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에 사는 박아무개(52)씨가 집 문 앞에 써 붙인 ‘#늦어도괜찮아’.
‘#늦어도괜찮아’
평소 생수와 식료품, 의류 등 생활필수품을 온라인으로 자주 구입하는 박아무개(52)씨는 지난 7일 경기도 안양의 집으로 배달된 택배상자에 이렇게 적은 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되는 ‘#늦어도괜찮아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한 것이다. ‘#늦어도괜찮아 챌린지’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등 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연대 운동이다. ‘#늦어도괜찮아’, ‘#택배기사님감사합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마련’ 등의 문구를 택배상자에 적고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해시태그와 함께 공유해 노동자들의 과로 대책 마련을 촉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박씨는 오프라인에서도 택배노동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상자 귀퉁이를 잘라 ‘#늦어도괜찮아’라는 문구를 적어 문 앞에 붙여놓았다. 그는 14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 택배노동자들이 쉬는 ‘택배 없는 날’을 맞이해 이번주에는 온라인 주문도 하지 않고 있다. 박씨는 12일 <한겨레>에 “택배노동자들이 과로로 목숨을 잃는다는 기사를 보고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다. 배송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으니 모쪼록 택배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8월 14일을 택배없는 날로 지정하라!’에서 참가자들이 택배노동자에게 휴가티켓을 전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엔 박씨처럼 챌린지에 동참한 시민들이 올린 글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배아무개(60)씨는 “고양이 사료를 거의 매주 인터넷으로 주문해 택배로 받았지만 이번주에는 택배 주문을 하지 않고, 마트와 오프라인 매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택배노동자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나누자는 의미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소비자만이 아니라 판매가 급한 일부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들도 13일을 ‘주문 안하는 날’로 정하고 자발적으로 연대에 나서고 있다. 이미 들어온 주문 때문에 배송이 밀리고 연휴가 끝난 뒤 택배물량이 폭증해 택배노동자들에게 부담이 갈 수 있으므로 사전에 이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에스엔에스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아용품을 파는 박아무개(30)씨는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택배없는날’ 해시태그와 함께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는 의미로 12일 이후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공지글을 올렸다. 그가 발송하는 물량은 매주 300여개에 이른다. 박씨가 올린 공지에는 항의나 불만 글 대신 “택배노동자를 응원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박씨는 “온라인 쇼핑몰을 하다보면 택배노동자들과 연락하는 일이 많은데 밤늦게까지 배송 업무를 하고도, 때로 파손된 상품 민원까지 받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다”며 “택배 없는 날을 맞아서 노동자들은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우리 사회는 과로로 목숨을 잃는 택배노동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노동 환경 개선을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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