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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내 몸은 이미 알고 있다, 기쁨이란 회복의 ‘꿀팁’을!

등록 2022-03-19 18:06수정 2022-03-19 18:17

[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_ 방사선 치료와 기쁨 리스트

매일 방사선 치료하며 참여한
저녁 7시 행복 나눔의 시간
사소한 기쁨이 주는 치유의 힘
치료에 긍정적 영향 확신해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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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한 뒤 팔이 90도 정도로만 올려지더니, 재활치료를 받으며 팔 운동을 날마다 해주니 만세 자세가 나왔다. 기가 막히게도 방사선 치료 시작 직전이었다.

2020년 9월 첫날, 16회 받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방사선 치료는 고에너지 방사선을 이용해 세포의 증식과 생존에 중요한 물질인 핵산에 화학적인 변성을 일으켜 암세포를 죽인다. 정상 세포도 방사선에 의해 손상되지만, 암세포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 잘 회복된다고 한다. 치료 시작 일주일 전 방사 설계를 했다. 방사선을 정확한 부위에 쬐기 위해 시티(CT)를 찍고 치료 부위에 잉크로 줄을 긋는다. 병원에선 잉크 선이 지워진다고 샤워를 금지했다. 그러나 날씨도 후덥지근하고 땀도 흘려 난감했다. 그러던 중 요양병원(양·한방 통합 병원)에서 만난 언니가 치료를 받아보니 가벼운 샤워를 해도 줄이 지워지지 않고, 줄이 살짝 지워지면 선생님이 다시 그려준다고 알려주었다. 언니의 ‘꿀팁’으로 찝찝하지 않게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었다.

아프다 투덜대던 할머니의 변화

치료는 거대한 기계에 만세 자세로 누워 받는다. 움직이면 안 되니, 몸이 바짝 긴장됐다. 기계는 내 몸뚱어리를 빙빙 돌았다. 뭔가 파동이 느껴지기도 하고 뜨뜻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 치료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은데,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두려운 마음이 들면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이 방사선이 ‘치료의 광선’이 되어 내 몸의 안 좋은 것을 다 없애달라고 기도했다. 치료가 끝나면 탈의실에서 치료 부위에 알로에 젤을 바로 바르고, 병원에서 준 방사 크림도 발랐다. 물도 많이 마셨다.

항암 치료에 비하면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은 덜 심각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피로감을 많이 느꼈고, 10회가 넘어서니 방사선 식도염으로 물 마실 때 불편함을 느꼈다. 겨드랑이와 유방 조직이 약간 딱딱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어떤 환우는 구토나 오심(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나는 다행히도 구토나 오심 증세는 없었다.

방사선 치료는 주말 제외하고 날마다 받았다. 이 시기 나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는데, 저녁 7시가 되면 문화센터에서 각종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요가와 명상, 미술 치료, 암 관련 강의 등을 했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명상 시간이 끝나면 환우들끼리 둥그렇게 모여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나눴다. 문화센터 선생님은 “살다 보면 우리는 행복한 순간보다는 힘들고 뭔가 풀어야 할 인생의 문제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픈 환자들은 아프고 힘든 순간을 더욱 되새김질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행복한 순간을 말하는 시간을 가져서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시간 말고도 행복한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인식시켜주어야 한다”며 그 시간을 왜 갖는지 설명했다.

“밥맛을 잃었다가 밥맛이 돌아왔어요.” “공무원 생활 하고 은퇴해서 이렇게 아내와 둘이서 지내는 것이 행복입니다.” “남편 암이 코에 생기는 희귀암이고 재발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재발은 됐지만 다른 곳에 전이 안 된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갔는데, 하늘이 맑고 푸른 거예요. 혼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도 안 들데요. 푸른 하늘만 봐도 행복했어요.”

여러 사람과 행복한 순간을 나누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한 순간을 듣다 보면 ‘아~ 저런 행복도 있지~’ ‘아~ 이런 순간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구나’라고 힌트를 얻곤 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행복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탄할 줄 아는 구체적인 행복 말이다. 고통이나 슬픔을 이웃과 나누면 그 고통과 슬픔이 줄어든다지만, 그 시간을 가져보니 행복과 기쁜 감정은 나누면 배가 되었다.

또 이 시간에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도 목도했다. “행복한 일이 뭐가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도 없는데…”라며 몸이 아픈 이야기만 장황하게 하는 70대 할머니가 계셨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님, 그래도 분명히 행복한 순간이 있을 거예요. 한번 찾아보세요”라고 인내하며 기다려주었다. 또 선생님은 평소에 할머니를 반갑게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림 못 그린다는 할머니를 기필코 수업에 참여하게 해 캘리그래피나 수채화를 그리도록 하고 할머니의 작품에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놀라운 건 그런 시간이 쌓이자 할머니의 표정이, 또 할머니의 그림이, 할머니의 말이 점점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미간을 찡그리고 항상 아프다고 투덜대던 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웃기 시작했다. 또 다른 사람들처럼 사소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도 칭찬했다. 할머니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가 빙그레 지어졌는데, 나중에 병의 차도도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항암 치료 말고도 행복한 순간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감정을 교류했던 그 시간이 할머니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트 펼쳐 기쁨 리스트 5개 써보자

암 치료에 처음으로 심리적 개입을 시도한 칼 사이먼턴 박사는 육체적·정신적 균형이 암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1971년 사이먼턴 박사에 의해 개발된 ‘사이먼턴 요법’의 연구 결과를 보면, 희망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하는 환자는 절망감에 빠져 치료에 임하는 환자보다 훨씬 예후가 좋았다. 사이먼턴 요법에서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병의 진행에 차이를 만들고,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 9가지 주제를 다루는데, 그 중 첫번째가 ‘기쁨 리스트’ 작성이다. 자신의 인생에 기쁨을 주는 것, 깊은 충족감을 주는 것, 의미를 주는 것, 가슴 설레게 하는 것 등을 최소한 5개 이상 적어보는 것이다. 사이먼턴 박사는 기쁨 리스트를 작성하고 당장 그 일을 하면 좋지만 하지 못하고 상상만 하더라도 그 에너지가 치유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일본의 심리치료사이며 사이먼턴 요법 전문 트레이너인 가와바타 노부코가 쓴 <암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기쁨 리스트 작성 예시가 나와 있다. 나의 기쁨과 구체적인 내용을 쓰고, 언제 가능한지, 난이도는 어떤지 등을 쓰게 돼 있다.

암 환자든 아니든 자신의 심리적 건강을 위해 노트를 펼치고 자신의 기쁨 리스트를 작성해보면 어떨까. 또 자신의 행복한 순간을 지인에게 공유해 ‘행복과 기쁨의 지대’도 확장해보시길!

양선아 |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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