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7일 오전 국회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자 전문가 공동선언 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과로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뇌·심혈관질환 등 직업관련성 질병을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병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업무상 인과관계 등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사각지대가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이번 시행령을 적용하면 질병 산업재해 발생건수가 가장 많은 질병 5개가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서 제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환경전문의학 전문의인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은 15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가 처벌법이라는 특성 때문에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한 급성질환으로 직업성 질병 대상을 한정했다고 설명했는데 급성질환이라는 것과 업무상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는 건 다른 얘기”라며 “만성질환이라고 알려진 뇌심혈관 질환도 급성으로 촉발될 수 있고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만성중독과 뇌·심혈관질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정신질환 등은 직업성 질병에 포함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 발생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여기에 해당하는 직업성 질병의 종류를 시행령이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지난 9일 급성중독질환 등 24개 질병을 직업성 질병으로 특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발표했으나 노동계는 과로사의 원인이 되는 뇌·심혈관계질환과 직업성 암이 빠진 점을 두고 반발했다.
이 센터장은 “법 조문에 적혀있는 ‘급성중독 등’은 급성중독과 유사한 발생 특성을 보이는 질병 가운데 중대하고 예방 가능성이 있는 질병인지를 확인해서 넣으라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시행령에 정해진 대로 24개 질병만 인정하면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겨 집단 발병을 야기했거나 안전 관리 부족으로 노동자가 천식, 폐렴에 걸리게 만든 사업장도 중대재해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뇌·심혈관질환 등을 직업성 질병에 포함하는 한편, 시행령이 정한 목록에 없는 질병 중에서도 업무 인과관계가 상당하거나 예방이 가능했던 경우는 인정할 수 있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뇌·심혈관계질환 등을 직업성 질병에 포함하면 개인 습관으로 발병된 경우에도 사업주가 처벌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센터장은 이에 대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질병이 발생한 사실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사업주가 제대로 관리를 안 했는지 여부를 확인한 뒤 처벌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시행령으로 인해 불합리한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명선 민주노총 산업안전보건실장은 “같은 병도 사망하면 중대재해로 인정되고 평생 약 먹으면서 살면 인정이 안 되는 것이냐”라며 “질병 산업재해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형을 중대산업재해에서 제외해 직업성 질병으로 처벌받는 경영책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노동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질병 산업재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질병은 신체부담작업(5252건)이고, 요통(4177건)과 난청(2711건), 진폐(1288건), 뇌·심혈관질환(1167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질병은 모두 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정한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상 질병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적용 대상 질병을 급성질환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4일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현재 시행령에 정해진 것보다 넓힐 필요가 있지 않냐’는 질의에 “산업재해 보상에 대해선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도 개연성이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판정하지만 형사처벌에도 이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행령이 이른바 ‘2인1조’ 작업 등을 명시하지 않고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조처를 포괄적으로 정한 데 대해선 노사 의견이 분분하다. 시행령은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장비 등을 갖추기에 적정한 예산을 편성’토록 정해, 사실상 개별 건마다 적정성의 판단 기준을 행정부와 법원에 맡겼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시행령이 모호해 경영책임자가 처벌될 위험이 크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연맹(경총)은 14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대책회의를 열고 “경영책임자 의무인 안전보건관리체계 내용이 불명확해 의무 범위를 예측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반면 노동계는 시행령이 경영자의 면책 수단으로 기능할 것을 우려한다.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만약 원·하청 관계에서 하청업체 직원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대금을 적게 준 원청 잘못인지 이를 예산에 편성하지 않은 하청 잘못인지 논란이 될 것”이라며 “사고 발생 시 적정 예산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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