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성 물질로 인한 노동자의 산업재해 신청 사례가 끊이지 않는 한국타이어에서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또다시 산재 인정을 받았다. 이 회사에서 백혈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다섯번째 사례다.
9일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노동자 김아무개(57)씨는 지난달 26일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부터 자신이 앓고 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업무상 연관이 있다고 인정받았다.
김씨는 1987년부터 33년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근무하며 타이어 고무를 고루 분산시키기 위한 각종 약품 혼합 작업을 해왔다. 그는 지난 2019년 건강검진에서 이상 증상을 최초로 발견한 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백혈구 수치가 감소하는 증상이 나타났고 같은해 12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김씨는 업무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돼 해당 질환으로 이어졌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쪽은 “신청자가 하는 업무엔 유해물질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김씨의 질병이 업무에서 비롯했다고 판단했다. 판정위는 “과거 타이어 공장 역학조사에서 해당 백혈병과 관련해 유해인자 노출이 확인됐고 고무산업 종사와 혈액암의 관련성이 역학 연구 결과를 통해 잘 알려진 점, 과거에 정련 공정 업무를 수행할 때 벤젠이 포함된 물질을 사용한 점, 30년 이상 장기간 고무산업에 종사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신청인의 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금속노조의 설명을 보면, 한국타이어 노동자 가운데 백혈병(혈액암)을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김씨가 다섯번째다. 지난 2001년 한국타이어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산업재해 불승인취소소송을 통해 백혈병 산재를 인정받았고, 2003년 정아무개씨와 유아무개씨도 법원 판결로 백혈병과 작업 환경의 연관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판례가 쌓인 결과 2012년 한국타이어 협력업체 직원인 권아무개씨는 같은 질병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고도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을 받았다.
한국타이어의 작업 환경 유해성 문제는 해묵은 논란이다. 2006년~2007년엔 암과 심장질환으로 한국타이어 노동자 15명이 숨져서 논란이 제기됐고, 2007년 실시한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서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2008년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역학조사를 해서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심장질환 사망률이 일반 국민에 견줘 5.6배에 이른다는 사실도 발견해 냈으나, 결과적으론 ‘돌연사와 작업 환경과의 직접적 관련성은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듬해 대전지방법원은 이와 관련해 사업주의 관리 책임을 인정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도 한국타이어 노동자였던 고 안일권씨의 폐암 사망에 ‘고무흄’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한국타이어의 작업 환경과 노동자 질환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인정했다. 한국타이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이 운영하는 기업이다.
금속노조는 이날 한국타이어가 김씨의 질병에 원인을 제공하고도 되레 퇴직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재해자가 지난해 12월 재직 중에 백혈병 진단을 받자 회사(한국타이어)가 위로와 생계지원 대신 희망퇴직을 종용했다. 노동자 입장에선 산재를 당한 데다 생계의 위협까지 겪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종용한 적이 없으며 당사자가 스스로 퇴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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