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국금속노동조합 포항지부가 ‘포스코지회 정상화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정부가 산별노조의 지부나 지회가 산별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제한하는 산별노조 규약에 시정명령을 한 가운데, 대기업 사업장들의 산별노조 탈퇴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 방향이 노동자 사이 연대를 통해 노동 시장 격차를 줄이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 산별노조의 기반을 약화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악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은 지난 9일 금속노조에서 탈퇴한 포스코 자주 노동조합(자주노조)의 노동조합 설립 신고 필증을 발부했다.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지난 2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금속노조 탈퇴와 이를 통한 기업별 노조 설립을 의결했는데, 절차적 정당성 등 규약위반을 따지는 금속노조의 반발에도 정부가 이를 인정한 것이다. 앞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화섬식품노조) 롯데케미칼 대산지회도 지난달 30일 화섬식품노조 탈퇴를 의결하고 노동부의 기업별 노조 설립 신고 인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별노조에 가입한 대기업 노조의 잇단 기업별 노조 전환에는 최근 정부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산별노조 산하 지부·지회 등이 집단으로 결의해 기업별 노조로 조직 형태를 변경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약이 위법하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특히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이런 시정명령의 발단이 됐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조합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노동조합의 가입이나 탈퇴 등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포스코지회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행정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는 실제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금속노조뿐만 아니라 비슷한 규약을 가진 각 산별노조에 시정명령을 했다. 반면 산별 노조들은 규약을 유지한 채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산별노조는 느슨하게 뭉친 형태의 연맹과는 달리 법적으론 그 자체로 단일한 노조여서 하부 임의조직인 지부나 지회의 탈퇴 결의가 법적으로 유효한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별노조는 산업 단위로 원청과 하청은 물론 중소 사업장 노동자를 모두 아우른다. 현재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무늬만 산별’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동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할 가장 강력한 제도로 산별노조의 활성화를 든다. 실제 산별 교섭이 활발해질 경우 노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서 임금 격차를 줄이려 나설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정부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탓하면서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기업별 노조로 되돌아가도록 독려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짚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대형 사업장의 산별노조 탈퇴를 통한 기업별 노조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이중구조 개선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오히려 노동자 사이의 격차 완화를 지향하는 산별노조를 약화하는 행정을 펴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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