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뉴스를 본다. 아니, 볼 수밖에 없다. 잠시라도 멀리하면 세상이 너무 바삐 변해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의 감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사회현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척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강박 때문에 그저 본다.
그런데 요즘처럼 이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때가 있었을까 싶다. 대통령 선거에 연이어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치 뉴스 보도가 급증하면서 견뎌내야 할 정도의 피로가 몰려온다. 상대를 바닥까지 주저앉히는 자가 승리하는 정치판의 비정한 싸움을 실시간으로 봐야 하는 고통은 너무 크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뉴스가 피할 도리 없이 쏟아진다. 증오와 경멸, 조롱과 편가르기식 ‘고자극’ 실시간 중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 언론과 미디어가 시청자이자 독자인 나를 존중하기는커녕, 클릭 먹잇감 취급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쓰라리다. 허락 없이 불쑥 끼어드는 경마식 실시간 보도의 먹이가 되는 기분이 들어 뉴스 마주하기를 멈추고 싶어진다. 외면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오른다.
미디어를 전망한다는 부질없어 보이는 글쓰기에 지쳐 멈추고자 했던 마음이 3분의 2 지점에 도달했을 즈음, 새가 날아왔다. 지난 주말에 종영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누군가 우리를 비열한 방법으로 바닥으로 몰고 가더라도 몇초의 설렘을 만들어 스스로 채우고 견디라 말을 건넸다. 그것이 사람이든 세상이든 언론이든 미디어든 하루 5분 숨통 트이는 순간을 만들고 차곡차곡 받아들이면 살 만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 염미정은 “개새끼”라고 부르던 형편없이 나쁜 전 남친이 얼마나 “개새끼”인지 증명하고자 1대 다수인 세상에 자신을 내동댕이치려 했었다. 자신조차 완전히 바닥이 된다는 걸 알고도. 그러나 염미정은 바닥까지 망가지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을 성역을 끝까지 믿고 기다렸기 때문에. 힘들게 하는 대상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그 대상을 환대하고 용서함으로써 천천히 비로소 스스로 해방된 것이다. 그 형편없는 대상이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이고 혐오를 부추기는 뉴스라면 나는 환대해줄 수 있을까. 성역을 떠올리며 끝까지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주요 무대는 경기도 어디쯤 있을 법한 가상의 지역 ‘산포’다. 작가는 산포를 “경기도는 노른자 서울을 감싸는 흰자”로 묘사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산포된 사람들의 디아스포라로서의 공간. 산포는 내게 흡사 언론 지형과 구조로 인해 떠밀려 추방당한 진실의 거처이자 상징으로 다가왔다. 달걀프라이 노른자 같은 메이저 언론과 포털 사이트에 떠밀려 흰자의 목소리는 산포되고 잘 들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성역이라 여겼던 언론의 존재와 가치가 뿌리째 뽑혀 흩어질까 두렵다.
누구보다 빨리 세상 소식을 전하며 존재를 증명하고자 애쓰는 모든 언론인에게 박해영 작가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작가는 전작 <나의 아저씨>를 통해 “요란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근원에 깊게 뿌리 닿아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하고 싶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독자와 시청자를 진심으로 추앙하고 환대함으로써 스스로 해방을 맞이하는 언론인들이 하나둘 늘어나길.
최선영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