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성년의날 기념 20대 청년 초청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청와대 회동에서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소형 모듈 원자로(SMR)에 대해 언급한 발언을 놓고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17일 ‘여 대표 대통령 면전서 ‘소형 원자로’, 신한울 4호기는 더 급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여당 대표가 대통령 면전에서 대통령이 고집하는 탈원전 정책을 치받는 공개 발언을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송 대표를 띄웠다. 송 대표의 이날 발언은 정말 탈원전 정책을 치받은 것일까?
이 신문이 탈원전 정책을 치받은 것이라고 해석한 송 대표의 발언은 “바이든 정부가 탄소 중립화를 위해 추진하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분야에서 미국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세계 원전 시장을 지배하는 중국·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한 부분이다.
소형 모듈 원자로에 대해 정부는 발전 용량이 300MW 이하이고, 공장 제작·현장 조립이 가능한 형태의 원자로라고 설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등이 기후변화 대응할 수 있는 저탄소 에너지 공급원으로 띄우고 있으나 아직 상용화된 사례는 없는 상태다.
송 대표의 발언이 탈원전 정책을 ‘치받았다’고 할 수 있으려면 탈원전 정책이 소형 모듈 원자로의 국내 연구·개발을 금지하고 있거나 미국과의 연구·개발 협력을 막고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금지하고,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해 원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한 차례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가 조기 폐쇄되고, 계획 단계에 있던 천지 원전과 대진 원전 사업이 백지화됐다.
하지만 단계적 원전 감축이 탈원전 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에너지 전환(탈원전) 로드맵’에는 국내 산업 보완대책으로 원전 수출 지원도 포함됐다. 수출 지원에는 관련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이 당연히 포함된다. 원전을 국내에는 못 짓게 하면서 해외에 파는 것은 지원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탈핵 진영은 물론 친원전 진영 쪽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불안하다고 못 짓게 하는 원전을 해외에 팔겠다는 것이 비도덕적이라는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원전 수출 지원 방침이 바뀌지는 않았다.
‘대통령 면전에서 소형 원자로’라고 한 사설 제목은 ‘소형 원자로’가 정부 내에서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의 금기어인 듯한 느낌을 준다. 과연 그럴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1월2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2021년도 업무계획의 ‘미래 세대를 위한 선도형 연구개발’ 항목에는 ‘미래시장 다변화에 대비 소형 원자로(SMR) 기술개발 추진’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2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9회 원자력진흥위원회에도 “사회적 비용 증가와 전력 시장 변화로 대형원전 시장이 정체되고, 대신 SMR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며 △초기 SMR 시장 창출 △시장 다변화를 위한 한국형 SMR 개발을 추진 등이 포함된 ‘원자로 기술개발의 현황과 향후 추진전략’을 보고한 바 있다.
송영길 대표가 청와대 회동에서 언급한 SMR이 탈원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적극 지원 방침을 밝힌 기술이라는 얘기다. 국내 시장에서 실증 없이 수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탈핵 쪽 전문가 사이에 탈원전 정책의 후퇴라고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송 대표는 당 대표라는 책임을 맡기 전 일반 의원일 때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 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탈원전 로드맵에서 백지화하기로 한 신한울 원전 3·4호기에 대해 “건설 재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잠시 논란을 빚었던 것이 그런 예다.
하지만 이번에 송 대표가 SMR을 언급한 것을 두고 탈원전 정책을 치받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게 해석하는 일부 언론의 논리대로면 송 대표에 앞서 정부가 스스로 먼저 탈원전 정책을 치받은 셈이 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