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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중대재해법 모호해서 못 지키겠다?…“규제 완화 꺼내더니, 모순적”

등록 2022-04-19 14:55수정 2022-04-20 02:46

기업 “경영책임자 의무 구체화” 요구하지만
전문가 “기업마다 위험 다양…구체화 한계”

기업 “1년 이상 징역 과도하다” 주장하지만
전문가 “법이 정한 의무 다하면 처벌 안 해”
지난 1월29일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민주노총의 기자회견이 2월3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앞에서 열리고 있다. 양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월29일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엄정 처벌을 촉구하는 민주노총의 기자회견이 2월3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앞에서 열리고 있다. 양주/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내 기업 열 곳 중 여덟 곳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법률이 모호하다”는 기업의 요구를 수용해 ‘중대재해법 불확실성 해소’를 내걸고 있으나, 법학 전문가들은 “더 이상 명확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기업들이 중대재해법만 더 구체적으로 만들라고 요구하는 태도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14~25일 국내 50인 이상 기업 367곳을 대상으로 팩스·전자우편을 통해 진행해 19일 발표한 ‘기업 안전관리 실태 및 중대재해법 개정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안전에 대한 경영자의 관심도가 매우·다소 높아졌다고 응답한 곳은 99.5%에 달했다. 또한 기업의 70.6%가 법 제정 전보다 위험시설·장비 개선·보수나 전담조직 설치·인력 확충 등 안전관련 예산을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법 제정·시행의 긍정적인 효과로 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럼에도 전체 기업의 81.2%는 “중대재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법률이 모호하고 불명확해 현장 혼란만 가중된다”(66.8%)였고, 개정 방향은 “경영책임자 의무내용 및 책임범위 구체화”(94%)였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러한 주장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노동법)는 이날 <한겨레>에 “기업들은 안전에 관한 의무를 세부적으로 정하면 ‘규제가 과도하다’고 말하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위험요인을 찾아서 개선할 의무를 부과하면 ‘불확실해서 못 하겠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기업 스스로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해 개선하게 해, 산업재해를 감소시킨 영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사업장마다 유해위험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정부가 일일이 지정해줄 수가 없어, 기업에 안전보건조치 의무만 부과하고 사업장 스스로 어떤 위험이 있는지 스스로 알아내 예방하도록 입법의 변화를 준 것”이라며 “한국도 ‘매뉴얼’ 방식의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 때문에 중대재해법을 제정한 것인데 ‘불확실해 못 지키겠다’는 기업들의 마인드 자체가 후진적”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법)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조치가 제대로 돼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 중대재해법이 규정하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이고 사업장마다 처한 현실이 다른데, 지켜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최정학 방송통신대 교수(형법)도 “영국 등 다른 국가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봐도 경영책임자나 사업주의 의무를 우리만큼 자세하게 규정하지도 않고 있다”며 “오히려 현재의 중대재해법 시행령이 산안법을 기준으로 의무를 좁게 규정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기업 안전관리 실태 및 중대재해법 개정 인식’ 조사 가운데 기업들이 밝힌 ‘중대재해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응답 현황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기업 안전관리 실태 및 중대재해법 개정 인식’ 조사 가운데 기업들이 밝힌 ‘중대재해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응답 현황

응답한 기업의 54.7%는 “기업과 경영자가 노력해도 사고는 발생할 수 밖에 없어서” 중대재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면책규정 마련”을 개정 방향으로 꼽은 기업도 47.0%였다. 경총 또한 “불명확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 발생 시 경영자에게 과도한 형사책임(1년 이상의 징역)을 묻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가 법이 정한 의무를 다할 경우 처벌되지 않을 뿐더러, 법 제정 취지에 따르면 강력한 처벌은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최 교수는 “기업들, 특히 대기업이 현장노동자들의 위험한 상황을 방치하고 공기(공사기간)를 단축해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는데, 기업을 강제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무거운 형벌이므로 강하게 처벌해보자고 해서 중대재해법이 나오게 된 것”이라며 “과태료 등으로 처벌하는 것은 기업에 아무런 효과가 없어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려는 것인데 형벌이 낮아져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과도한 처벌’이라는 비판에 대해서 김 교수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벌금형이라는 조건이 있어서, 의무 위반의 정도가 낮다면 벌금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법정형이 과도하다고만 볼 수 없다”며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되면서 기업이 운영되는 것을 바꾸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법률이 제정된 만큼, 기업도 ‘회사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인식을 가져야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논평을 내어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중대재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대해 뭐라 할 말을 잃는다”며 “이런 인식으로는 절대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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