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케인 호주운수노동조합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회의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해정 기자
“한국 화물운송산업 노동 조건은 특히 살인적입니다. 그 배경에는 불공정한 산업구조 문제가 있고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화주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안전운임제입니다.”
지난해 말 국내 화물연대 파업 뒤 안전운임제가 일몰(폐기)되고 9개월째 접어든 가운데, 마이클 케인 오스트레일리아 운수노동조합 사무총장은 지난 23일 한겨레와 만나 호주의 경험을 통해 안전운임제가 한국에서도 재도입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전운임제는 화주→운송사→화물기사로 운임이 지급되는 화물 산업 구조에서 이들이 모여 화물 노동자의 과로·과적을 막기 위한 안전운임을 결정하는 제도다. 안전운임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화주에 과태료 등을 물려 강제한다.
한국처럼 안전운임제(도로안전운임법)가 시행되다 2016년 폐지된 호주에선 지난 4일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법안이 연방 상원 의회에 발의돼 올해 통과할 전망이다. 케인 사무총장은 지난 22∼23일 국제운수노동자연맹이 서울에서 연 ‘세계 안전운임 캠페인’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안전운임제’를 전 세계로 확산하는 캠페인을 위해서다.
케인 사무총장은 제도로서 안전운임제의 핵심으로 ‘화주’(원청)의 책임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경제권력이 대기업 화주로 쏠리고 있다”며 “힘이 세진 화주가 자신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운송사(하청)에 요구할 수 있게 됐고, 운송사는 매우 낮은 이윤에도 계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는 곧 운송사 일감을 받는 화물 노동자의 저임금 과적 장시간 운송체계로 이어진다.
한국 정부가 지난 2월 안전운임제를 대체할 제도로 화주 책임을 삭제해 추진 중인 표준운임제는 “답이 될 수 없다”고 케인 사무총장이 단언하는 이유다. 표준운임제는 운송회사가 화물기사에게 지급하는 운임만 강제할 뿐 화주 책임은 묻지 않는다. 케인 사무총장은 “화주 책임을 강제하지 않는 표준운임제는 운송사의 힘을 약화해 화주에게 적정 운임을 받지 못한 운송사가 화물노동자의 운임을 깎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새로 발의된 호주 안전운임 법안은 전처럼 화주가 안전운임을 논의하는 기구(도로안전운임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안전운임 기준을 지키지 않는 때 최대 18만7800호주달러(약 1억6200만원)를 과태료로 매기는 내용을 담았다.
케인 사무총장은 “안전운임제가 사라진 2016년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화물차 사고 전체 사망자가 1327명이고, 이중 사망한 화물 노동자만 317명”이라며 “각성제를 먹으면서까지 과로하는 노동자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화물 운수 산업의 저가 경쟁이 만연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파산한 운송사도 347곳에 달해 재도입 과정에선 운송사들도 법안을 지지했다”고 케인 사무총장은 덧붙였다.
안전운임제 폐지 뒤 한국도 비슷한 모습이다. 지난 6월 화물연대가 컨테이너 화물 노동자 297명에게 물어보니,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지난해에 견줘 월 노동시간은 44.7시간 늘었는데, 월수입은 되레 136만5497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과적이 늘었다’는 응답도 58.5%에 달했다. 케인 사무총장은 “안전운임제는 화주의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를 지키고 운송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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