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으로 인양 중이던 2톤짜리 대형 거푸집이 바람에 날려 타워크레인 조종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 인천 계양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20일 오후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고 관련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인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지난 16일 인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타워크레인 사고와 관련해 원청의 작업지시가 보편적인 안전기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설명하자, 현장 노동자 등이 개별 현장의 다양한 위험성과 중대재해 예방의 원칙을 놓친 주장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타워크레인이 옮기던 갱폼(대형 거푸집)이 조종석을 덮친 이 사고는, 국토교통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는 등의 행위를 ‘태업’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벌어져 논란이 일었다.
지난 19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인천의 한 건설 현장에서 16일 벌어진 타워크레인 사고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번 사고는 기계의 결함이나 무리한 작업지시로 인한 사고는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부 집단이 진실을 왜곡하고, 건설 현장을 정상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사고와 이후 논란을 일축했다.
원 장관이 언급한 사고는 지난 16일 오전 10시께 인천 계양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으로 끌어올리던 2톤짜리 갱폼이 바람에 날려 타워크레인 조종석 앞유리를 덮치며 벌어졌다. 사상자는 나지 않았지만 자칫 갱폼이 조종석을 밀고 들어와 조종사가 깔리거나 타워 자체가 넘어져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종사 조아무개(41)씨는 사고 당일 <한겨레>에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원청이) 태업이라고 할까 봐 말도 못 하고 올라갔다”고 했다.
정부는 사고 당시 △사고 발생 장소에서 가까운 관측소에서 측정한 1분 평균 풍속이 초속 3.2m(작업중지 기준 초속 15m)에 그친 점 △작업 전 조종사의 안전조치 요구를 무시하고 작업을 지시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무리한 작업지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설명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씨와 현장을 살펴본 건설노조 쪽의 설명이다. 현장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위험 요소와 이에 대한 노동자의 의견이 가로막혀 벌어진 사고라는 것이다. 가령 노조는 당시 현장에 기상청 발표 평균 풍속과 무관하게 순간적인 ‘돌풍’이 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원청 소속인 안전관리자도 조종사 조씨와 통화에서 돌풍을 인정했다고 한다. 더구나 사고가 난 건설 현장은 정부도 인정하듯 작업 반경이 좁아 인양물이 크레인 조종석과 부딪히기 쉬운 조건이었다.
이영훈 건설노조 인천·경기 타워크레인지부 조직차장은 20일 “정부가 태업을 판단한다며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노동자가 규정을 어겼다고 판단될 경우 생계가 달린 면허정지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걱정해 현장 노동자가 위험을 얘기하는 데 주저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2일 내놓은 ‘타워크레인 조종사 성실의무 위반 판단 기준’은 원도급사(원청)의 허락 없이 조종석을 이탈하거나 요청한 작업을 거부하는 경우 태업으로 보고 조종사 면허정지의 근거로 삼는다.
이번 사고에서 정부가 단순 사실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사고가 벌어지기까지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직업의학환경 전문의)은 “현장마다 위험 요소가 다양한 상황에서 위험을 체감할 수 있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중대재해 예방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안전·보건 관리의 방향이었다”며 “태업을 구실로 안전 관리에 노동자 의견을 배제하는 듯한 국토부의 태도는 현장의 안전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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