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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단독] 평택항, 현대중…줄잇는 참사 뒤에 ‘불안정 고용’ 있었다

등록 2021-05-12 20:09수정 2021-07-29 13:10

이선호씨 죽음 부른 불법도급
이씨 고용 하도급업체-원청업체
‘단순 인력공급’ 하는 불법 계약
회사쪽 필요에 따라 일용직 둔갑
쪼개진 업무 탓 위험 인지 어려워

현대중, 전형적 ‘위험의 외주화’
하청업체 현대중과 한달짜리 계약
해당 공정 끝나면 언제든 해지 가능
지난달 22일 대학생 이선호(23)씨는 덮쳐 숨지게 한 평택항 개방형 컨테이너의 모습.(위 사진) 지난 8일 오전 장아무개씨가 추락 사고를 당해 숨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작업 현장에 장씨의 신발 등이 놓여 있다.(아래 사진)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지난달 22일 대학생 이선호(23)씨는 덮쳐 숨지게 한 평택항 개방형 컨테이너의 모습.(위 사진) 지난 8일 오전 장아무개씨가 추락 사고를 당해 숨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작업 현장에 장씨의 신발 등이 놓여 있다.(아래 사진)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

최근 경기 평택항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 사고에 복잡한 원·하청 고용 구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이 하청업체와 불법으로 인력 공급 계약을 맺는 등 현장 인력과 다양한 형태로 쪼개어 계약을 맺으면서 위험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망가졌거나 하청업체에 외주화로 위험 업무를 떠맡기면서 참혹한 산재가 발생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청소 작업을 하다 300㎏ 무게의 날개에 깔려 사망한 이선호(23)씨는 형식적으로는 하도급업체 ‘우리인력’ 직원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원청업체인 동방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노동자였다. 현행법상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파견 직원처럼 지휘·감독하는 건 불법이다. 하도급 계약이란 하청업체가 원청업체가 맡기는 일감을 마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다. 사업주가 사옥 건물 청소를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청업체에 해당 업무를 일임하기 때문에 원청의 지휘·감독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동방과 우리인력이 쓴 ‘인력 공급 계약서’. 하도급 계약이나 구체적인 도급 업무가 설정돼 있지 않다.
동방과 우리인력이 쓴 ‘인력 공급 계약서’. 하도급 계약이나 구체적인 도급 업무가 설정돼 있지 않다.

게다가 동방과 우리인력은 업무 완수를 목적으로 하는 하도급 계약이 아니라 단순 인력 공급만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상 원청이 하도급 계약이 아니라 단순 인력 공급만을 목적으로 계약하고 인력을 공급받는 건 불법이다. <한겨레>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동방과 우리인력 간 ‘인력공급계약서’를 보면, 우리인력이 ‘2019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1년 간 동방의 요구에 따라 용역을 수행하도록 한다’고만 적혀 있을 뿐, 동방이 우리인력에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도급할 지는 정하지 않았다.

