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커란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 산하 연구기관 과학연구센터(SRC) 기관장이 20일 오후 인천 연수구 경원재 앰배서더 인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위험성 평가의 핵심은 관리자와 노동자의 협업입니다. 일선 노동자들이야말로 어떤 위험에 처해 있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경감할 수 있을지 아는 최상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앤드루 커란 영국 맨체스터대 명예교수는 지난 20일 <한겨레>와 만나 위험성 평가에서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커란 교수는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에서 29년간 근무한 뒤 현재는 이 기관의 산하 연구 과학연구센터(SRC)장을 맡은 위험성 평가 전문가다.
위험성 평가는 중대 재해 관련 경영자 처벌 등 사용자 책임 강화와 함께 산업안전 체계를 이루는 또 다른 축이다. 사업주 스스로 노동자와 대화 등을 통해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찾고, 이를 자율적으로 개선토록 한다. 국내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1년 반에 이른 현재, 실제 현장에서 산업 재해를 줄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꼽힌다. 한국은 2012년 산업안전보건법에 위험성 평가 제도를 도입했으나, 기업의 활용률은 30%대에 그친다. <한겨레>가 세계 산업안전보건 연구원들이 모이는 국제 회의체인 셰필드그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 송도를 찾은 커란 교수를 만난 이유다. 커란 교수는 셰필드 그룹의 의장을 맡고 있다.
커란 교수는 “위험성 평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직원과 사업주의 위험에 대한 논의의 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험성 평가를 경영 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자를 처벌한다. 다만 처벌을 피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만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커란 교수는 “위험성 평가 체계를 단순히 요식행위 하는 의무 요건으로만 바라보면 절대 효과가 없다. 구조화된 대화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대재해 사망의 약 70%가 하청 노동자에 집중된 한국 현실에서 커란 교수는 기업(원청)이 대화해야 할 상대로 하청 노동자를 꼽았다. 커란 교수는 “‘유해 요인으로 인해 누가 영향을 받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유의미한 위험성 평가 구조를 만든다”며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 보건 이슈의 성과를 좌우하는 주요 일원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 비로소 산업안전보건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를 중심으로 ‘현장의 혼란’을 주장하며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커란 교수는 “안전 성과가 좋아야 사업 성과도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성 평가가 원활히 이뤄져야 사업 중단과 인적 낭비도 막을 수 있다”며 “정부도 기업 경영자가 위험성 평가 제도를 옹호하고, 위험성 평가를 잘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커란 교수의 모국인 영국은 1974년 위험성 평가를 핵심 내용으로 담은 산업안전보건법(HSWA) 제정 이후, 5년 만에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 당 산재 사망자 수)을 30%(0.34명→0.24명) 줄였다. 한국도 같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커란 교수는 “제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질문”이라며 “영국은 산업안전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할 때마다 견실한 근거를 기반으로 제도를 평가하고 연구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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