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9일 제주 서귀포 ICC제주에서 열린 제7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전기차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순환정전 사태 당시 전기차 보유 주민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가정의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에너지 저장장치로서의 전기차의 역할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출시된 현대차의 ‘아이오닉5’에 탑재된 배터리는 완전 충전할 경우 총 72.6㎾h의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15일 발표한 산업동향보고서를 보면, 이는 지난해 12월 서울시 가구당 일평균 전력사용량(7.3㎾h)의 열흘치에 해당한다.
전기차에 장착된 고용량 배터리를 전기차 구동 이외의 에너지 저장장치로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야외에서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하는 방식(V2L), 정전이 발생했을 때 주택이나 건물의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하는 방식(V2H 또는V2B), 전력망에 연결시켜 전력망을 안정성을 높이는데 활용하는 방식(V2G) 등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브이투엘 기능을 이용하면 캠핑 등 야외 활동 때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기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이오닉5은 주차한 상태에서 외부 충전구에 커넥터를 연결하면 220V 전압으로 최대 3.6㎾의 용량의 전기기기를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브이투에이치와 브이투비는 지난달 텍사스 순환정전 사태를 계기로 관련 기기 연구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연구원이 산업동향보고서에서 소개한 캐나다의 스타트업 오시아코의 전기차 충전기 개발이 그런 사례다. 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는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과 연동해 전기차를 충전하고 정전이 됐을 때는 최대 7.6㎾ 용량의 응급 전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내놨다.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에 연결시키는 브이투지 방식은 변동성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중요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의 출력이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전력망의 안정성이 흔들릴 때 전기차 배터리가 전기를 충전하거나 송전해 불안정성을 완충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초 재생에너지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전기차를 에너지 저장장치로 활용하는 브이투지 기술을 제주도에서 실증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제주도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잉여 전력이 발생해 일부 풍력 발전기의 발전량을 줄이는 사태가 잦아지고 있다. 이런 출력 제어를 줄이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전기차를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자동차연구원은 “향후 전기차 배터리 성능 등이 향상되고, 충·방전 반복에 따를 배터리 성능과 수명 저하 등의 비용을 배터리 리스업체 등과 공동 부담하는 배터리 구독경제 등 새로운 모델이 확산되면, 에너지 저장장치로서의 전기차의 활용도는 점차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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