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황유미씨 등 2명에 산재인정 판결
“화학물질·방사선에 계속 노출돼 발병”
“화학물질·방사선에 계속 노출돼 발병”
법원이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일부 업무와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전직 직원 2명은 산업재해를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도체공장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진창수)는 23일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3명의 유족과 백혈병에 걸려 현재 투병중인 노동자 2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등 소송에서, 숨진 황유미(사망 당시 23살)씨와 이숙영(사망 당시 30살)씨 등 2명의 산업재해를 인정해 “유족급여 등 부지급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나머지 3명이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등의 청구는 백혈병 발병과 근무여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숨진 황씨 등에게서 나타난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에 대한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시설이 가장 노후화돼 있던 (반도체공장)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유전자 변형으로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전리방사선에도 미약하나마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거나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며 “백혈병과 그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3명에 대해서는 “유해화학물질에 (일시적으로) 노출됐거나, 노출됐을 가능성은 인정되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볼 자료는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앞서 이들 5명은 “지난 10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노동자 20명이 벤젠과 전리방사선 등 발암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고, 이 가운데 7명이 숨진 만큼 삼성전자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며 2007~2008년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지만, 공단이 지급을 거부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한편 기각 판결을 받은 일부 유가족 등은 판결 결과를 수긍할 수 없다며 곧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 패소한 근로복지공단 쪽도 “판결문을 받아본 뒤 항소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소송을 지원해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이번에 소송을 낸 사람들은 그나마 증거가 많은 경우인데도 일부가 패소했다”며 “병에 걸린 많은 노동자가 (산재의) 증거인데, 더이상 어떤 증거를 내밀어야 (재판부가) 산재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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