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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거리 두어진 사람들’의 비명 “우리의 위험은 불평등하다”

등록 2020-10-17 14:19수정 2020-10-17 14:51

[토요판] 특집
사람과 인권의 눈으로 본 코로나19

시민건강연구소 ‘코로나19 시민백서’
의사결정권 가진 관료·전문가 아닌
삶 위협받는 사람들 시선으로 연구
“개입 위해 사태 한가운데 발표”

거리 두기 이전부터 거리 두어진 삶
코로나바이러스 접촉 줄이는 역설
차별·배제가 감염병 접근 막았지만
바이러스는 차별을 강화하며 ‘복수’

재난 때마다 위험의 불평등 되풀이
세계 칭송받는 K방역에서도 재확인
‘감염 위험’과 ‘감염병 위험’은 달라
사회적 조건 치유돼야 재난도 치유

법에 ‘감염병 의심자’ 정의 추가되며
정보인권과 자유권 침해 우려 증가
거리 두기 원칙만큼 대면의 원칙도
집회 금지만큼 가능 지침도 있어야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시민건강연구소에 모인 <인권 중심 코로나19 시민백서> 연구팀장들. 왼쪽부터 최홍조 세계화와건강연구센터장(건양대 의대 교수, 정보인권 및 자유권 부문), 김성이 연구원(거버넌스 부문), 김명희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보건의료노동 부문), 김정우 연구원(위험 불평등 부문).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시민건강연구소에 모인 <인권 중심 코로나19 시민백서> 연구팀장들. 왼쪽부터 최홍조 세계화와건강연구센터장(건양대 의대 교수, 정보인권 및 자유권 부문), 김성이 연구원(거버넌스 부문), 김명희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보건의료노동 부문), 김정우 연구원(위험 불평등 부문).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시민건강연구소가 <인권 중심 코로나19 시민백서>를 20일 발표한다. 사람과 인권을 중심에 둔 ‘시민백서’는 국가·행정·전문가와는 다른 시선으로 코로나19를 본다. 확진자 통계와 감염 경로 관리에 대한 평가 대신 평소 눈에 보이지 않다가 재난만 닥치면 가시화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백서를 이끈다. ‘감염병 의심자’의 정의가 감염병예방법에 추가되면서 첨예해진 ‘감염병 시대의 정보인권과 자유권’ 문제도 시민의 관점으로 논의된다.

거리 두기와 거리 두어지기.

사회적 거리 두기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거리 두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감염병 재난이 초래한 거리 두기는 ‘평소 사회로부터 거리 두어져온 재난’의 재확인이었다. 재난 이전부터 재난이었던 그들의 거리 두어지기는 감염병 재난을 만나면서 바이러스와의 접촉을 줄이는 역설을 낳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가는 거잖아요. 전염이라는 게.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요. 한국 사회의 어떤 조직과 관계망 속에서 관계가 없다고요. 특히 농업 노동자들 대부분은 한달에 이틀이 휴일이에요. 나머지 (시간은) 전부 소나 돼지, 딸기랑만 지내요.”(이주노동활동가)

“쪽방 주민들이 사회적으로 교류를 하는 게 좀 한계가 있어요.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다 이 동네에서 만나고. 외부의 교류 같은 것도 활발하지 않은 편이니까 지역사회로부터 격리된 그런 효과? 그런 현상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코로나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쪽방활동가)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되레 홈리스는 (코로나19에) 더 안 걸린다고. (집도 가족도 없는) 홈리스들은 서로 접근하거나 밀착해 있지 않거든요. (무료급식소에서 밥 먹을 때 줄 서는 것 외엔) 서로 누구랑 붙어 있지도 않아요.”(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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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어진 사람들의 재난

케이(K)방역의 기반인 ‘거리 두기’를 거리 두고 바라보며 <인권 중심 코로나19 시민백서>(10월20일 발표 예정)는 본문을 연다. 거리 두기 이전부터 거리 두어진 사람들은 담담하게 말한다. 감염병이 인간 세계에 파놓은 ‘인류사적 거리’와 누군가의 일상에 차별과 배제가 강요해온 거리 사이가 멀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모두가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시대에 일부에게만 강요된 ‘어떤 거리’는 감염병과 맞물려 이중의 낙인을 찍는다.

