식은 물론 궁극적으로 자생지 복원을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추진하여 보전가치가 높은 야생 동·식물 종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예방체계로 ‘서식지외보전기관’제도가 도입되었으며 2017년 1월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서울대공원 등 24개의 ‘서식지외보전기관’이 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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