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열리는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 사무실에서 만난 김명환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 장을 거부하는 비주체적, 패배적 관점에서 벗어날 때”라고 강조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다소 무례한 질문부터 던졌다. “민주노총이 ‘뭘 해도 국민 밉상’이 된 것 아니냐”고.
2017년 조합원 총투표로 실시된 위원장 선거에서 ‘사회적 대화’를 공약에 건 김명환 후보의 당선은 민주노총 변화의 한 징표로 읽혔다. 2013년 23일간의 철도 총파업을 이끈 철도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산별조직 대표를 한 적도, 특정 의견그룹에 속한 적도 없는 그는 중앙에선 조직적 기반이 없는 ‘무명’에 가까웠다. 노동계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1년 새 80만 조합원은 100만에 육박하게 됐다. 하지만 국민들 시선은 어느 때보다 호의적이지 않다. 지난 20년간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고 보수정권의 탄압에 맞서온 민주노총으로선 ‘억울할’ 일이다. 보수진영의 집요한 ‘때리기’ 탓이 크지만 ‘기득권화’됐다는 비판이나 전술 부재, 지도력 부족 지적은 따갑다. 김 위원장은 “말해도 안 통하고, 자기가 정한 말만 반복하면 밉상이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인식이 있을 순 있겠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민주노총이 개별 사업장의 임금 중심 단협에 갇힐 게 아니라 사회적 투쟁과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합류 여부를 마지막으로 가를 28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그를 10일 만났다.
―돌이켜보면 지난해가 ‘사회적 대화’의 골든타임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내부 절차를 밟는다며 1년을 끌고 경기둔화 속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에 사회적 대화 거부파들의 반감은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좀더 균형감각을 잡겠다는 생각에, 집중력을 발휘할 시기에 힘을 제대로 쏟지 못해 선순환 대신 악순환 구조가 된 건 대단히 아쉽다. 민주노총의 역사는 결의를 모아 조직적 힘을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밀고 가는 과정이다. 이를 생략하고 현실적 힘을 발휘하려면 정치권과의 ‘정책 결합’ 같은 형태가 될 텐데, 그럴 경우 우리의 원칙과 방향이 훼손될 것이다. 정리해고·파견법을 막지 못한 20년 전 기억도 크다.”
―신년사에서 문재인 정권에 ‘기대도, 의존도 않겠다’고 했다. 노동계와 정부가 충돌하던 참여정부 때의 우려도 나오는데.
“방점은 우리 힘,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확장된 연대의 힘 없이는 개혁을 완수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는 데 있다. ‘속도 조절’이라지만 결과적으론 ‘개혁 후퇴’로 가고 있지 않나. ‘노동 존중, 재벌 대개혁’이 시대적 과제인데 ‘재벌·대기업 존중, 노동은 개혁 대상’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이 야박하지 않을 정도다. 갈수록 개혁의 운전대를 기획재정부와 관료에 넘기는 느낌이다. ‘노무현 정부 시즌2’ 말도 나오는데, 우리 사회 변화의 속도와 질이 15년 전과는 다르다. 지금 물리력으로 충돌하지 않는데도 개혁적 과제가 실종되어가는 것은 재벌·대기업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영향력이 더 깊어지고 확장된 탓이라 본다. 그 지점을 명확히 타깃 잡고 대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만 때린다고 개혁이 완수되리라 보진 않는다.”(인터뷰 이튿날인 11일 그는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만났다. 그는 “공식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숨길 자리도 아니었다. 고 김용균 동지의 진상규명 촉구와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개악 움직임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2월에 대통령과 만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산별 대표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얘기 정도였고 정해진 건 전혀 없다. 지금은 28일 대의원대회에 전력을 다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위원장의 사회적 대화 의지가 산별조직에는 잘 안 먹힌다는 평가다. 단적으로 위원장보다 금속노조, 금속노조보다 현대자동차노조가 힘이 세다고들 한다.
“특정 산별조직이 사회적 대화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의견이 산별에 혼재돼 있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일사천리로 이끄는 관계가 아니다. 거칠게 말하면 산별이 인력과 예산, 산업정책 영향력, 하다못해 정치인 배출도 더 많다. 그렇다면 카리스마보다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도력 한계에 멈춰 설 순 없다. 내 입장은 분명하다. 사회 대개혁 실현을 위해 사회적 대화 장에 들어가자는 거다, 주고받는 게 아니라.”
―‘주고받기’ 없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가?