“(장애인들은) 신체적으로 좀 모습이 다르잖아요. 그 자체로 잠재적 코로나 확진자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야, 너 장애인이지? 너 코로나니? 이렇게 되는 거예요. 호흡기에 장애가 있는 분들은 말을 할 때 좀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러면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완전 달라지고 무서워하거나 심지어 욕하고, 너 왜 밖에 나왔냐 이런 식이 되어버리는. 코로나인데 왜 돌아다니냐고.”(장애인활동가)

누구나 바이러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도 불편부당한 불행은 없다는 사실을 백서는 ‘거리 두어진 사람들’의 말로 드러낸다. 2006년 창립한 시민건강연구소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2007년 삼성중공업-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고양터미널 화재 사건, 2015년 메르스 사태 등 한국 사회가 겪은 사회적 재난들을 분석해왔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 3월 분야별 팀(위험 불평등, 정보인권과 자유권, 보건의료 인프라, 거버넌스)을 꾸려 유례없는 감염병 재난을 ‘시민의 위치’에서 연구했다. 백서의 부제는 ‘코로나 시대 시민의 삶, 우리의 권리’다.

―‘시민’ 백서인 이유는?

“확진자 통계와 감염 경로 관리에 초점을 맞춘 국가·행정·전문가의 관점과는 다르게 접근했다. 연구 참여자들(interviewees)도 코로나19로 삶이 가장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평소 이 사회에서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연구의 중심에 있다. 시민의 관점이란 ‘사람과 인권 중심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위험 불평등 부문 팀장)

―시민의 눈으로 코로나19 사태를 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부 관료나 전문가가 판단하는 감염병의 양상과 실제 시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낙인과 편견의 공포에 떨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면 다른 쟁점들이 드러난다.”(최홍조 건양대학교 의대 교수, 정보인권 및 자유권 부문 팀장)

시민백서는 ‘시민의 눈으로 만든 백서’의 의미뿐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 만든 백서’란 의미도 지닌다. 연구소 회원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의대 교수와 연구자, 법조인 등 자발적으로 동참한 20명이 분야별로 나뉘어 현장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보통 사태가 마무리된 뒤 내는 백서를 사태가 한창일 때 발표하는 까닭은?

“상황에 개입하기 위해서다. 지난봄 연구를 시작할 때 날씨가 추워지는 가을에 2차 유행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 대규모 유행이 다시 오기 전에 백서를 마무리지어 지금까지 간과된 취약집단을 보호하고 정책 변화를 이루는 데 백서가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랐다.”(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거버넌스 부문 팀장)

사람과 인권을 중심에 두고 살피면 바이러스의 동선은 무차별적이지 않았다. 자본·권력과 먼 순서대로 찾아다니며 이 세계가 배치한 서열을 확인시켰다.

외부 사회와 멀찍이 거리 두어진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반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힘들 만큼 거리 두기가 불가능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공장의 좁은 컨테이너나 가건물, 비닐하우스 등에서 여러 명이 함께 지냈다. 쪽방촌 주민들은 한 평도 되지 않는 방과 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살며 층마다 하나씩 있는 공동화장실과 공동세면장을 사용했다. 국내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온 청도대남병원은 집단거주시설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감염병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줬다.

차별과 배제가 바이러스의 접근을 막는 차단벽이 됐지만 벽에 가로막힌 바이러스는 차별과 배제를 더욱 강화하며 사회에 ‘복수’했다.

“고립돼 있다는 것은 갇혀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이주노동활동가)

에스엔에스(SNS) 사진 속 남자가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눈을 보였다. 수개월째 이발을 하지 못한 남자는 머리가 덥수룩했다. 오랫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검은 수염이 턱과 뺨을 뒤덮으며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깎지 못한 머리카락과 깎지 않은 수염은 몇달째 외출을 금지당한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갇힌 상황’을 기록해 외부로 알리는 방법이었다.

이주노동자에게 취해진 고용주들의 방역 조처는 “좌우간 외출금지”로 요약됐다. “격리와 감금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썼다. 감염 위험을 이유로 공장 앞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한 뒤 근무시간 외엔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회사도 있었다.

“마스크가 없으니까 겨울에 쓰던 면마스크를 두겹 세겹 (끼거나), 공장에서 쓰는 라텍스 장갑 위에 면장갑(을 겹쳐서) 쓰거든요. (사장이) 걸리면 죽는다, 나가지 마, 하는데 (그래도 공장 밖으로) 나와야 되면 마스크 세겹씩 쓰고….”(이주노동활동가)

홈리스행동과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등 8개 단체가 7월16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숙인 재난지원금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홈리스행동과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등 8개 단체가 7월16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숙인 재난지원금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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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때마다 위험 불평등 되풀이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에도 비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은 제한되지 않았지만 장애인 콜택시(장콜)는 병원 방문 목적 외엔 운행이 중단됐다.

“의료기관 가는 거 말고는 장콜 못 해주겠다는 거예요. 문제는 쌀도 사러 가야 되고 라면도 사러 가야 되는데. 병원 간 영수증을 캡처해서 보내면 콜택시를 연결해줬어요. 그거 없이 콜택시 부르면 안 되는, 못 가는. 이동권이 완전히 제약된 거죠. 너 병원 가는 거 말고 외출하지 마, 이렇게 된 거죠.”(장애인활동가)

예방적 코호트 격리의 실효성도 백서는 다르게 봤다. 3월 초부터 자치단체별로 노인요양시설과 장애인거주시설, 요양병원, 정신요양기관 등을 대상으로 코호트 격리 조처(2일 경기도 1800여곳, 9일 경상북도 570여곳)가 잇따랐다. “코호트 격리는 시설 안에 확진자가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시행됐다.

