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를 방으로 개조한 모습. 독자 제공
“방과 화장실, 부엌이 하나씩 있는 컨테이너에 4명이 지내는데 한 사람당 하루 2시간분 급여를, 한 달에 40만원 정도 공제한다. 4명을 합치면 한 달에 160만원씩인데 정말 힘들다.”(외국인 노동자 ㄱ씨)
허가 받지 않은 건축물을 이주 외국인 노동자에게 숙소로 제공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지침을 개정한 뒤에도 여전히 무허가 시설을 숙소로 제공하고 숙식비까지 공제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여건 문제는 지난 2020년 12월 캄보디아 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숨지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으며, 지난 2월에도 인도 노동자가 무허가 컨테이너 화재로 숨졌다.
사단법인 한국 국제노동기구(ILO) 협회가 지난 11월 고용노동부 연구 용역을 받아 작성한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환경 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를 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숙소를 제공한다고 밝힌 사용자 387명 가운데 215명(55.6%)은 주택이나 오피스텔, 숙박업소가 아닌 ‘가설건축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립식 패널(119명)이나 컨테이너(32명), 비닐하우스 내 시설(32명),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사업장 건물(19명), 축사 관리사(13명) 등에 살게 하는 것이다.
가설건축물이라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신고필증을 받으면 거주가 가능하다. 그러나 필증을 받았다는 응답은 25.6%(55명)로 받지 않았다는 응답(74.4%·160명)에 견줘 매우 낮았다. 사용자들이 무허가 건축물을 지어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사용하는 관행이 현장에 만연하다는 뜻이다.
상당수 사용자들은 수준 이하의 시설을 제공하면서도 과도한 숙박비를 징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연구진이 현재 사업주 제공 숙소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306명을 대상으로 지난 8∼9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용자에게 숙소 임차료 등을 지급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9.2%(120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한 달 평균 19만5000원을 숙소비로 지급했다. 그러나 숙소비 등의 지급 금액이 적정하다는 인식은 평균 2.78점으로 ‘보통’(3점)에 미치지 못했다. 사업주에 숙소비를 지급하는 이들 가운데 ‘지급 금액이 적정하다’고 답한 이는 28명에 그친 반면, 적정하지 않다고 답한 이는 49명에 달했다.
연구진이 외국인 노동자 25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보면, 한 어업 노동자는 “부엌이 하나고 화장실은 2개밖에 없는 집에 10명이 같이 산다”며 “새벽 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해 퇴근 후 휴식이 꼭 필요한데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조업 노동자도 “방이 세 개인 집에 10명이 같이 살았는데, 밥 먹을 때는 공간이 안 되어서 이 사람이 먼저 먹고 다른 사람이 나중에 먹는 식으로 양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이 2개밖에 없어 기다려야 했고 빨래도 순번을 정해 번갈아가며 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43조1항은 사용자가 임금 전액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며,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을 때만 임금 일부를 공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주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관련 법령이나 단체협약이 없지만 노동부는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를 받으면 임금 공제가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2001다25184)를 폭넓게 해석해 숙식비 공제 지침(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숙한 언어 사용으로 인한 부동산 계약의 어려움이나 사용자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응해야 하는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당한 조건의 숙식비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숙소비를 부당하게 징수당하지 않도록 규율하는 법령을 만들고 적격의 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지침도 주택 종류별로 상한선을 정해두고는 있으나 1실당 상한선이 아닌 1인당 상한선(월 통상임금 기준, 주택 등 15~20%, 임시주거시설 8%) 이어서 앞선 ㄱ씨 사례처럼 한 집에 여러 명을 살게 하고 부당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구진은 “사용자가 임대사업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실제 현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연구책임자인 이수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과도한 임금 공제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사용자 권리를 제한하는 문제이기도 해 당사자에게 맡겨두거나 지침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법으로 명문화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소규모 영세사업자까지 적격의 숙소를 갖추리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며 “지자체별로 재원을 들여 공동 기숙사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 하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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