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바리스타’로서 첫 업무날인 지난 14일 김하정씨가 자신의 일터인 서울 송파구 장지동 송파글마루도서관의 카페에서 이름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고객님한테 밝은 미소를 주는, ‘아, 이 사람은 진짜 친절하고 좋은 바리스타구나’ 이런 소리를 듣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요.”
바리스타로서 지난 14일 업무에 처음 나선 김하정(28)씨는 발달장애인이다. 바삐 일터로 향하는 그에게 흔히 말하는 ‘월요병’은 없었냐고 묻자 하정씨는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 이런 생각만 하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중학교 3학년 즈음 집을 나간 아버지는 양육비도 주지 않은 채 연락을 끊었다. 자신과 지체장애인인 여동생을 위해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돕고자 하정씨는 자신의 적성이나 특기를 생각할 겨를 없이 성인이 되자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하정씨가 28살인 지금까지 거쳐온 직장만 8곳, 모두 계약직으로 처우가 불안정했다. 매장 서비스직을 구한다고 해서 취업한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설거지를 맡기기도 했다. 20대의 끝자락에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실했다.
커피 내리는 일이 즐거워요
김하정씨가 지난 8월 5일 낮 서울 송파구 장애인직업재활지원센터에서 바리스타 교육 중 다른 학생의 커피 시연 과정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다.
예전엔 편의점 계약직도 했죠
김하정씨가 여덟번째 직장이었던 서울 송파구 세븐일레븐 키자니아점에서 지난 7월30일 제품 정리를 하고 있다. 하정씨는 이곳에서 8월12일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다.
아직은 서툴지만 하나씩 배워가요
커피를 만드는 일 외에도 카페에서는 익혀야 할 일들이 많다. 업무 첫날인 지난 14일 김하정씨(왼쪽)가 매니저 구형진씨와 매장 주문 단말기의 모니터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모두가 ‘특별한’ 나의 동료들이랍니다
서울 송파구 송파글마루도서관 1층에 중증장애인 채용 카페인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 개소식이 열렸던 지난 6월16일 김하정(왼쪽부터)씨가 동료 바리스타인 박경민(20), 탁경민(19), 장은샘(26)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장애인직업재활지원센터 선생님들이 고민하던 하정씨에게 ‘바리스타’ 일을 권했다. “지금까지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한번 해보라”는 어머니의 말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지난 6월 송파글마루도서관에서 중증장애인 채용카페가 문을 열 때 커피를 처음 내려보았던 하정씨는 7월부터 매주 3회 센터에 가서 ‘스페셜 바리스타’로 불리는 장애인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스페셜 바리스타’ 자격증은 필기시험은 없이 실기평가로 당락이 결정된다. “이 일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라고 두근거려 하던 그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드디어 8월 합격했다. 하지만 바리스타로서 얼른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과 달리 코로나19로 첫 출근이 계속 미뤄졌다. 카페에서 진행하는 현장교육도 축소됐고, 카페가 입주한 도서관이 문을 닫으며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가족과 남자친구 등 사랑하는 이들의 응원과 격려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지난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춰졌다. 14일 드디어 카페가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다렸던 첫번째 업무를 마친 소감은 어땠을까? 가장 좋았던 일을 묻자 하정씨는 “손님과 만나는 일,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만든 일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실전의 어려움도 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특히 시재, 남은 금액 처리하는 일이 헷갈리더라고요.” 첫날 하정씨를 애먹인 건 커피가 아니었다. 아직 서툴러 주변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하정씨는 지금껏 해왔듯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낼 것이다. 단풍을 물들이는 가을 햇살처럼 그의 미소가 사방 퍼져 나간다. 그 미소처럼 사람과 커피를 사랑하는 바리스타 김하정씨의 커피 향기가 오래도록 진하게 퍼질 수 있기를!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0년 10월 3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