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콘텐츠 제작 업체에서 영상편집 업무를 하는 한아무개(30)씨는 코로나19 2년 동안 팀에서 유일하게 재택근무를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다른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했지만 한씨만 제외됐다. 회사가 영상자료를 외부로 반출하는 걸 싫어하고, 개인 장비로 편집을 못 하게 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원래 폐가 안 좋아서 감염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인프라만 갖춰졌어도 재택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직무인데도 그렇지 못해 박탈감이 심했다”고 했다.
최근 일부 정보기술(IT)업체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 제도화나 ‘워케이션’(휴가지에서 업무 병행) 결정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한씨처럼 재택근무를 아예 해보지 못한 노동자가 훨씬 더 많다. 민주노동연구원이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용형태별부가조사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2099만명에 달하는 임금노동자 가운데 재택(원격)근무를 활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수는 전체의 5.4%인 114만명에 불과하다.
재택근무 활용 현황을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 소속 노동자 가운데 재택근무를 활용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16.7%(46만5000명)지만, 100∼299인 9.8%(19만6000명), 30∼99인 6.8%(27만2000명) 등 사업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비중이 줄어든다. 업종별로도 정보통신업이 24.8%로 가장 많고, 공공기관이 집중된 전기·가스 등 공급업 18.4%, 금융·보험업 15.7% 순으로 이른바 ‘고소득’ 업종에서 재택근무 활용 비중이 높았다.
고용 형태에 따른 편차도 크다. 통상 ‘비정규직’이라 일컬어지는 임시·일용직, 한시·시간제·호출·파견·용역 노동자들 910만명
가운데 재택근무를 활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2.4%(21만6000명)에 그쳤다. ‘정규직’ 노동자 1189만명 가운데 7.8%(92만4000명)가 재택근무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특히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7∼9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체 620곳에 대해 조사한 결과, 50%인 310곳이 정규직만 재택근무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택근무가 일·생활 양립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이상,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업종·직종이 아니라면 확산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 보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무실과 같은 능률을 올릴 수 있는 장비와 업무 시스템이 필요하고,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무를 골라내며, 노동자들의 성과·인사 관리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직무 특성을 기준으로 원격근무가 가능한 노동자의 비중이 35%에 달한다는 연구가 있는데 아직 5.4%밖에 안 된다”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고용노동부는 재택근무제를 포함한 유연근무제 도입 기업에 간접노무비·인프라 지원과 일터혁신 컨설팅 사업을, 중소벤처기업부는 메신저·화상회의·그룹웨어 등을 지원하는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사업을 지속할 방침이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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