“주고받으러 들어가는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정책, 노사관계 정책, 재정운용 정책이 한꺼번에 작동되는 지금 단순히 노사관계에서 노조가 힘을 가졌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단적인 예가 구조조정이다. 노조가 힘이 세면 당장의 구조조정을 미룰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규모나 강도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다. 자본의 반노동적 태도를 탓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참여해 바꿔내야 한다. 사업장에서 기업 대표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교섭 자체를 거부하면 누가 손해인가. 정부와 자본이 노동에 우호적이면 하고 비판적이면 불참하는 건 비주체적이고 패배적 관점이다. 사회적 대화의 장은 아예 노조를 상대 않으려는 기업을 끌어내는 기제도 되고, 결정 사안은 해당 산업 전체에 확장력을 갖는다. 민주노총 안대로 법제화된 경사노위 결정구조는 노동계가 들러리가 될 여지를 없앴다.”
―지난해 10월 임시대의원대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이번에 안 되면 어찌 되나?
“플랜 비(B)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자신감인가? 비상한 설득 방안이 있나?
“작년 대의원 정원이 1천명이 좀 넘었는데 그새 조합원이 늘어 1400명이다. 과반 정족수가 되려면 700명을 훌쩍 넘어야 하는데, 민주노총 역사상 700명 넘게 모인 적이 없다. 이념적으로도 경험으로도 베테랑인 간부 동지 수백명이 모인 회의에서 어느 입장으로 압도적인 몰아주기는 쉽지 않다. 질서 있게 준비해 아주 담백하게 정리해 들어가려 한다.”
―플랜 비는 없다면서 700명이 모인 적이 없다니 걱정된다.(웃음) 무산되거나 부결될 경우 현 집행부 체제가 심각하게 흔들릴 거라는 예측이 있다.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토론하기보다 ‘부결’ 이후 상황을 우려하고 확대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서 이 안건을 미루자고 한다. 작년 10월 논리와 같다. 지금 민주노총의 양적 성장이 일어나는데 질적 변화를 하지 않으면 정말 몸집만 거대한 ‘밉상’이 될 수 있다. 비록 골든타임은 놓쳤어도, 만회할 마지막 기회다. 여러 의견은 나올 수 있지만 동지적 애정이 발휘됐으면 좋겠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위원장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저임금 제도 개편이 현안이다. 30년 된 방식이 사회 변화에 맞지 않는 건 사실이지 않나?
“30년 만에 바꾸는 거라면 3년 아니 석달 전에라도 얘기를 해야 한다. 단 한차례 전달해온 적도 없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넉달 전, 지금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구조가 국제노동기구 취지에 맞는다 했다가 180도 바뀌었다. ‘균형감각’이란 미명 아래 기업 손을 들어왔던 기재부가 좌지우지하는 꼴이다. 충돌만 하는 것 같아도 구간설정위원회 취지에 맞는 흐름들은 최저임금 협상 과정에서 늘 형성돼왔다. 저임금 노동자 생계 개선이란 취지를 생각한다면 우선적으로 가구생계비 기준을 도입하고 변화도 논의해보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의 1월말 (최저임금 제도) 개편안 강행은 미뤄야 한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친 영향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건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나온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논문들에서도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줄였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나왔다. 주목할 건 저임금에서 중간임금으로 넘어간 노동자가 2.6% 생기고 상·하위 10% 임금노동자 격차가 2017년 5.6배에서 이번에 5배로 줄었다는 점이다. 물론 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 안다. 문제는 이런 통계는 잘 안 보이고 최저임금이 경기부진 원인이란 프레임이 다 삼키고 있다는 거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적 전환에 대한 평가는? 입직 과정 논란이 거셌는데 민주노총은 현장의 정규직 설득에 어떤 노력을 했나?
“올해가 3단계 민간위탁 부문인데 여태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2단계는 목표 절반도 못 채웠고 1단계도 묻지마 자회사 식으로 파행됐다. 이렇게 ‘똘똘말이’처럼 진행되다 빅뱅으로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정규직 전환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티에프가 시급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비정규직 철폐 과제를 실현할 절박성은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엔 다소 원론적이었다면 지금은 구체적으로 내 사업장에서 진행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혜적 시각이 아니라 해당 산업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 필요한 곳곳의 노동이라는 인식을 가지도록, 노조가 현장을 설득해야 한다. 국민연금 같은 모범사례도 있었다. 물론 쉽지 않다. 그들이 얼마나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왔는지 잘 알기에.”
―민주노총과 현대차노조의 광주형 일자리 반대는 기득권 지키기 아닌가? 복지 지원까지 고려하면 연봉 3천만~4천만원은 ‘괜찮은’ 일자리인 게 현실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다분히 정치적 산물로서 일자리 창출의 고정화된 모델이 되는 위험성을 제기하는 거다. 최저임금 1만원, 연봉 2500만원을 얘기하는 시기에 3천만원 자리는 저임금 범위에 들어간다 봐야 한다. 5년간 단체교섭 중단도 초헌법적 발상이다. 산업은행, 지자체 등이 투자해 전체 규모가 1조원이 넘는데 막상 현대차는 400억원도 안 내며 온갖 혜택을 받고 성사 여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라면 앞으로 다가올 쓰나미에 대비해 성벽을 어떻게 쌓을지 논의가 시급하다. 이와 관련된 일자리 토론으로 간다면 무릎을 맞대고 고민할 수 있지만, 현대차 오너들은 이런 의지는 없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에 대해 기업이나 노동계나 지나치게 최악의 경우만 상정하고 대립하는 건 아닌가?
