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5박7일, 157번의 ‘자유’가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국빈 방문한 미국에서 백악관, 의회, 경제 단체, 대학교를 찾아 “자유 시장의 번영”을 말했고, “자유 수호 동맹”을 강조했다. “허위 선동” 등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로써 자유는 지난해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 이후 494번 불린 단어가 됐다. 시장, 혈맹, 희생, 세계, 공산화의 위기 같은 단어와 놓였다. 거대하고 서늘했다.
그 시간 콜센터 노동자 김민정(44)씨 또한 자유가 얼마나 벅차고, 간절한 단어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김씨는 4월25일 10년째 출근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신용보증재단 빌딩 앞에 지은 천막에 ‘단식 1일차’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앉았다. 비 내린 서울의 기온은 10도까지 내렸다. 단식을 결심한 김씨와 동료 7명이 덜덜 떨었다. 조합원 13명인 작은 노동조합이니 절반이 동참했다. 견고하게 솟은 회사 현관 주변으로 김씨와 동료의 진입을 막기 위한 녹색 울타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한테 자유라면…” 김씨는 그 틈에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앞두고, <한겨레>는 대통령과 어느 시민들의 자유가 걸어온 행로를 나란히 짚었다. 취임사부터 지난달 29일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설문까지 대통령이 자유를 말한 연설문 84개(대통령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누리집 기준)를 살폈다. 자유를 연설문의 맥락에 따라 인권 등 민주주의적 기본권을 강조한 ‘시민’, 기업 활동과 자유 시장을 강조한 ‘시장’, 북한 위협이나 한-미 동맹 등을 언급하며 체제 안보와 우월성을 부각한 ‘안보’, ‘외교’로 나누었다. 모든 요소가 고루 담긴 연설문은 ‘자유 전반’으로 분류했고, 2개 이상 의미가 겹칠 때는 연설문의 맥락을 보고 좀 더 두드러진 하나를 택했다. 그럼에도 의미가 모호한 것은 ‘기타’로 분류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동안 자유가 언급된 대통령 연설문 14개 가운데 자유시장과 번영을 강조한 것이 5개, 자유진영 등 국제 관계(외교)가 두드러진 것이 6개다. 북한의 위협과 함께 안보를 이야기한 2번의 연설과, 자유의 의미를 두루 담은 1번의 연설이 있었다. 김민정씨의 자유는 어디에 속할 수 있었을까.
“자유… 나한테 자유라면 동료들이랑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그렇게 세상이 좀 나아지는 거잖아요.” 김씨는 고작해야 직원 스물다섯명(관리자 제외)인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사업장에서 3년 전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나이 마흔한살, 회사 생활 8년차 만에 처음 구해 본 ‘결사의 자유’였다. 자유의 태동에 섰던 시민처럼 떨렸다. “오랫동안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일했으니까요. 회사(하청업체)랑 교섭하기 전날 밤에는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리던지.” 그래도 벅찼다. 노조가 없을 때 회사는 연차휴가 사용을 제한하고, 무급인 채로 15분 일찍 출근할 것을 강제했다. “잘못됐다”고 말했고, 바로잡혔다. 10년째 최저임금 수준이었던 기본급도 서울시 생활임금 수준(시급 1만1157원)으로 올랐다.
하나씩 스스로 일의 조건, 나아가 비슷한 처지일 콜센터 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 같이 힘을 합쳐서요.” 자유의 힘이었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권력이 개인을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기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양심·사상·표현의 자유 등이 있고, 특히 집회·결사의 자유는 힘없는 개인들이 모여서 기본권을 지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헌법에 적힌 18번의 자유(전문 제외)는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경제적 창의와 자유를 적으며, 동시에 경제력 남용의 방지 또한 짚는다. 국가·시장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적혔다. 혐오와 적대, 편가르기의 언어로 자유를 언급하지 않는다.
