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보안여관 카페에서 만난 김기창 작가. 김 작가는 지난달 소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펴냈다.
열심히 살았는데,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기후위기라고 한다. 지난해 50일 넘게 비가 오고 영하 20도 한파가 왔기 때문인지 기후변화가 진짜 진행되고 있는 것같기도 하지만, 또 평온한 봄날을 보내다보면 그럭저럭 살만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점점 진행되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불안하다. 아직은 섬세한 이들의 말에 불과하지만, 미세하고 불안한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를 “문학계에서 가장 쓸모없다”는 40대 남성으로 소개한 김기창 소설가는 이 시대 평범한 지구인의 사랑과 이별을 적은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민음사)을 지난달 펴냈다.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더 크다”며 미래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을 공감한다는 김 작가를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만났다.
김 작가가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재난 앞에 섰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몇 해 전 보았던 북극곰 어미와 새끼 사진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북극이 기후위기로 녹아내릴 때 속수무책인 상황에 놓인 어미 북극곰의 심경을 상상하는 것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어미는 힘없이 축 몸을 늘어뜨리고 있고, 새끼곰이 그 옆에 있는 사냥꾼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사냥꾼이 새끼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는데 어미가 손을 쓸 도리가 없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 현재 기후위기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 장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고 첫 단편 ‘약속의 땅’을 썼죠.”
그렇게 해서 쓰여진 10편의 단편들은 장편처럼 이어진다. 공간도 전세계에 걸쳐있고, 등장인물도 모든 생명이다. 한국인도 나오지만 외국인도 나오고 동물도 나온다. 기후위기로 인한 변화는 전지구적 현상이자 모든 생명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기후위기를 이해하는 장치다.
책 제목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빌려왔다. 콜레라라는 역병이 도는 시기 두 남녀의 낭만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는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있다. 김 작가도 기후위기 시대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불평등이라고 했다.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켤 수 있는 사람은 돈 걱정 없는 사람이고, 또 이 사람때문에 기후는 악화되는” 역설적 상황에 주목했다. 이때문에 사는 지역, 계급, 빈부에 따라 기존 차별과 불평등한 상황이 더 큰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후변화 시대의 분위기, 그 속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에서 불평등을 드러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았어요. 콜레라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기후위기라는 위협 앞에 삶은 위협받고 다양한 사랑의 형태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소설집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한국의 말단 공무원은 민원에 시달리고(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와 국회 보좌관은 일에 치여 정작 소중했던 일상을 놓아버린다(1순위의 세계). 테슬라 협력업체 직원이 미스터리한 인물로 등장하고(소년만 알고 있다),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가고픈 젊은이들이 내일을 이야기한다(천국의 초저녁).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섞여버린 북극곰과 회색곰의 교배로 태어난 ‘그롤라’가 ‘갑툭튀’하고(약속의 땅),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피노누아는 평균 온도가 상승한 탓에 더이상 마실 수 없게 된다.(1순위의 세계) 마치 세계 각지의 기후위기 뉴스를 읽는 듯한, 기후변화로 삶이 위협받는 인물을 소개한 듯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기후변화 특집기사가 자주 실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를 정기구독했고, 서울시청 민원실 공무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기 위해 민원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김 작가는 “낙관없는 희망”으로 하루를 사는 미래세대에게 위로를 건네는 단편 ‘접는 나날’을 소설집에 넣었다. 기후변화로 생계를 잃고 “마지막으로 먹는 일을 접은” 청년 이야기에서 요즘 기후우울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청소년·청년들이 겹쳐보였다. 김 작가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고 죽음과 직결되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상상력을 더해 이 단편을 완성했다고 한다.
“기후위기 문제가 생기게 된 책임은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에게 더 많이 있죠. 기후위기 해결에 모두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쌓은 모든 게 위기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생계수단을 잃는 당사자들이 많아질 수 있어서에요. 더군다나 부정적 역향은 장기적으로 계속 될 거예요. 기성세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미래세대는 이미 잘 하고 있는 것 같고요.”
김 작가는 소설은 상상의 영역이지만 이 책이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개인이 각성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정부가 움직이고 화석연료를 다른 걸로 대체하는 산업적 측면에서의 변화가 더 큰 결과를 가져오잖아요. 사실 그런 현실을 더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나 르포기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든 것은 개인적 감수성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잖아요. 사람들에게 이야기로써 이 위기를 인식하게 하고 연대의식을 갖게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사진·영상/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