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내 코로나19 의료진이 환자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유행 이후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와 보건의료 노동자의 줄기찬 요구를 외면했던 정부는 역설적으로 위기의 상황에선 ‘공공의료’에 매달렸다. 국립중앙의료원·서울의료원·보훈병원·산재병원을 소개해 코로나19 환자만 돌보도록 한다는 정부의 발표에 우려가 쏟아진다. 정부 정책실패의 책임이 고스란히 공공병원 의료진과 환자, 사회 취약계층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민간 의료기관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디로 가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무조건 중환자실에서 나가라니 집에 가란 소리로 들려요.”
ㄱ씨의 아버지는 경기도 한 대학병원 코로나19 중환자실에 입원중이었다. 지난 21일 병원에서는 갑자기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를 22일 전원시킬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주치의로부터 곰팡이성 폐렴으로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다섯 시간 남짓밖에 안 된 상황이었다. ㄱ씨는 22일 <한겨레>에 “최근 기관절개 수술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인데 전원이 불안하다”며 “자세히 물어보려고 해도 ‘정부에서 내려온 내용’이라고만 하고, 어느 병원으로 전원할 지는 얘기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유증상 확진환자 격리해제 지침을 ‘증상발현 후 20일’로 개정한 이후, 21일 처음으로 중환자실에 20일 넘게 입원한 환자 중 210명에게 전원 명령서를 보냈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치료할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병상 효율화를 위해 불가피한 대책이지만, 그 과정에서 설명이 부족했던 데다 환자를 전원(스텝 다운)할 병상이 준비되지 않아 환자와 보호자가 전원을 거부하는 등 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증상 발현 후 20일’이 지난 환자를 증상 유무와 상관없이 병실에서 격리해제하도록 지침을 개정해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기존 격리해제 지침이 ‘증상발현 후 10일’이라는 최소 기준과 ‘증상이 호전되는 추세’라는 불명확한 조건 탓에 실제론 감염력이 떨어진 중환자를 준중환자 병실이나 일방 병실 등으로 전원하기 어려웠다는 판단에서다.
갑작스럽게 격리해제 통보를 받은 환자들은 병원 내 다른 병상이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돼야 하는데, 이 부분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결국 보호자가 병상을 알아보거나 재택치료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오산의 한 병원 코로나19 중환자실에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ㄴ씨는 갑작스런 병원의 격리해제 통보에 “(감염력이 떨어져서 전원하라고는 하지만) 아직 음성이 나오지 않아 다른 병원을 찾기 힘들지 않겠느냐”며 “어머니가 당장 퇴원해야 하면 제가 휴가를 내서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데, 방호복을 입고 치료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경기도 오산의 한 병원 코로나19 중환자실에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ㄴ씨가 21일 병원에서 받은 ‘코로나19 격리해제 장기재원자 전원증명서’. ㄴ씨 제공
정부의 지침 개정이 당장 부족한 중환자 병상에 숨통은 틔워줄 수 있지만, 오히려 의료진들의 부담은 가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중환자 병동을 돌보는 서울대병원의 ㅇ간호사는 “코로나19 중환자 가운데 약 절반이 격리해제 대상이 된다”며 “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격리해제 문자를 받은 환자 보호자들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항의를 하는데, 격리 지침만 변했지 전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된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감염내과) 교수는 “일반 중환자 병상을 줄인 상황에서 코로나19 중환자 병실에서 나간 환자들이 일반 중환자실로 가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격리해제 후 최대 수천만원의 본인부담금도 부담해야 해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 간 다툼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실제 격리해제 대상인 환자의 보호자들에겐 그동안 정부가 지원했던 격리입원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코로나19 격리입원치료비 지원계획'을 보면 “입원치료비는 감염병이 타인에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고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목적하에 격리입원치료를 시작한 날부터 해제 날까지만 지원하도록 돼 있다. 음압격리실 입원료의 경우 본인 부담률은 10%지만, 인공호흡기나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가 필요한 환자들은 한 달에 많게는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ㄴ씨는 “오늘 중환자실을 나가지 않으면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하는데, 이후 부담할 비용을 생각하면 100만원을 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 전담병원이 아닌)일반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할 때는 상당한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격리해제자를 받을 수 있는 별도 병상도 만들어서 지원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리해제자 전원의 어려움이 있는 현장들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권지담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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