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과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산업은행이 결단하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긴급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이날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소속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40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들의 선박 점거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점거를 중단하면 교섭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2일부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거제 옥포조선소 제1도크(선박건조공간)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원유운반선 점거 농성에 돌입하면서 생산이 지연되자 노-노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14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제3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장기파업에 대해 “수년간 어려움을 겪던 조선업이 회복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시기에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안타깝고,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라며 파업 참여자들에게 “조속히 대화의 장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대국민 담화문을 내어 “위법한 선박 점거를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복귀해달라”며 “정부도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점거 농성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나 공권력 투입에는 선을 그었다. 이 장관은 “공권력 투입 논란이나 국민적 우려없이 자율적이고 평화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호소하는 것이 담화문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 총리는 “위법한 행위가 계속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개별 기업 노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손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다 자칫 이번 사태가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할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정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강경대응만 고수하다 뒤늦게 협상에 나서면서 막대한 경제 손실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조 파업 장기화에 따른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이번 파업 교섭 당사자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사’로 한정하면서도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한 방편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대화 당사자는 법적으로 하청업체 노사다. 일단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고 (정부도)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통고지회는 기성금(도급 단가) 결정권을 가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이 회사 최대 주주 산업은행이 교섭에 비공식적으로라도 참여해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김형수 거통고지회 지회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임금 인상은 하청업체가 자의적으로 할 수 없음을 지난 1년간 교섭에서 확인했다”며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산업은행 관련 내용 없이 점거를 풀라는 건 백기 들고 투항하란 이야기”라고 말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을 협력업체가 고용했으므로 노사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대화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원청 노조와 하청 노·사 3자 대화를 계속했는데 진척이 없었다”며 “대화가 지속되려면 하청노조의 전향적 태도가 선행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4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일대에서 대우조선 임직원 등이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제안한 4+1(정부, 원청 노·사, 하청 노·사)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며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기업) 임금 인상은 정부가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므로, 원청과 협력업체, 하청노조 3자 교섭 자리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거통고지회 소속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500여명은 지난달 2일부터 임금 30% 인상, 고용계약 최소 1년 단위 체결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유최안 거통고지회 부지회장은 지난달 22일부터 제1도크 안 선박에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구조물을 설치해 스스로를 가뒀고, 조합원 6명은 높이 20m 난간에 올라 고공농성 중이다.
신다은
downy@hani.co.kr 선담은
sun@hani.co.kr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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