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총리, 문 대통령,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불을 질렀다. “고용 연장에 대해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난 11일,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 열린 올해 부처 업무보고에서 200자 원고지 15장 분량에 이르는 문 대통령의 머리발언 가운데 고용 연장과 관련된 대목은 딱 이 한 문장이었다. 이 발언을 기사화하지 않은 신문은 없었다. 종합일간지(조간) 9개 가운데 8개가 관련 사설을 썼고, 족벌신문과 경제지는 고용 연장을 ‘정년 연장’으로 몰아붙이며 비난했다.
고용 연장 검토 발언이 노년층 표심을 잡으려는 총선용이라는 비난은 별로 신경 쓸 게 아닌 것 같다. 선거가 코앞에 닥치면 언론은 으레 정부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선거를 의식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정부가 선거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려고 법의 경계를 넘어 개입하는 건 안 될 말이지만, 그렇다고 선거가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논쟁이 필요한 대목은 고용 연장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이다. 고용 연장을 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고, 원하는 대로 사람을 뽑고 내보내기가 더 어려워져 한국에서 기업 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청년 일자리가 더 줄어든다는 게 그 논리다.
문재인 정부가 고용 연장을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해 9월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에서다.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 고령화로 나타날 생산연령인구의 급감에 대비를 해야 하는데, 당장 출산을 늘리긴 어려우니 기존 노동력이 더 오래 일하는 방법을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정부는 정년 뒤에도 고용을 연장하는 의무를 기업에 지우는 대신 그 방법은 재고용과 정년 연장, 정년 폐지 가운데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계속고용제도’의 도입 여부를 2022년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고용 연장이 곧 법적 정년 연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내놨다.
고용 연장의 또 다른 측면은 노인 소득 보장이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속도뿐만 아니라 노인 빈곤율도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줬다 뺏는’ 기초연금, 생계비에 못 미치는 국민연금 등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허약하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기에 노인들의 소득을 높이겠다며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용돈벌이에 그치는 단기 일자리라 근본적인 대책이 안 된다. 그렇다면 소득 부족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가 고용 연장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보다 기업에 이득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해고를 못 해 기업 하기 어려워진다, 아버지 일자리 지키느라 자식 일자리 못 준다는 주장도 사람을 자원이 아니라 비용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핑계일 뿐이다. 재계와 일부 언론은 언제나 쉬운 해고와 저비용을 주장해왔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건 특히 최근에 심해졌는데, 이런 행태야말로 한국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일을 하며 느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효능감,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통한 유대감과 안정감 같은 정서적·심리적인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은 젊어서 할 만큼 했으니 정년 뒤엔 여유를 즐기며 쉬겠다는 이들한테까지 더 오래 일하라고 강요할 순 없지만, 아직 더 일하고 싶다는 이들에겐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도 유용하다는 얘기다.
노동자가 정년을 보장받는 곳은 공공부문과 일부 탄탄한 기업에 불과해, 고용 연장을 제도화하면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노력을 더 해 보완해야 할 부분이지 고용 연장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아니다. 임기 후반기 다시 거세지는 가짜 경제 논리에 정부가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할지 두고 볼 일이다.
조혜정 사회정책팀 데스크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