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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정시퇴근 않고 일하면 짜릿한 ‘감전 마우스’

등록 2015-03-10 21:54수정 2015-03-11 08:27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시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가한 20대들이 돈과 시간 등 적극적 미래 상상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들을 포스트잇에 적은 뒤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시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에 참가한 20대들이 돈과 시간 등 적극적 미래 상상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들을 포스트잇에 적은 뒤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광복 1945, 희망 2045] ① 취업난 ‘삼포세대’가 그려낸 ‘2045 노동의 풍경’
무리한 요구땐 ‘갑질 사이렌’ 망신살
“선서! 하나, 나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상상한다. 둘, 나는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상상한다. 셋, 나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상상한다. 넷, 나는 미래세대를 상상한다. 다섯, 나는 계속 상상한다.”

2045년 3월11일, 신임 노동부 장관의 취임식 날, 장관은 이런 내용이 담긴 ‘상상노조’ 선서문을 낭독한다. 전체 시민 90% 이상이 가입한 ‘상상노조’의 직선 위원장이기도 한 노동부 장관이 앞으로 맡게 될 최대 임무는 ‘시민들의 상상을 독려’하는 것이다.

상상노조 위원장에 노동부 장관
미화원엔 고임금에 사회적 존경
해고 땐 시민수당 받으며 재충전

광복 70년을 맞아 지난달 28일부터 1박2일 동안 경기도 안산시 경기창작센터에서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소셜픽션 콘퍼런스’ 일자리 분야 토론에 참가한 20대들이 그려낸 30년 뒤 ‘노동’의 풍경이다. 일자리 분야에는 대학생 5명, 직장인 3명, 취업준비생 2명, 대학 휴학생과 재수생 각각 1명 등 모두 12명이 참여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삼포세대’, ‘달관세대’로 불리는 20대들은 이 자리에서 “30년 뒤 대한민국은 일이 즐거운 문화가 되는 나라였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서혜빈(22)씨는 “카페인 각성 없이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취업준비생 김희주(26)씨는 “내 방 안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로 인정받는 사회”를 희망했다.

2045년, ‘저녁 있는 삶’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된다. 회사 일은 근무시간에만 하고, 퇴근 이후 시간은 철저히 개인시간이다. 직장인들은 대부분 업무 시간에만 울리는 ‘회사 전용 전화’를 사용한다. 근무 시간이 끝났는데도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겐 짜릿한 전기적 자극이 전해지는 ‘감전마우스’가 작동하곤 한다. 근무 시간 외에 시도 때도 없이 이메일이나 전화로 일을 시켰다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일과 개인 삶의 적절한 조화로, 과도한 업무와 지나친 경쟁 분위기 속에서 스트레스 받던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정신과 병원의 폐업률도 높아진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사회를 이롭게 하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환경미화원처럼 남들이 기피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이들이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는다. 모든 시민들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자리에 대한 체험학습을 하고, 이를 통해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이런 풍토가 자리잡게 됐다. 대통령이든 피자 배달원이든 똑같이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어머니이고, 남편·아내이며, 아들·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존중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주20시간’ 근무로
부족한 일자리 나누고 ‘피로사회’ 탈출

대다수 사람들은 주 4일 20시간씩만 근무한다. 부족한 일자리를 나누고 ‘피로사회’에서 탈출하기 위한 사회적 선택이었다. 주 10시간만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다. 돈은 적게 받지만, 나머지 시간엔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쌓거나 자신의 적성을 확인하기 위해 ‘투잡’, ‘스리잡’을 뛰는 이들도 태반이다. 직원들의 형편에 따라 출퇴근 시간 조절이 가능해지면서 ‘출근길 교통지옥’도 자연 해소됐다.

‘회사에서 잘리면 바로 나락’이란 불안감 없이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꿈의 직장’을 찾아나설 수 있는 건, ‘시민수당’(기본소득) 덕분이다. 모든 시민에겐 일정 수준의 품위 유지가 가능한 시민수당이 지급된다. 자원봉사나 가사노동, 심지어는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해주는 모든 일들이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이젠 누구도 시민수당이 ‘재정낭비’란 생각을 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재충전이 필요할 땐 쉬어가고, 실패했을 땐 ‘패자부활전’을 도모한다.

직원들은 서로를 ‘김 부장님’, ‘이 대리’라고 직급을 붙여 부르는 대신, 이름 끝에 ‘님’자를 붙여 소통한다. 명함에 큼지막하게 인쇄되던 직위를 지우고, 서로의 취미나 특기 사항을 적는 게 일반적이다. ‘직급이 깡패’라는 말도 옛말이다. 직책은 이제 말 그대로 회사 안에서, 팀 안에서 ‘역할’을 뜻할 뿐이다. 특히 직원이나 상대 거래처에 우월적 지위를 통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요란하게 울리는 ‘갑질 사이렌’에 망신살 뻗치기 십상이고 심각하면 처벌도 받을 수 있다.

직장에선 ‘괴짜’들이 각광을 받는다. 조직의 질서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했다간 오히려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입사 1년차 신입의 아이디어라도 좋으면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고, 오너의 잘못된 경영 판단엔 질책이 따른다. 오너 일가의 2세, 3세라도 능력이 없으면 전문 경영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경영진이 직원들에 대해, 직원들이 경영진에 대해, 또 지역사회가 해당 기업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나 개선점 등은 노래 동영상으로 만들어 매달 인터넷에 공개한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서로가 서로의 불만을 이해하고 개선책을 찾아나가겠다는 것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다시 2015년 3월1일. 30년 뒤 좋은 일자리를 상상하던 20대들이 한 가지를 깨닫는다. 이제껏 일자리 얘기를 하면서 ‘돈’(임금)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 얘기만 하면 매일 돈, 돈, 돈 했는데, 돈에 얽매이지 않는 일자리를 상상하다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며 취업준비생 음영주(26)씨가 환히 웃었다.

안산/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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