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전반에 ‘공정의 분야별 외주화’가 자리잡으면서 하나의 공정에서도 서로 다른 회사 노동자들이 동시에 작업하는 일이 흔하다. 이때 원청과 하청, 하청과 하청 간에 벌어지는 ‘위험 소통’ 공백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구조적 위험 요인이지만, 불법파견 시비를 우려한 원청은 불법이 아님에도 안전을 위한 관리감독조차 꺼린다.
지난해 7월 삼표시멘트에서도 컨베이어벨트 용접 준비를 하던 하청 노동자가 갑자기 움직인 기계에 끼여 숨졌다. 이재형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삼표지부(이하 노조) 지부장은 “재해자에게 무전기가 없어 설비 담당자와 연락할 수 없었고, 설비 준비가 된 줄 알고 작업을 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시멘트공장에 출입하는 청소노동자나 용접공은 사고 뒤에도 여전히 무전기 없이 일한다. 이 때문에 기계가 불시에 가동돼도 이를 전달받지 못해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이 지부장은 “설비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에게 무전기를 간혹 주긴 하지만 ‘원청은 1번, 하청은 2번’ 식으로 각자 쓰는 무전기 채널이 다르다”며 “불법파견 시비 때문에 일부러 떨어뜨려놓은 건데, 일은 같이 하면서 무전 교신은 서로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표시멘트 관계자는 <한겨레>에 “협력사를 포함한 모든 작업자가 같은 채널을 사용할 경우 긴급한 상황에서 무전 불량이나 혼선으로 사고를 유발할 수 있고 불법 업무 지시의 우려도 있을 수 있어 같은 채널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자체 무전기나 비상연락처 등 연락 체계를 지속해서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 감독 행위는 법적으로 이미 원청 사업주에게 부여된 의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는 하청(관계수급인) 노동자가 원청(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하는 경우 그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원청에 부여했다. 또 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산안법이 2019년 개정되기 전까진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방치해도 대부분 수백만원 과태료를 무는 수준에 그쳤지만, 법이 바뀐 뒤론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 것이다. 또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원청이 하청 노동자 재해 예방에 관한 조치를 게을리해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고용노동부 역시 그간 원청이 하청의 안전에 개입하는 행위는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노동부는 2019년 개정된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에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따라 도급인(원청)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경우는 근로자파견의 징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각주를 달았다. 불법파견 시비를 우려하는 언론 보도에도 같은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냈다.
현장에선 여전히 불법파견을 이유로 원청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험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산업재해가 발생한 뒤에 사업주를 형사처벌할 수는 있지만, 노동자의 죽음 자체는 막지 못한다. 산업재해 사건을 다뤄온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를 잘 몰라서 이행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고, 알면서도 불법파견 시비를 이유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힐 방침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했다가 불법파견으로 여겨질 가능성을 질의하는 기업들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런 쟁점을 논의하고 외부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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