“재난 취약 계층을 혐오하게 만드는 코호트 들어간다고 하면서, 당신들은 여기에 있어야만 우리 사회가 안전해진다는 인식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코호트 조치를 하면서 실제로 (시설) 앞에 ‘위험 구역’이라고 써 붙여놨거든요. 왜 위험 구역이냐? (안에 확진자가 있는지) 조사조차 안 해놓고, 진짜로 위험이 있는지 아닌지조차도 확인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시설 앞에다가 그렇게 써놓고 출입 통제하고 했던 것들이 사실상 재난 취약 계층에 낙인(을 찍는 거잖아요). 뭔가 사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는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근무자)

무조건적인 “코호트 격리는 시설 이용자와 가족, 종사자의 자유와 안전을 박탈함으로써 외부의 안전을 도모한 것과 다름없었다”고 백서는 평가했다. 예방적 코호트 격리를 당한 대구의 한 장애인 생활시설에선 6명이 사는 방에서 1명이 발열 증상을 보이면 나머지 5명을 옆방으로 이동시켜 11명이 한방에서 지내도록 했다. 열이 난 당사자만 감염 검사를 받았고 같은 방에서 지낸 접촉자들은 받지 못했다.

“자본의 분배가 상층에 편중된다면 위험의 분배는 하층에 편중된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시민건강연구소가 위험의 불평등 양상을 분석(‘인권 중심의 위기대응: 시민, 2015 메르스 유행을 말하다’)하며 쓴 문장이었다. 지난 6월4일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제출한 3차 추경안에서 발달장애인 활동서비스 예산 100억원을 삭감했다. 전날 광주광역시의 한 도로에선 59살 어머니가 24살 발달장애인 아들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어머니는 코로나19로 광주의 복지시설이 일괄 폐쇄되면서 집에서 아들을 돌봐왔다. 그래서 이 질문은 중요하다.

―5년 전 메르스 보고서는 ‘취약집단에 떠넘겨진 위험의 불평등’을 지적했다. 세계가 케이방역을 칭송하는 지금 이 현상은 왜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감염병이 찾아와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김정우)

백서는 ‘이 구조’를 이렇게 정리했다.

“가장 핵심 원인으로 우리는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서 ‘사람 중심의 관점’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부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다. 집요하게 동선을 파악했고 하루하루 어디에서 누가 얼마나 확진되었고 사망했는지를 발표했다. 암묵적으로 정부도 시민들도 그것을 성과 지표로 삼아 대응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했다. 하지만 모두가 경험한 코로나19의 영향은 감염이 되었다 아니다에 그치지 않았다. 어떠한 조치(의 결과)로 일상에 변화를 겪었고, 필요한 무언가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사회적 관계가 차단되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정도의 고통이 되었건 개인이 감당해야 했고, 그 현황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정부의 책임으로 평가되지도 않았다.”

감염병의 위험을 “감염의 위험으로만 접근하면 자충수를 둘 수도 있다”(최홍조)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코로나에 감염되진 않았지만 무료급식이 끊겨 사망하는 분이 나오면 그 역시 코로나 대유행이 초래한 비극”(최홍조)이다. “투석실 폐쇄로 제때 투석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신장장애인은 코로나가 직접 사인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사망”(김성이)했다. 개인 삶의 조건과 그 삶을 지탱해주는 사회의 조건이 치유되지 않으면 감염병도 치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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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목소리 반영, 방역에 도움

가난할수록 코로나19 감염률은 높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노동자 중 임금 수준이 하위 1~2분위인 노동자 비중이 28.6%(6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달했다. 9~10분위 고임금 노동자(17.3%)의 1.7배였다.

바이러스는 안전망이 얇은 순서대로 정확하게 찾아갔다. 만성질환자 폐쇄병동, 요양·중증장애인 생활시설 등 밀집공간을 파고들며 확진 규모를 키운 바이러스는 이후 콜센터와 물류센터 등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의 일터로 옮겨갔다.

“방한복도 다 돌려 입었어요. 안전화도 돌려 신고요. 어떤 건 입으면 축축해요. 하루 4~5번 공정을 옮겨요. 집품을 하다가 일이 좀 줄어들면 다른 층에 가서 또 집품 하다가 밑으로 끌려가서 포장하다가 또 올라와서 다른 거 하고. 코로나 시대에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대규모 확진자가 나온 물류센터 해고노동자)

사회적 거리 두기는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사람들의 대면 노동을 바이러스를 대면하는 앞자리에 세우며 유지됐다. 흩어져야 사는 언택트 사회도 흩어진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연결됐다.

