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씨가 ‘동료 집필진’ 김소영(뒷줄 왼쪽부터), 배경내, 김형진씨와 함께 휠체어 리프트 사고를 당했던 서울 종로구 혜화역 출구 계단 앞에 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언제나처럼 미래를 앞당겨 오늘을 살 것을 다짐하며.’
민 머리에, 지하철 바닥을 기며, 탔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철판을 덧댄 휠체어를 탄 그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경찰을 막아선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54)씨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탱크 몰고 다니는 깡패 같은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4월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경찰이 이규식씨의 도로 진입을 막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어머니가 연탄가스를 마셔서 그렇게 태어난 건지, 동네 우물에 문제가 있어선지, 한의원에서 침을 잘못 맞은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규식씨는 혼자서는 몸을 가눌 수 없이 태어났다. 규식씨 인생의 전반부는 갇혀 있던 삶이었고, 후반부는 싸우는 삶이었다. 재활원과 공동체를 전전한 인생의 전반부가 ‘방구석’에 갇혀 있던 삶이라면, 1998년 5월 노들야학과 박경석을 만나며 시작된 인생 후반부는 자신과 동료들을 가로막는 세상과 맞서는 삶이었다. 시설에서 나온 이후 규식씨는 지하철과 버스를 막아섰고, 동료를 잡아가는 전경 버스를 가로막았다. 그는 장애인 없이 굴러가는 세상을 가로막아 새로운 길을 내고 싶었다.
2005년 6월29일 서울역 지하철 1, 4호선 환승통로에서 이규식씨가 지나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규식씨는 22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오고 있다. 1999년 6월,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혜화역 휠체어 리프트에 올라섰던 규식씨는 그대로 추락했다. 그는 장애인 활동가 동료들의 도움으로 서울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500만원 배상 판결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후에도 많은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 이용 중 사망했다. 이들은 단지 지하철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었다. 규식씨가 “병신 새끼, 집에나 있어라”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이동권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이다.
이규식씨가 이른 아침 지하철을 이용해 시청역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그런 그가 올봄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생애사를 담은 자서전을 출간했다. 언어장애가 있고,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규식씨이기에 ‘동료 집필진’인 김소영(장애인 지원 주택 코디네이터), 김형진(규식씨의 10년차 활동지원사),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씨의 도움이 컸다. 이들은 기꺼이 규식씨의 글동무가 되어주었다.
규식씨는 자신의 책을 장애 자녀를 둔 부모나, 장애인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교사와 사회복지사들이 꼭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규식씨는 “어떤 의미에서든 나처럼 세상이 만든 감옥에 갇혀본 사람들, 손가락질당해본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가 작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한다.
혜화역 2번 출구에는 이규식씨와 동료들의 투쟁 이후 ‘장애인 이동권 요구 현장’ 동판이 설치됐다. 박종식 기자
평범하지 않은 규식씨의 인생사를 담은 자서전의 제목은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이다. 규식씨는 오늘 아침도 고단한 몸을 이끌고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 속으로 향한다.
2023년 3월 27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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