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위치한 국내 첫 풍력발전소인 `행원 풍력발전단지' 연합뉴스
“바람도 잘 부는데 안 돌아가고 멈춰 서 있네. 고장인가?”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열심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 사이에 멈춰 선 발전기들을 보고 이런 의문을 품었던 분들이 더러 있을 듯합니다. 만약 이 때가 햇볕이 좋은 봄이나 가을 한낮이라면 이 발전기들은 고장이 아니라 운영자가 일부러 세운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주 지역 전력망을 관제하는 한국전력거래소 제주본부가 출력을 줄이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입니다. 제주본부가 풍력발전 출력을 제한한 것은 지난 한 해 46회였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44회입니다. 평균 4일에 한 번꼴로 발생한 것입니다.
출력 제한은 전력수요가 적은 3~5월과 9~11월에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전력공급 과잉이 우려될 때 주로 내려집니다. 전력은 공급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공급이 넘쳐도 주파수와 전압이 급변동해 잘못 대처하면 전력망이 붕괴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대부분 출력제어 설비를 갖추지 않은 소규모의 무인 운영 시설들이다보니 제주도 조례에 따라 제어 설비가 의무화된 대규모 풍력 발전시설이 억울한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지요.
출력 제한 지시를 받은 풍력발전단지는 발전기를 세우거나 회전 날개의 각도를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발전량을 줄여야합니다. 손해 배상도 따로 없지만 전력망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상대로 한 이런 조처는 전국에서 제주도에만 있는 일입니다.
전력거래소는 전국의 설비용량 20MW 이상 중앙급전발전기를 대상으로 발전 변동비(사실상 연료비)가 작은 순서대로 급전 지시를 내려 전력 수요에 대응합니다. 원전이 고장이나 정비 기간만 아니면 항상 가동되는 반면 가스발전소는 석탄발전소까지 모두 돌려도 전력이 모자랄 때만 가동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발전기 등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은 모두 비중앙급전발전기로 분류돼 아무 제약 없이 항상 전기를 만들어 팔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시 발전이 허용되는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 출력 제한이 가해지는 것은 어떤 사정 때문일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증가를 전력망의 수용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지난해 제주도의 태양광과 풍력발전량은 84만9223㎿h로, 도내 전력 공급량의 15.8%를 기록했습니다. 전국의 태양광·풍력 발전비율 2.6%의 6배입니다. 설비용량은 작년 말 기준 도내 전체 발전 설비의 38.4%로, 전국 태양광·풍력 설비용량 비율 9.6%의 4배를 기록했습니다. 제주 태양광·풍력발전 설비용량은 올해 상반기에는 63만㎾를 넘겼습니다. 봄 가을 낮 전력 수요가 최저치를 찍을 때 모두 가동돼 평균 80% 이상의 발전 효율을 낸다면 잠시나마 제주도를 ‘100% 재생에너지 섬’으로 만들 수도 있을 규모입니다.
물론 이것은 실증이 불가능한 이론상 추정일 뿐입니다. 다른 발전원을 모두 차단하고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하는 태양광과 풍력발전기만 돌리는 것은 전력망의 붕괴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도는 규정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전력거래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에 따라 일부 발전기가 갑자기 정지하거나 송전선이 절단되는 등 다양한 비상 상황에도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발전원을 구성해야 합니다. 전력거래소가 제주도 내 발전량이 너무 많아 출력 제한을 하면서도 육지와 연계된 해저 송전선(HVDC)을 유지하기 위해 육지 전기를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출력 제한은 그 만큼 남는 전기를 육지로 송전할 수 있으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와 육지 사이 해저에 깔린 1·2 연계선은 전기를 받는 용도로 설치돼 현재까지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쌍방향의 제 3 연계선 건설이 주민 반대로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면서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는 기존 2 연계선을 쌍방향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상황입니다.
장시호 전력거래소 제주본부 운영실장은 “전력 수요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 출력 제한을 할 때는 육지에서 연계선을 통해 들어오는 전기는 9~10만㎾만 받고, 가스와 중유발전기도 더이상 내릴 수 없는 최저 출력으로 4대 정도만 운전해 14~15만㎾ 정도만 발전한다”고 설명합니다. 최저 전력 수요가 50만㎾ 안팎까지 떨어지는 봄가을의 경우 육지에서 받는 전기와 화력발전소 발전량을 제외한 약 25만㎾가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에 허용되는 최대 발전량인 셈입니다. 연계선을 통한 공급량과 화력발전기 발전량을 좀더 줄이면 안 될까요? 안 된다고 합니다. 다양한 비상 상황을 상정할 때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풍력발전에 대한 출력제한 조처가 내려진 지난 5월8일 제주도 전력공급 상황. 점선 안에 표시된 것이 출력제한에 따라 줄어든 발전량이다. 출처: 제주 카본프리 아일랜드 계통 유연성 확보 방안과 난제(2020년 7월 대한전기학회 하계 학술대회 발표 자료)
이런 전력거래소 쪽의 설명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전문가인 이성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수석전문위원은 “전력계통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반드시 가동해야 하는 기존발전소의 필수 전원은 설비 투자를 통해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재생에너지의 시간대별 발전 예측, 기존 화석연료 발전의 유연성 강화 등의 노력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재생에너지 우선 원칙을 분명히 세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잦은 출력 제한을 방치하는 것은 민간의 재생에너지 발전 투자를 위축시켜 재생에너지 확산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서 재생에너지 출력 제약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15년입니다. 바이오까지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제주도 전체 전력 공급량의 9.3%를 기록한 해입니다. 정부가 2017년 발표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022년에 10.5%에 도달해, 제주도에서 출력 제한이 처음 시작된 2015년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전력계통의 운영자 관점에서 보면 남한은 기댈 본토라도 있는 제주도보다 더 조건이 좋지 않은 ‘섬’입니다. 북한을 통과해 대륙으로 전력망이 연계되지 않는 한 전력망에 나타나는 불안정 요소는 온전히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력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현재 추세대로면 2025년 이전에 육지에서도 제주도와 같은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 필요성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계속 늘려가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재생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양수발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열저장(P2H), 그린수소(P2G) 등 다양한 에너지저장 기술을 개발해 활용할 준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