지난 3월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콜센터 노동자가 속한 하청업체와 계약을 갱신하며, 사무실 위치를 외부로 옮기고 8명을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하청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했고, 원청은 만나주지 않았다. 김씨는 해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함께 자유를 구해온 동료를 지켜야 했다. 시어머니와 아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노동조합 활동 사실을 ‘고백’했다. 단식한다는 얘기는 차마 못 했다. 두 아들은 “나도 알아 노동 3권, 그래도 엄마가 걱정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울면서 곁에 있겠노라 했으나 “좋은 분들이 옆에 많아 괜찮다”고 말렸다.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서기까지,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매 순간이 저릿했다.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투쟁!” 뜻이 좋아 동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구호를 울음을 참으려 악쓰듯 외쳤는데, 외치다가 울었다. 그가 갓 구한, 그러다 잃을 위기에 처한 자유가 어떤 행로를 걸을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이날로부터 약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 적어 넣은 자유는 모두 35번이다. 의미는 복합적이다.
대통령은 우선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말했다. ‘자유 시장’의 이로움을 강조한 것으로 들렸다. 다만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당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도 했다. 막대한 국가 권력과 제한 없이 남용될 우려가 큰 기업 권력 앞에 혼자서는 미약한 시민이 모여 목소리 내고 서로를 지킬 자유를 옹호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다만 취임 뒤 지난달 29일까지 1년 가까운 시간 ‘자유’가 언급된 대통령 연설문 84개 가운데 가장 많은 30번이 규제완화, 신산업 등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는 데 쓰였다. 주로 관료, 여당, 국내외 기업인, 과학기술 인재를 앞에 두고서였다. 더러 시장 상인들(대구 서문시장)이나 제주 4·3 희생자 추념사에서도 다소 어색하게 ‘성장동력’, ‘디지털 기업’ 등의 단어와 함께 시장의 자유가 강조됐다.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주로 시장과 자본의 자유로 국가 권력, 시장 권력에 대항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시민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자유가 확장돼온 맥락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과 관련해 언급된 자유는 5번뿐이다. 그조차 모두 권력 남용, 불평등, 빈곤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한 의미로 쓰지는 않았다. 모종의 적대감이 깃든 경우도 있다. 취임 여드레 뒤 광주의 인권 정신과 자유를 함께 말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대통령의 자유는 ‘일체의 불법’에 위협당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오월 정신은 지금도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과 그 동료들은 이윽고 자신이 자유의 바깥 ‘불법’에 포함되었음을 깨달았다.
윤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았고 김형수 지회장은 이튿날부터 단식을 시작할 참이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조선업 불황 때 줄어든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날(6월2일)처럼,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m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두기로 한 날(6월22일)처럼, 김 지회장의 단식 전야 또한 침울했다. “작은 것이라도 얻으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인생 걸어야 한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니까. 늘 그렇듯 무거웠죠.”(김 지회장) 일하지 못한 날의 임금, 건강,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 목숨 따위를 각오해야 “회사(원청)와 대화해 스스로 노동 조건을 쟁취할” 자유를 구해 볼 수 있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머리발언에서 또한 윤 대통령은 자유를 말했다.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지회장과 동료들이 불렸다. 법과 원칙 항목에서였다. “법과 원칙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사건과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관행으로 반복된 산업 현장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기업의 자유와 노동조합에 대한 법치 사이에 울타리가 쳐졌다.
김 지회장의 단식이 8일차 되던 날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를 상대로 47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지회장은 “그렇게 부딪히면 자유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보편적 가치’는 대통령이 가장 즐겨 쓰는 자유의 수식어다. “법에 분명 있는 단어지만 힘 있는 기업이나 기득권층한테 너무 쉬운 자유가 우리한테는 없잖아요.”
윤 대통령도 자유가 법과 연설로만 도달할 수 없는 지경임을 분명 알고 있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취임사에 적었다. 자유는 현실의 권력관계 탓에 불평등하게 주어지거나 때론 박탈된다. 8월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시민이 숨지고, 사회보장 사각지대에서 빈곤에 놓인 시민이 숨지는(수원 세 모녀) 일이 연달았다.
