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설치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주제로 환경부-한국갈등학회가 공동 기획한 세미나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중림동 엘더블유컨벤션에서 열렸다. 발제를 맡은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이 말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확대가 시급하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개별 발전기 규모 자체가 큰 석탄화력·원자력과 달리, 태양광·풍력은 소규모 분산형이다. 전국 곳곳에 산재해야 하지만, 그만큼 입지가 필요하고 지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최근엔 ‘태양광 중금속’ 등 각종 가짜뉴스들도 골칫거리다.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하니 무조건 참고 받아들이라 강요할 수도 없다. 이 문제는 실제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14일 환경부는 한국갈등학회와 함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설치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선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연합이 도입한 의사소통 기법을 참고하고 주체들 간 상호 신뢰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발제를 맡은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은 2016년 결국 불발된 전북 장수군 풍력발전 추진 사례를 들어 이 문제를 설명했다. 당시 사업자들(㈜더윈드파워, ㈜에너지파크)은 전북 장수군의 장수읍, 계남면(장안산), 번암면·장계면에 각각 75㎿, 60㎿, 66㎿ 규모의 풍력발전소를 지을 계획이었다. 건설 비용은 모두 5589억원에 이른다.
사업자들은 그해 6월 초부터 주민동의서를 받으며 “소음이 없고 해가 전혀 없다”, “마을당 2억원씩의 발전기금을 준다”고 했다. 직후 주민대책위가 결성됐고 장수군청도 초기부터 사업자들보다 주민대책위와 주로 소통했다. 사업자들은 주민동의서를 받으면서도 군청과는 소통하거나 협의하지 않았다. 장수군수는 7월 초 보도자료를 내 반대입장을 공식화했다. 반대 기류가 심상치 않자 전 안산시장이라는 업체 회장이 장수군 쪽에 면담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9월 전기위원회에 의해 사업 신청이 불허되며 사업은 최종 불발됐다. 한 소장은 “더 체계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주민참여 이익공유 모델을 활용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업자들 문제는 우선 군수와 군청을 자기 편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사업 구상과 계획 단계에서부터 군청과 소통하고 협의해 사업계획을 보완했다면 주민 지지를 얻었을 것”이라며 “아울러 이 과정에서 (산림보호구역을 피하는) 사업계획 변경·조정의 기회가 생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자들이 장안산 등 가야문화권 역사유적지와 관련한 장수군의 관광산업 비전을 풍력발전과 연계·포괄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사업자들이 주민 입장에서 “지역에 별 도움 안 되는 ‘외부기업’” 이미지를 벗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그러면서 초기 주민 설득을 위해 제시한 ‘마을당 2억원의 발전기금’, ‘지역주민 우선 고용’ 등의 제안도 무언가 불법·편법적인 매수 행위로 여겨졌다.
한 소장은 “주민 수용성은 고정된 것이 아닌, 특정한 과정을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사업자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다면 이 사례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2008년 개발한 ‘에스팀’(ESTEEM)을 소개했다. 에스팀은 주민 수용성 향상을 위한 의사소통 매뉴얼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설치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주제로 환경부-한국갈등학회가 공동 기획한 세미나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중림동 엘더블유컨벤션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토론자로 참석한 조홍섭 <한겨레> 기자,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진 케이디아이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경남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유럽연합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진행한 태양광, 풍력 등의 프로젝트 27건의 사례를 통해 만들어졌다. 의사소통 진행 과정을 전부 6단계로 나눠 단계마다 해야 할 일을 정해놓았다. 1~2단계는 프로젝트의 맥락과 이해관계자 파악, 상호 기대를 확인하는 단계이며, 3~4단계는 예상되는 갈등·쟁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단계다. 마지막 5~6단계에서 공동의 합의점과 향후 행동계획을 도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자 각각의 의견과 불일치 지점을 파악해 표로 만들고 쟁점 순위를 중요도와 긴급성에 따라 평가한 뒤 개선 방안을 찾는다. 프로젝트 자체나 프로젝트 내 맥락에서 수정 가능한 것들을 찾아가며 공동의 개선방안을 도출한다.
한 소장은 “중요한 것은 수용성의 문제를 (흔히 비합리적인 존재로 가정되는) 주민들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개발사업자들의 계획 역시 어떻게 조정할지를 다루는 상호관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접근 방식을 달리하고, 공적 주체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토론자들에게서도 제기됐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역시 개발사업이기 때문에 개발사업에서 지켜야 할 환경기준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마땅한 원칙”이라며 “석탄화력과 원자력이 전원개발사업이란 특별법의 지위를 갖고 추진돼왔던 관행이 (재생에너지에도) 적용되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조홍섭 <한겨레> 기자는 발전지구 발굴, 환경영향평가 및 인허가 처리, 발전단지 공모 등 해상풍력 전 과정을 에너지청(DEA)에서 일괄 담당하는 덴마크 사례를 들었다. 조 기자는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해상풍력을 수행하며 덴마크 같은 ‘원 스톱 숍’을 하고 싶다면 그만한 신뢰수준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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