“(수리요청을 접수하는) 콜센터 관리자들이 상담사들을 쪼아요. 최대한 많은 건수를 해야 하니 빨리 연결하라고. 현장기사들은 위험한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무작정 갔는데 (확진자가 다녀가) 폐쇄된 곳 아니면 자가격리자(의 집)인 거예요. 문을 열어주면서 고객이 ‘제가 자가격리 중인데 설치해줄 수 있으세요?’ (이러는데) 답답한 거죠. (어떤) 고객은 스프레이를 뿌려요, 기사를 세워놓고. 우리가 잠재적 보균자인 것처럼.”(통신 A/S 노동자)

환자 추적감시나 백신 개발만큼 중요한 것은 거리 두기를 지킬 수 없는 사회 곳곳의 위험에 대응하는 일이다. 거리 두어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까이 당겨 정책 결정에 반영해야 방역에도 도움이 된다고 백서는 말한다.

지난 5월 이태원 클럽발 확진으로 성소수자들을 향한 혐오가 확산됐을 때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긴급대책본부를 꾸렸다. 그들이 서울시와 협력해 신상 추적 대신 개인정보를 최소화하는 익명검사가 이뤄지도록 하면서 자발적 검사가 급증했다. 청도대남병원의 정신장애 폐쇄병동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땐 장애인단체들의 ‘선제적 보호조처’ 요구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간담회(2월)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단체들이 전달한 목소리는 6월 보건복지부의 민관합동 최초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 마련으로 이어졌다. 메르스 사태 이후 ‘장애인 감염병 예방 매뉴얼을 수립하라’는 2016년 법원 조정안에 정부가 응답 없이 4년을 흘려보낸 뒤였다.

―메르스 사태에 비춰봤을 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일부 반영되는 쪽으로 ‘재난 거버넌스’가 작동한 이유는?

“감염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됐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위상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그들이 감염병 전파자가 된 탓이 컸다. 그냥 내버려두면 더 큰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당사자들이 의견을 내고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길이 열려 있어야 실효성 있는 방역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김성이)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9월2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노동자들의 고통 해소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9월23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노동자들의 고통 해소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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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감염병의 언어 아냐”

정보인권과 자유권의 문제는 ‘광화문 차벽’의 등장과도 얽히며 가장 논쟁적인 이슈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확진자 발생 병원조차 공개하지 않아 불신을 키웠던 메르스 사태 때와 달리 지금은 ‘감염병 의심자’의 스마트폰 위치 정보와 신용·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토대로 광범위한 정보수집과 제공이 가능해졌다. 5년 사이 감염병에 대응하는 대표적 정책 변화로 백서는 ‘자유권 침해와 개인정보 보호 유보의 법적 정당화’를 꼽았다.

지난 2월26일 국회는 ‘코로나3법’(감염병예방법·의료법·검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감염병예방법엔 ‘감염병 의심자’의 정의가 추가됐다. 격리 등을 거부하는 ‘의심자’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됐다. 이태원 클럽 확진 당시 방역당국과 서울시가 클럽 주변 기지국 접속자 중 30분 이상 체류한 사람 1만명의 통신 정보를 확보(‘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7월 헌법소원 청구)한 근거도 그들을 감염병 의심자로 분류한 탓이었다. 백서는 질문한다.

“감염병 환자 등과 접촉이 ‘의심’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접촉이 의심되는 사람은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 귀국한, 유럽에서 귀국한, 미국에서 귀국한 국민은 모두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인가? 수백명의 환자가 발생한 서울에 살고 있는 나는 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이 아닌가? 감염병 병원체 ‘등 위험 요인’이란 대체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일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테러’라는 단어까지 국회에서 나왔다. 이병훈 민주당 의원은 ‘고의로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는 테러방지법 개정안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다. “혐오와 차별의 시선이 감염인에게, 심지어 ‘의심자’에게까지 향하는 사회가 이미 도래”하고 있었다.

“정의가 모호한 감염병 의심자들에게 매우 높은 수준으로 신체 및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지만 그 내용과 절차가 헌법에 부합하는지 묻는 논의는 부족하다. 세계보건기구는 ‘의심’을 뜻하는 서스펙트(suspect)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권고한 지 오래다. ‘의심’은 형법의 언어이지 감염병의 언어는 아니다. 의무를 강제하는 만큼 대안도 제시돼야 한다. 검사 권고를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자발적 자가격리를 권고하고 자가격리조차 힘든 경우 시설격리를 권고하는 방법도 있다. 집회를 금지할 땐 집회를 할 수 있는 지침도 내놔야 한다. 거리 두기의 원칙이 있다면 대면의 원칙도 마련돼야 한다.”(최홍조)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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