두달여 뒤(10월29일) 159명이 서울 이태원에서 자유의 절대적인 조건, ‘생명’을 잃었다. 임익철(67)씨는 아들 종원(37)씨의 장례를 마친 뒤 영정과 위패가 없는 서울시청 합동 분향소를 찾아 서성였다. “다른 유족을 찾아보러 간 거예요. 정부에서는 ‘불가피한 사고’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내가 폐를 끼치고 있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요. 그래도 정말 납득이 하나도 안 됐어요. 진실을 너무 알고 싶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를 연구하는 직장인이었고, 디제잉과 드럼을 취미 삼았던 종원씨가 누릴 수 있었던 자유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다.
대통령이 자유를 시민의 안전과 함께 말한 것은 이태원 참사 8일 전 “국민의 안전은 우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의 기본 바탕이라 할 수 있다”(10월21일 ‘제77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고 한 정도다. 대신 자유와 안전은 주로 ‘안보’의 맥락에서 한데 묶였다. 안전의 주어가 국가가 된 셈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에 대한 확고한 응징과 보복만이 우리 자유에 대한 공격과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2022년 12월29일, 국방과학연구소 방문 발언)고 했다. 안보를 강조하며 자유가 불린 횟수는 대통령 취임 이후 15차례다.
취임 이후 계절을 한바퀴 돌아 온 대통령의 자유는 한층 공격적이다. 적은 우선 외부에 있다. 자유 진영 바깥 “권위주의 세력들의 진영화”(3월29일,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공산 전체주의 세력”(4월28일,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등이 지목됐다. 대통령 연설 가운데 주로 한-미 동맹, 한-일 관계를 비롯해 자유 진영을 강조하거나 권위주의 세력과 대비하는 데 쓰인 자유(외교)는 24번이다. 대통령이 지목한 적은 또한 국가 내부에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4월19일,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사)다.
지난달 27일 오후(현지시간) 펜타곤(국방부)을 방문해 작성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명록.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이 미국에 머문 시간, 임익철씨는 4월26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적힌 패널을 들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인데, 여당은 이 법을 “재난 정치법”이라고 했다. “진실만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임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아들을 잃은 참사 이후 이명과 이석으로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1인시위, 서울광장 분향소 지킴이를 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임씨는 거리에 있다.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노동자들도 거리에 있다. 실질적으로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 대화할 수 있고, 손배가압류 두려움 없이 쟁의할 자유를 법에 명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을 한다. 경남 거제에서 4월12일 행진을 시작해 29일 서울에 들어섰다. 걸어오며 ‘건폭 노조 OUT(아웃)’ ‘부패 노조’ 따위를 적은 여당의 펼침막을 봤다. “혐오의 말들이 너무 힘들다”고, 김형수 지회장이 말했다.
김민정씨는 단식 3일차인 27일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빈혈이 있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야 했는데.” 김씨와 동료들의 단식은 이튿날 그쳤다. 김씨와 동료들의 노동조합은 8명에서 5명으로 줄인 해고 인원수, 다만 노동자·하청·재단(원청)이 모여 노동 조건을 이야기할 기구를 만들기로 하고 회사와 합의했다. 김씨는 “해고 대상이 된 친구가 언니들이 이러고 있는 걸 너무 미안해했다”며 “나야말로 미안하고 허탈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방문 마지막 날(4월29일) 하버드대 연설에서 81번의 자유를 쏟아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보다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자유의 전당 하버드에서 여러분과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연설을 맺었다. 취임 이후 492~494번째 자유였다. 헌법은 모두에게 평평한 자유의 운동장을 보장하지만 지난 1년 균형추는 더 기울었다. 노동자들, 참사 희생자 가족, 소수자들은 다음번 ‘자유’만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를 기다렸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