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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건당 배달료 받는…라이더도 최저임금, 가능할까요?

등록 2022-04-14 11:18수정 2022-04-14 14:20

[박태우의 한줄 노동법] 4회
법원 “건당수수료·수당 받는 정수기 기사도 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대기시간 노동시간에 포함시킬지 논란
법상 건당최저수수료 정할 수 있지만 전례는 없어
라이더노조, 생계보장 안전 위한 ‘안전운임제’ 도입 요구
지난해 11월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서 라이더유니온과 민주노총 화물연대 주최로 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라이더보호법 제정과 배달·택배안전운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1월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도로에서 라이더유니온과 민주노총 화물연대 주최로 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라이더보호법 제정과 배달·택배안전운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저임금법 제5조(최저임금액) ③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시급)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2023년 적용 최저임금 심의가 지난 5일부터 시작됐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만,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이라는 목적을 부정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의 노동자가 아닌 이들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플랫폼노동자가 그렇다. 플랫폼기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플랫폼노동자의 보수는 시시각각 변하는 데다, 프로모션 수수료의 ‘거품’과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걷어내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돈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때문에 플랫폼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플랫폼노동자들은 ‘적정임금(보수)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플랫폼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수)를 보장하는 일, 가능할까?

정수기 기사, ‘도급제 노동자’로 통상시급 인정

플랫폼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라면, 당연히 최저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 흔히 실적에 따른 수수료 형태로 보수를 받는 경우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적에 따라 임금을 받더라도 그것이 노동의 양과 질에 대한 대가에 해당하는 ‘임금’이고, 노무를 제공한 사람이 사용자의 ‘지휘·감독’에 따라 일했다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단해왔다.

최근엔 건당수수료와 수당을 보수로 받는 정수기 설치기사들의 경우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성이 인정돼, 퇴직금뿐만 아니라 연차수당·연장근로수당·주휴수당 등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관련기사: 대법 “청호나이스 정수기 AS 기사들, 노동자 맞다”) 일하기로 한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시급에 따라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연장근로수당과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을까?

법원은 이 정수기 설치기사들이 근로기준법의 ‘도급제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도급제 노동자는 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생산 실적에 따라 임금을 받기로 한 노동자를 말한다. 생산한 물품의 개당 단가를 정해놓고 생산 실적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 식이다. 도급제 노동자에 관한 규정은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있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도급제 노동자들의 초과근로수당·연차수당 지급 기준이 되는 ‘통상시급’ 계산 방법과 최저시급 미달 여부를 계산하는 방법도 정해두고 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에도 도급제 노동자가 받은 임금이 최저시급에 미달하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이 규정돼있다. 통상시급을 계산하는 방법과 비슷한데, 받은 임금을 총 근로시간으로 나눈 시급이 최저시급에 못미치면 사용자에게 차액을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이 정수기 설치기사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연차수당·연장근로수당·주휴수당도 이와같은 계산법을 통해 산정됐다. 다만 이들의 시급은 최저시급보다 높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차액 청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수기 설치기사와 달리 플랫폼노동자는 노동시간을 어떻게 계산할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달라이더의 근로시간이 실제 배달에 소요된 시간만 해당하는지, 아니면 호출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포함되는지 등의 문제다.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포함하지 않아 총 근로시간이 짧아지면, 분모가 작아져 시급 환산액이 높아지므로 연차·주휴수당 지급에는 유리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는 근로시간이 길수록(분모가 커질수록) 시급환산액이 작아지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 최저시급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았을 경우 차액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법원은 우버 기사들의 호출대기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고, 한국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노동자)의 ‘전속성’ 판단 기준으로 사용되는 근로시간에도 대기시간을 포함하도록 규정한다.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운 도급제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법령상 제도도 있다. “근로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노동자의 생산고(실적) 또는 업적의 일정단위에 의해 최저임금액을 정한다”는 최저임금법 시행령의 규정이 그것이다. 플랫폼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면, ‘건당 최저수수료’를 정할 수 있다는 얘기지만,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정해진 적은 없다.

지난 5일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22년 최저임금위원회 1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22년 최저임금위원회 1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최저공임제, 영국 공정단가제

플랫폼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외에선 배달라이더와 같은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이렇다할 법적 판단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최저임금법과 비슷하게 플랫폼노동자의 적정한 보수를 보장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플랫폼노동자들의 ‘적정보수 보장’ 주장은 최근 들어 많이 제기되고 있다. 플랫폼노동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배달라이더의 경우 산업 성장과 플랫폼기업간의 경쟁으로 인해 배달라이더들이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배달수수료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배달라이더 확보를 위한 ‘프로모션성’ 배달료고, 건당 기본배달료는 2500~3000원 수준인 경우도 많다. 배달에 소요되는 시간과 발생하는 비용까지 견줘보면 기본배달료가 올해 최저시급인 9160원에 미달할 가능성도 높다. 배달라이더 노조들이 전체 배달료에서 프로모션성 수수료를 낮추고 기본배달료를 높여달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 비수기인 봄·가을엔 호출량이 줄어들고 기본배달료도 3천원대 수준이라, 여름·겨울·피크시간에 무리해서 운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안전과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주최로 열린 ‘플랫폼노동자 적정소득 보장방안’ 토론회의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 발제문을 보면, 일본은 노동기준법(한국의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는 아니지만, 일감을 위탁받아 그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가내노동자’에게 최저공임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한다. 후생노동대신이나 지역별 노동국장이 “공임이 낮은 가내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업종별로 정할 수 있다. 옷을 만들거나, 전자부품 제조업 등에 최저공임이 정해져있다.

영국에도 2004년 ‘공정단가제’가 도입돼, 생산한 분량·수행한 업무의 단위에 대해 공정단가를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특정 업종 평균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작업속도를 정해 이를 1.2로 나누고 다시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나눠 ‘공정단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업장 평균 작업속도가 1시간에 6개를 생산하는 수준이라면, 6개를 1.2로 나눠 5개가 된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만약 1만원인 경우, 1만원을 5개로 나눈 2000원이 ‘공정단가’가 된다. 평균 작업속도인 6이 아니라 5로 나누는 것은 작업속도가 떨어지는 노동자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법제화된 사례가 있다. 2020년부터 시행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다. 화물운송에 소요되는 비용을 포함해 운임의 최저선을 정한 것으로, 낮은 운임이 화물기사들의 생계뿐 아니라 도로 위의 안전도 위협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안전운임제는 운송비용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가를 3개월마다 연동하도록 정하는데, 최근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 안전운임제 적용은 화물기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차종·품목이 극히 적을 뿐더러, 일몰조항에 따라 올해까지만 시행되고 사라질 예정이어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등은 일몰제 폐지와 전 차종·품목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배달라이더들이 가입된 노동조합들도 라이더 생계보장과 안전을 위한 ‘안전운임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권오성 교수는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권리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고, 유급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직업인으로서의 플랫폼노동자는 헌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라는 문턱을 넘지못한 헌법상 노동자를 위해 현행 최저임금법과 유사한 별도의 입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처럼 구체적 업종을 정해 최저공임을 정하거나, 영국처럼 공정단가를 지급하도록 하는 등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에 해당하는 플랫폼노동자에게 현행 최저임금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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