“정말 필요한 사업장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진 않는다. 문제는 이걸 통으로 법제화하는 순간, 예외적 사업장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전일화된다는 거다. 그러면 노조가 없거나 노조 힘이 약한 대다수 장시간 근로 노동자들이 집중포화를 맞는다. 기하급수적으로 꼼수도 늘 것이다. 예를 들어 적용기간이 6개월이 되면 상반기엔 뒷부분에 하반기엔 앞부분에 집중근로시간을 배치할 수 있다. 6개월 그러면 사람 죽는다. 지금도 사고들이 터지는데 이런 제도가 전일화됐을 땐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해진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사고는 곳곳에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고 김용균 동지가 희생된 발전산업이 대표적 사례다. 애초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며 2022년까지 고용노동부에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안을 마련토록 한 건 연간 1600시간 노동에 근접할 때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당기고 싶다면 주 52시간을 빨리 안착시키는 게 순리다.”
―민주노총이 ‘대안 없는 비토세력’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국민들에게 먼저 울림을 줄 수는 없나?
“난 진정성이란 단어가 통해야 한다고 본다. 저들이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구나, 민주노총이 올해 슬로건으로 내건 ‘사업장 담장을 넘어선 사회 대개혁’이 자신들 이익만을 위한 언어적 안전판이 아니라 정말 절박하게 여기고 헌신하는구나를 보여줘야 한다. 그건 한방에 안 된다. 물론 임금반납이나 임금동결 선언 같은 ‘한방’에 대한 갈구가 있는 것 알지만 그건 이벤트일 뿐이다. 그동안 임금에 대해 상생연대기금도 내놓고 하후상박도 제안했는데, 재계가 꿈쩍 않는다. 얼마나 임금을 깎을지 한번 가져와봐라, 이런 태도다.”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성을 전할 구체적인 방안은 뭔가?
“무엇보다 사회안전망을 위한 민주노총의 요구가 더 높아져야 한다. 육아, 돌봄, 공공인프라, 나아가 경쟁적 교육체계를 바꾸는 문제까지. 다양하게 연대의 폭을 넓히며 승자독식의 재벌체제에 끊임없이 문제제기 해야 한다. 또 하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 간 통일로 가는 과정에 적극 노동계도 고민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 공유경제 등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민주노총은 어떤 대비를 하나?
“노동의 미래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했으면 좋겠다. 좁게 보면 제조업의 미래, 즉 산업의 미래 아닌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노동계 대표가 없다. 그래 놓고 호봉제 폐지, 직무제 도입, 유연성 얘기만 주로 다룬다. 노동자들에겐 일종의 ‘공포 마케팅’인 셈이다. 미래 변화가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현장에 ‘사람’이 있음을 인식하고 함께 논의하는 게 우선이다. 외국의 직무급제는 사회안전망과 사회보장 제도가 우리와 질적으로 다르게 확충된 상황에서 시간을 두고 도입됐다. 적어도 거기는 해고가 살인은 아니다. 공포 마케팅을 중단하고 노동의 목소리를 담아내 미래 산업에 대한 정책적 과제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dora@hani.co.kr
■ ‘인간 김명환’ 엿보기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조노총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철도노동자들의 근무복을 입어보이며 웃고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늘 사진에 나오는 조끼였다. 또다른 색도 있다고 했다. “혹시 다른 옷 없나요?” 머쓱하게 옷장을 열어보던 김명환 위원장이 철도노동자들 작업복이라는 짙은 감색 코트를 꺼냈다. 청와대 행사 등엔 양복을 입으라는 젊은 조합원들의 목소리도 적잖다고 한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단 뜻이리라. “그런데 막상 다른 옷을 입으면 잘 안 어울린다고 해요. 노동자 대표로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 영 패션이 안 돼서.” 위원장의 패션 변신을 응원한다.
1985년 성균관대에 입학했다가 2학년 때 제적된 그는 91년 철도청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검수원이 됐다. 아내는 그의 출마 결심에 “아들 하나 3년 군대 보냈다 생각하지 뭐”라고 쿨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 말려도 소용없는 걸 알았을 거예요.” 대학을 나와 ‘플랫폼 노동자’로 사는 큰딸에겐 언제나 “대공장에서 빨간 띠 두른 50대 한국 아저씨의 전형일 뿐”이라고 쑥스럽게 웃었다. 아이가 자라던 시기 대부분을 노조 활동과 해직으로 보내고 고3 땐 파업을 이끌다 감옥까지 갔던 아버지로서의 미안함이 100만 노동자의 대표라고 다를까. 성큼, 그가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