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의사의 말과 태도
달러구트 꿈백화점 진짜 존재하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완치의 꿈
의사가 환자로 바뀌는 꿈도 팔면
고통 이해하고 더깊이 배려할텐데
의사의 말과 태도
달러구트 꿈백화점 진짜 존재하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완치의 꿈
의사가 환자로 바뀌는 꿈도 팔면
고통 이해하고 더깊이 배려할텐데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암 환자에게 최고의 ‘꿈 가게’는? 안녕하세요, 달러구트님. 저는 ‘꿈 백화점’을 이제야 알게 된 유방암 3기 암 환자입니다. 제가 펜을 든 이유는 당신의 꿈 백화점에 ‘암&꿈’ 코너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하기 위해서입니다. 달러구트님도 아시지요? 우리나라 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암 환자는 매해 늘고 있고, 국민 25명당 1명이 암 유병자입니다. 환자 외에도 가족, 의료진, 암 연구자, 암 관련 정책 담당자 등을 합하면 ‘암&꿈’ 코너를 찾을 고객은 정말 많을 겁니다. ‘암&꿈’ 코너에 첫번째로 필요한 꿈은 ‘완치 꿈’이에요. 달러구트님이 꿈 제작자를 만나 암 환자가 완치된 미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꿈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하면 어때요? 암 환자가 완치에 이르는 길은 길고 지루해요. 울퉁불퉁하고, 장애물도 있지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암 환자는 몸의 작은 변화에도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3~6개월마다 검진을 하고 결과를 기다릴 땐 바들바들 떨어야 합니다. 이런 길을 갈 때 완치 후 자신의 모습을 꿈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요? 항암 치료 중 부작용이 너무 심해 치료를 중단하고 싶은 환자가 꿈에서 자신이 마침내 도달할 그 모습을 본다면 위기를 좀 더 쉽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요? 두번째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꿈은 암 치료를 하는 의사들을 위한 맞춤 제작 꿈입니다. ‘역지사지몽’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어요. 이 꿈은 암 치료를 하는 의사들이 자신의 환자와 역할을 바꿔보는 꿈입니다. 그런 악몽을 누가 꾸고 싶겠느냐고요? 저는 이런 꿈이 출시된다면, 모든 의과대학에서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꿈에서라도 암 환자가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본인이 직접 경험해본다면, 환자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불친절한 의사는 줄어들 테니까요. 저도 의사의 말 한마디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수술을 끝내고 종양내과를 방문했는데, 의사는 “이제 호르몬 치료제인 타목시펜을 먹고, 난소 기능을 억제하는 졸라덱스 주사를 맞자”고 했어요. 통상적으로 항암에 전절제(가슴 전체를 자르는 수술)를 하면 방사선 치료는 안 해요. 그런데 저는 방사선 치료도 하기로 했지요. 항암·수술·방사선 다 하는데 약도 먹고 주사까지 맞아야 한다니….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의사에게 “주사는 안 맞으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죠. 그 순간 의사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환자분은 3기예요.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항암을 통해 수술 가능하게 만들어 수술하셨어요. 타목시펜도 먹고 졸라덱스도 맞으셔야 해요. 안 하시면 10명 중 7명은 재발됩니다. 그래도 괜찮으세요?” ‘10명 중 7명 재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제 심장은 얼어붙었습니다. 암 환자에게 가장 큰 공포는 재발과 전이입니다. 그런데 그 수치를 들으니 제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제 이성이 온전히 작동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의사에게 물었어야 합니다. 그 데이터는 어떤 연구에서 나왔는지, 또 주사의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말이죠. 그런데 의사의 신경질적이고 바쁜 듯한 태도, 10명 중 7명 재발이라는 수치에 압도돼 “주사 맞을게요”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70% 재발’이라는 말이 저의 목을 조여왔습니다.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아무리 관련 논문과 책을 뒤져봐도 그 수치는 나오지 않았어요. 타목시펜 단독 요법과 타목시펜과 난소억제주사 5년 병행 요법을 비교한 임상시험에서 8년간 각 환자군의 재발률을 분석했을 때, 타목시펜 단독군에서 78.9%, 타목시펜+난소억제주사군에서 83.2% 무병 생존율을 보인다는 데이터는 있었습니다.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다시 물을까 고민하다 관뒀습니다. 선생님을 계속 만나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암에 걸렸다는데, 저는 건강히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쓴 일본 작가 이마부치 게이코는 2014년 염증성 유방암이 간 주변으로 전이되어 4기 판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 만난 첫 의사는 이마부치에게 “수술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항암제도 곧 듣지 않을 겁니다.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 완화 케어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세요”라고 말했어요. 그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환자와 얘기했고, 치료법에 대해 환자가 물어도 자세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요. 의사와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마부치는 병원을 바꿨는데요. 새로 만난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치는 바랄 수 없지만 쓸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가능한 한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삶의 질을 길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죠.” 이마부치는 그제야 치료를 받을 용기를 냈다고 해요. _______
의사 말 한마디에 살고 죽는데 두 의사는 내용상 비슷한 말을 한 것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환자는 천지차이로 느끼는 것이죠. 그만큼 의사의 말 한마디로 환자는 죽고 삽니다. ‘역지사지몽’의 필요성 절감하시겠죠? 암 환자는 대체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차에 타 마실 수 있는 ‘진정 시럽’과 ‘숙면용 사탕’은 필수입니다. ‘심신 안정용 쿠키’도 좋아할 겁니다. 삶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자신감 충전 소스’도 개발해 채소에 듬뿍 뿌려 먹으면 좋겠어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접하고 전 이런 싱거운 생각도 해봤어요. 암 진단 받고 항암 치료 받고 병가 중이라는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이 꿈에서 깨어나면 암 진단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앗! 왠지 달러구트님이 제게 한마디 하실 것 같아요. “늘 중요한 건 현실이고,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적당한 꿈이 좋다”고요. 맞아요. 이미 저는 암 경험자이니 잘 받아들이고 치료받아야죠. 올 한해 무탈하시고, ‘암&꿈’ 코너 제안에 대한 답 꼭 들려주세요. 양선아 사회정책부 기자 anmadang@hani.co.kr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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