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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지역미디어 지원, 지방정부가 답일까

등록 2022-06-14 18:14수정 2022-06-15 02:34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전국에 ‘구씨 추앙’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에서 정작 나를 사로잡은 건 가상의 도시 산포시 주민들이 겪는 일상의 차별에 관한 내용이었다. 계란 흰자와 노른자라는 뼈 때리는 비유에서부터 지하철과 전철을 구별 짓는 일상적 언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에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미묘하게 엇갈리는 차별의 순간이 잘 포착돼 있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하나의 수도권으로 상정해온 통념에 일갈을 가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들은 때로는 신선하게, 때로는 착잡하게 다가왔다.

지난달 종영한 드라마가 생각난 것은 며칠 사이 지역방송 활성화에 관한 일련의 논의를 접하며 지역을 다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역방송과 미디어자치권의 미래’를 주제로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를 비롯해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지역방송발전위원회가 추진하는 권역별 지역방송발전협의체 구성에 관한 움직임이 그것이다. 논의의 주요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방송위원회 또는 지역방송발전협의체 등 이름은 달랐지만 지역방송 활성화를 위해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지점에서 이전의 논의들과 구별됐다.

논의의 구체적인 진전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학계와 관련 단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지역방송을 활성화시키자는 주장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게 했다.

지방정부가 지역미디어 지원의 직접적인 주체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방향성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거버넌스의 성공이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때 가능하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크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거버넌스라는 돌파구가 공론의 사막화를 앞당길 소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지원정책의 칼자루마저 쥐게 된다면, 지역방송이 지방정부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생각만큼 간단하지도, 수월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우려는 지금의 논의가 켜켜이 결이 다른 복잡한 지역방송 문제를 이제는 지역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지역의 문제로 외면해버릴 수 있다는 의구심에서 생겨났다. 중앙정부가 자치와 분권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에 숨어 지역방송 문제는 이제부터 해당 지역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손을 놓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마저 들었다. 거버넌스를 구축하자는 논의의 시발점이 기획재정부의 인색한 지원금 책정 규모를 확대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심화되었다는 대목은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권역별 지역방송위원회가 구성된다 할지라도 위원회 운영에 관한 표준 모델을 제시하거나 중간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등 중앙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는다. 무엇보다 중앙정부는 지역방송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보장된 독립기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지역방송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항상 우려와 기대를 경청할 중앙의 의사결정권자가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흰자들의 외침은 메아리의 방을 가득 채울 뿐 노른자에 다다르지 않는다.

그러나 흰자 없이 노른자만으로 존재하는 계란은 없다. 콜레스테롤을 염려하는 이들에게는 흰자만도 못한 게 노른자다.

한선 |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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