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택배노동자에게 휴가 티켓을 전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씨제이(CJ)대한통운·한진·롯데·로젠 등 주요 택배사와 우체국이 국내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휴무일(8월14일 ‘택배 없는 날’)을 선언한 배경에는 ‘심각 단계’에 이른 택배노동자들의 과로·과로사 문제가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소비’ 증가로 택배사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택배사 대리점과 도급·위탁 등의 계약관계를 맺어 노동시간의 제한 없이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7명이 과로로 숨졌다.
대표적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노동자)인 택배노동자들의 휴가 요구는 2017년 1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가 출범한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돼왔다. 사실상 사업주에게 종속돼 노무를 제공하지만, 계약 형식상 ‘사장님’(개인사업자)인 택배노동자들은 주 52시간제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더구나 배달한 물량만큼 받는 수수료는 십수년째 동결이어서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처지다. 2018년 한국교통연구원의 ‘택배서비스산업 일자리 실태 조사 분석’에선 택배노동자들이 하루평균 12.7시간, 월평균 25.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가 번진 올해 상반기엔 택배량이 폭증하면서 택배노동자들의 과로·과로사도 심각해졌다. 12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업무와 관련해 숨진 택배노동자는 모두 27명(사고 9명, 질병 18명)인데, 이 가운데 30%가 넘는 인원(9명)이 올해 상반기에 목숨을 잃었다. 특히 이 중 업무상 질병으로 숨진 7명은 모두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이었다.
택배노동자의 8월 휴가는 2014년 케이지비(KGB)택배, 지난해 씨제이대한통운 등에서 드물게 실현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에 그치거나 회사의 ‘묵인’에 따른 것이어서 전체 택배노동자가 실질적인 휴식을 취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올해는 14일부터 17일까지 최장 나흘을 쉴 수 있는데, 이는 노조의 공식 요청을 한국통합물류협회 쪽이 지난 7월18일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택배노동자들은 이런 휴식이 ‘이벤트’에 그쳐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휴식권 보장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과로·과로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세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하루 6~7시간이 소요되는 분류작업을 대신할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업체의 당일배송 강요가 해소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택배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 주 5일 근무 시행과 공식휴무일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경동·대신택배 등 중소 택배사와 쿠팡·에스에스지(SSG)닷컴·마켓컬리 등 자체 배송망을 갖춘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14일에도 정상 배송을 진행한다. 전자상거래 업체의 배송기사들은 특고노동자 신분이 아니라, 원청 또는 도급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법정근로시간 등을 준수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선담은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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