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 개통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계 공시를 하지 않은 노동조합의 조합원한테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는 내용의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이 본격 가동됐다. 공시 시스템은 노조가 상급단체에 낸 교부금부터 업무추진비, 쟁의사업비까지 적도록 한다. 전체 노동계의 돈 흐름을 낱낱이 들여다봄으로써 노조 탄압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월1일부터 노동 포털 내에 마련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이 개통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회계 공시를 한 노조에만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노동부는 노조 회계 공시를 위한 자체 시스템 구축에 나서 지난 1일 이를 공개했다.
이날 오후 4시까지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회계를 공시한 노조는 모두 7곳이다. 5곳은 상급단체가 없는 기업별 노조다. 나머지 두 곳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와 한국노총 전국공공노조연맹 김포도시공사노조다. 두 노조 조합원일 경우 총연맹까지 회계를 공시해야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조합원은 물론 누구든지 이 시스템에서 개별 노조의 회계 공시 여부와 주요 회계 항목을 열람할 수 있다.
공시 항목은 크게 자산·부채(토지·건물 등), 수입(조합비·상급단체 교부금·하부조직 부과금·보조금 등), 지출(인건비·정책사업비 등) 현황으로 나뉜다. 노동계는 이 가운데 업무추진비, 교섭·쟁의사업비 등 공개가 자칫 노조 탄압으로 악용될 소지가 적잖다고 본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한겨레에 “(공시보다) 우리가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자료가 더 구체적이긴 하다”며 “문제는 정부 입맛대로 공시 항목을 점점 늘릴 수 있고, 노조 회계 흐름을 추적해 탄압 도구로 악용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쟁의 사업비 등 몇몇 항목을 꼬투리 잡아 ‘파업 조장’ 프레임으로 공격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공시 제도가 조합원이 직접 소속된 노조뿐만 아니라 그 상급단체까지 회계를 공시해야 개별 조합원한테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노조 연좌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시 대상인 1000명 이상 노조 673곳 중에 한국노총 가맹·산하노조는 303곳, 민주노총 가맹·산하노조는 249곳이다. 552개 노조가 총연맹의 공시 여부에 따라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민주·한국노총 등 양대 총연맹 옥죄기란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명예교수는 한겨레에 “노조 압박 수단으로서 다분히 의도가 있다”며 “조합비를 세액공제 받지 못한 조합원이 노조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 이는 곧 노조 힘을 약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양대 노총은 노조 회계 공시엔 반대하면서도 조합원 집단 이탈을 막기 위한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어 “정부의 비열한 노조 때리기 공세에 맞서 조합원 개개인의 다양하고 소중한 의견을 듣고 일치성을 높이기 위한 토론을 시작했다”며 “전 조합원의 총의를 모아 가장 민주노총다운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도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진행할 것”이라며 “다만 조합원 피해는 올해 연말부터 당장 진행되는데, 법률 대응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번 회계 공시에 응할지 내부적으로 더 신중히 검토하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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