동방은 이런 불법 계약을 통해 우리인력에서 ‘수시로 출근을 조정할 수 있는’ 인력을 공급받았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계약서 명칭부터 하도급 계약서가 아닌 ‘인력 공급 계약서’인 점, 도급 업무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점 등을 봤을 때 도급회사가 수급회사의 전문성이나 수급회사의 기능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동방과의 묵시적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동방 쪽이 사용자였다’는 이씨 유족과 동료들의 설명과도 부합한다. 이씨는 1년 4개월 동안 동방의 지시를 받아 일했고, 사고 당일에도 동방 직원의 지시에 따랐다고 한다. 매일 아침 동방이 우리인력을 통해 업무의 내용과 필요 인원을 전달하면 우리인력이 그에 맞춰 인력을 공급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동방 직원이 직접 전화로 지시할 때도 있고 우리인력을 통해 업무할 인원을 정해서 요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인력 관계자는 <한겨레>에 “사람을 대 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동방에서 받아 수수료를 떼고 노동자에 지급할 뿐, 우리가 일을 맡아서 하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불법 계약 상황에서 고용된 이씨는 유사시에 일용직 노동자로 둔갑하기도 했다. 지난달 이씨의 사고로 근로감독관이 현장 조사를 나왔을 때 동방은 이씨를 두고 ‘일용직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우리인력이 미리 직업소개소로 등록해 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택항 현장엔 이씨처럼 물류업체들이 ‘그때그때 데려다 쓰는’ 인력으로 가득하다. 한 달 단위로 일감을 받거나 심지어 시간제로 일하는 지게차 기사들도 많다. 김기홍 민주노총 평택안성지역노조위원장은 “화주들이 비용 절감과 탄력적 인력 운용을 이유로 고정된 업무마저 일용직 노동자로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잘게 쪼개진 업무 환경 탓에 직원들이 이씨가 처한 위험을 제때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씨가 평택항 수출입화물창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지게차 기사 등이 화물 하역을 마친 개방형 컨테이너를 접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안전핀을 제거한 사람(우리인력)과 날개를 접은 사람(자영업자 기사), 이씨에게 컨테이너로 가서 쓰레기를 주우라고 지시했다는 사람(동방)의 소속이 다 달랐다. 날개를 접은 기사는 이씨가 컨테이너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른 직원에게 전달받지 못한 채 무전 지시에 따라 작업했고, 참사가 발생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원청이 복잡한 공정 단계를 쪼개어 외주업체에 나눠주다 보면 당장은 효율이 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외주업체끼리 소통이 안 돼 위험요인을 차단하지 못한다”며 “업체들이 각자 맡은 일만 하다 보니 한쪽에서 인화성 물질을 다루는데 한쪽에서 불을 붙이는 식의 상황이 생기곤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원유수송선 원유 탱크 상층부에서 추락해 사망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ㄱ사 소속 용접공 장아무개(40)씨도 복잡한 원·하청 고용 구조 아래 놓여 있었다. <한겨레>가 입수한 현대중공업과 ㄱ사의 하도급계약서 등을 보면, ㄱ사는 4월28일부터 5월31일까지 현대중공업과 한 달짜리 용접·취부 계약을 맺었고, 장씨는 ㄱ사에 지난 2월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장씨가 ㄱ사와 쓴 계약서를 보면,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를 계속할 수 없거나 을(장씨)이 담당하는 해당 공정이 종료된 때, 도급계약이 해지될 때’ 계약 기간이 만료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실상 원청의 계약 종료로 하청업체 직원인 장씨가 언제든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8일 숨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직원 장아무개씨가 하청업체와 맺은 근로계약서 갈무리. 도급계약이 해지될 경우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 8일 숨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직원 장아무개씨가 하청업체와 맺은 근로계약서 갈무리. 도급계약이 해지될 경우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설명을 보면, 장씨가 일하던 원유수송선 안의 원유 탱크는 실내조명이 어둡고 직각사다리가 아닌 수직사다리만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고 이전에도 ‘추락 위험이 있어 안전망이나 직각사다리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직원들의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 달짜리 계약을 맺은 직원이 작업 지시를 거부하거나 추가적인 안전 조처를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사례인 것이다. 김형균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정규직이 아닌 이상 하청 직원이 작업을 거부하거나 안전 조처 개선을 회사에 요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직원의 안전 관리를 맡았던 ㄱ사도 안전 관리 감독이 미흡했던 정황이 있다. ㄱ사의 안전 관리 감독 현황 자료를 보면, ㄱ사는 용접에 관한 작업 내용을 정리한 ‘표준작업지도서’의 작업 대상에 용접과 관련 없는 직원 이름을 쓰거나, 사쪽에 제출한 회사 직원 명단에 없는 이름을 적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원청이 작업장 내 산업 안전을 책임지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원·하청의 불안정한 고용 관계가 고착화되면서 현장에선 하청 노동자의 안전 공백이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청이 포괄적으로 해야 할 사업장의 안전 관리 책임이 법 개정 이후에도 상당 부분 하청업체로 떠넘겨지고 있고 하청업체는 기간 내에 일을 마치는 데 집중하느라 제대로 안전 관리를 하지 않는다”며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을 계기로 사업주를 처벌하거나 영업을 강력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고 이제껏 느슨해져 있던 법원 판단이나 고용노동부의 행정제재도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다은 박준용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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