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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민간병원 놔두고 공공병원 쥐어짜기…취약층 ‘우린 어떡하라고’

등록 2021-12-22 17:02수정 2021-12-23 02:35

병상 쥐어짜기 ①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다시 1천명대로 증가한 21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는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다시 1천명대로 증가한 21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는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유행 이후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와 보건의료 노동자의 줄기찬 요구를 외면했던 정부는 역설적으로 위기의 상황에선 ‘공공의료’에 매달렸다. 국립중앙의료원·서울의료원·보훈병원·산재병원을 소개해 코로나19 환자만 돌보도록 한다는 정부의 발표에 우려가 쏟아진다. 정부 정책실패의 책임이 고스란히 공공병원 의료진과 환자, 사회 취약계층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민간 의료기관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틀 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항암치료와 검사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혹시 치료를 못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자 백혈병 환자인 ㄱ씨는 24일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할 예정이었다. 입원을 3일 앞둔 지난 21일, 돌연 국립중앙의료원이 병상을 비워 코로나19 환자만 진료한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병원에서 입원 일정 변경과 관련된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ㄱ씨는 “민간병원은 HIV 감염인 치료를 꺼릴 뿐만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용이 비싸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며 “노숙인이나, 저소득층 등 사회 취약계층이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국립중앙의료원이 아무 대책 없이 우리를 내쫓지는 않기 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정부가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의료원, 보훈병원, 산재병원 등 주요 공공병원 병상을 비우고 코로나19 환자만을 돌보는 전담병원으로 지정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환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들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환자들은 HIV 감염인과 노숙인, 고엽제 후유증 환자, 상이군경, 진폐증 환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많았다.

가난한 노숙인들이 아플 때 의지하던 국립중앙의료원이 입원을 중단하면서 서울 시내에서 노숙인이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공공병원은 ‘보라매병원’ 한 곳만 남게 됐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노숙인은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공공병원만 이용하도록 제도(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적으로 차단해 놓고서, 공공병원마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하면 이들의 건강권은 누가 돌보느냐”며 “코로나19 기간 동안 의료 취약계층의 건강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민간의료기관을 열든지,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해 코로나19 환자를 더 많이 보게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선 전체 병상의 10%를 차지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를 진료하고, 병상의 90%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은 고작 코로나19 환자 20%(민간 병상의 3%)만 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감염병에 대응하고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외면했다. 5차례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도 정부는 공공병상과 공공의료 인력을 확대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갔다. 한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은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쫓겨나는 환자들은 다른 대형병원·사립병원에서 진료하지 않는 환자들”이라며 “이런 환자들을 쫓아내고 코로나19 환자를 보라면서 대형·사립병원에선 공공의료를 외면하고 병상을 열지 않은 결과는 결국 사회 취약계층과 코로나19 환자, 모든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말했다.

의료시민사회단체는 지금이라도 상급종합병원 등 의료자원이 많은 민간의료기관이 시급하지 않은 진료와 수술을 미루고 코로나19 진료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서울·수도권에 상급종합병원 22개가 몰려 있는데 병상 동원을 발표한 의료기관은 서울대 병원(서울·분당) 두 곳에 불과하다”며 “대형민간병원을 동원하지 않고 의료붕괴 상황을 극복할 수 없으므로, 꼭 대형병원에서 치료할 필요 없는 경증이나 중등증 환자 치료는 일시적으로라도 다른 병·의원에서 하도록 하고 대형병원은 코로나 중환자 진료를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공공병원 확충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외면하면서 코로나19 전담병원화 하는 것은 마른 수건 쥐어짜듯 공공병원을 쥐어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민간대형병원 병상의 10% 이상을 코로나19 진료 병상으로 내놓게 해야 ‘일상 회복’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호 권지담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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