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에 항의해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양회동씨가 끝내 숨진 지난 2일 오후 양씨가 치료받고 있던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들머리에서 건설노조 조합원이 걸어가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악감정이 있으면 아무리 겁을 먹어도 처벌불원서를 안 썼겠죠. 노조랑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 나쁜 감정은 없었습니다. 특히 양회동씨는 현장에서 일이 원만하게 돌아가게끔 회사와 조합원 사이에서 조율을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지난 1일 분신 끝에 숨진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관련해, 법원에 처벌불원서를 낸 건설 현장소장 ㄱ씨는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조의 압박 때문에 쓴 처벌불원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양씨 등에게 범죄 피해를 봤다는 업체 4곳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 현장 소장 ㄱ씨와 또 다른 피해업체 등 강원지역 건설업체 15곳 관계자는 지난달 말 법원에 양씨와 건설노조 간부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피해자인 건설업체들이 오히려 기소된 양씨와 건설노조 간부들의 범죄 혐의가 없었다고 나선 셈이다.
ㄱ씨는 “현장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일한 기간 간부들에게 노조 전임비를 지급하고, 문제가 생기면 양씨가 조합원과 회사를 중재하는 역할을 교과서처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또 “단체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집회가 한번 있었지만 그 또한 나와 합의했고, 집회 신고하고 한 것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른 건설업체 쪽이 낸 처벌불원서 내용도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노동조합 활동으로 보아 전임비는 큰 문제 없이 지급했다”, “강요는 없었다”, “원만하게 소통했다”는 ㄱ씨 설명과 다르지 않다.
반면 양씨의 구속영장은 “피해자 ○○건설은… 공사 진행이 원활히 되지 않을 것과 그로 인한 경제적 손해가 발생할 것에 겁을 먹고 피의자의 요구대로 노조원 채용과 노조 전임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적는 등 양씨의 협박·강요 행위를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건설업체는 “어쩔 수 없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거나, “겁을 먹은 피해자”로 표현됐다. 수사를 한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처벌불원서가 어떤 경위로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린) 수사 과정에서 나온 현장 진술만을 구속영장에 담았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과 수사기관 사이에 같은 현장의 교섭 과정을 두고 서로 다른 설명이 제기된 셈이다. 이는 노사 관계를 갈등과 협상이 아닌 범죄 작용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영장을 보면 내용 대부분이 노사가 서로의 약점을 협상 과정에서 압박하는 정도로, 이는 건설노조가 아닌 어느 사업장에서나 나타나는 노사 교섭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짚었다.
이날 세계 각국 총연맹과 산별 노동조합 등 2억명의 노동자가 속한 노동조합국제조직협의회는 양씨 죽음에 관련해 성명을 내어 “(정부가 노사 관계에 경찰력을 동원하는 건) 안정적인 노사 관계 구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내법과 국제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자들에게 공포와 협박의 분위기를 조성할 뿐”이라고 밝혔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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