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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LG 에어컨 수리기사는 왜 5층에서 맨몸으로 추락했나

등록 2022-04-18 04:59수정 2022-04-18 11:17

엘지전자 자회사 소속 30대 사망
실외기 주변 발디딜 공간 없는데
업무 지연 우려 탓 사다리차 못불러
회사 “높은 곳 작업시 사다리차 원칙”
노조 “일정 빡빡…늦으면 민원 초래”
지난 13일 엘지(LG)전자 자회사 하이엠솔루텍 소속 에어컨 수리 기사 이아무개씨가 에어컨 수리를 하다가 추락해 사망한 장소. 독자 제공
지난 13일 엘지(LG)전자 자회사 하이엠솔루텍 소속 에어컨 수리 기사 이아무개씨가 에어컨 수리를 하다가 추락해 사망한 장소. 독자 제공
지난 12일 엘지(LG)전자 자회사인 하이엠솔루텍 소속 에어컨 수리기사가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다가 추락해 숨진 가운데, 평소에도 에어컨 수리기사들이 빡빡한 업무 스케줄과 민원 우려 탓에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17일 <한겨레>가 사고 현장 사진을 확보해 살펴보니, 하이엠솔루텍 수리기사 이아무개(34)씨가 숨진 서울 송파구 인근 스터디카페 밖 5층 높이(12m)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주변엔 발 디딜 공간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외기를 감싸는 가벽이 있지만 성인 발 한 뼘도 안 되는 보폭이었다. 현장엔 사다리차가 없었고 안전고리를 걸 만한 지지대도 없었다. 이씨는 지난 12일 오후 창문을 분해하고 넘어가 실외기 상판을 딛고 가던 중 미끄러지면서 추락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쪽 설명에 따르면, 높이 3.5m 이상 건물에 달린 실외기는 사다리차를 이용해 수리하는 것이 원칙이고 작업 환경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고객에게 설명한 뒤 철수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고객이 불편 접수를 하더라도 수리기사의 인사고과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이엠솔루텍 관계자는 “이씨가 일하러 간 접수 건의 경우 사다리차 배차를 요청한 뒤 추후에 다시 방문하는 방법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조합 쪽은 수리기사들의 평소 업무 스케줄이 지나치게 빡빡한 탓에 사다리차 배차를 기다리는 등 작업 지연을 허용할 여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에어컨 수리기사의 업무표(타임테이블)는 통상 아침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1시간 단위로 회사 상담센터를 통해 배정된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7∼8건을 배정 받는 셈인데, 1시간 안에도 예약을 끝내기가 빠듯해 이 가운데 하나라도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 줄줄이 다음 예약 건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김태훈 금속노조 하이엠솔루텍지회장은 1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시스템 에어컨 특성상 기사가 현장에 들러 진단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수리가 되는 구조가 아니다”며 “부품을 구하고 사다리차를 배차하면 2∼3일씩 시일이 소요되는데 1시간씩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으론 이런 변수에 대응하기 어려운데다 고객 항의도 있기 때문에 ‘온 김에 한 번 점검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재훈 하이엠솔루텍노동조합 위원장도 “간단한 조치로도 문제 해결이 가능한 소형 가전과 달리 업소에서 쓰는 중앙냉방형 시스템 에어컨은 필요한 부품도 많고 주로 위험한 장소에 매달려 있어 사다리차 배차가 될 때까지 해당 건 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생긴다”며 “변수가 생겨도 회사가 다음 스케쥴을 쉽게 조정하거나 취소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객은 고객대로 컴플레인을 걸고 엔지니어는 다음 스케쥴이 줄줄이 밀리는 등 고스란히 개인 업무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은 수리 기사가 위험한 작업환경을 이유로 수리를 거절한 경우에도 고객 민원이 기사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고객이 기술자 태도를 이유로 민원을 걸면 안전을 위해 철수한 것일지라도 고과에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안전을 위한 이유였다고 회사에 말해도 다 빼 주는 게 아니고 고객이 형식상 다른 이유를 내세우면 기사 평가에 반영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게다가 운 좋게 그 건을 넘긴다 해도 다음 건부터 도착시간이 늦으면 줄줄이 고객들 항의를 받는데 그런 것들은 다 고과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고 퇴근 후에도 추가 업무를 하는 기사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하이엠솔루텍 관계자는 “회사도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표준 타임테이블 시간을 조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과실의 원인이 회사 내부 시스템에 있는지 노동자 개인에게 있는지를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하이엠솔루텍처럼 노동조합이 나서서 개인을 위험으로 내모는 구조적 원인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선 그런 대처가 더욱 어렵다.

하이엠솔루텍은 엘지전자의 시스템에어컨 수리를 담당하고 있는 자회사다. 고용노동부는 실제 수리기사 안전 관리·감독 책임도 하이엠솔루텍이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하이엠솔루텍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지켰는지 파악 중이다. 노동부는 하이엠솔루텍이 기사들을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실효성 있게 운영했는지, 노동자들의 의견을 제때 수렴하고 반영했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금속노조 하이엠솔루텍지회는 안전이 통제되지 않은 현장을 드나들어야 하는 방문노동자에 대해 총체적인 안전대책을 요구하고 재원 마련에 대한 엘지전자 쪽 입장을 요구할 방침이다. 하이엠솔루텍노동조합도 작업 방식에 수반되는 위험요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한 실태 조사를 하이엠솔루텍에 제안하는 한편 하이엠솔루텍 인력과 예산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엘지전자에 있다고 보고 엘지전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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