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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숫자로 참사 다루는 비인간적 보도

등록 2022-11-16 07:00수정 2022-11-16 10:22

[최선영의 미디어 전망대]
경찰이 ‘이태원 참사’ 현장 통제를 해제한 뒤 첫 주말을 맞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 추모객들이 오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경찰이 ‘이태원 참사’ 현장 통제를 해제한 뒤 첫 주말을 맞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 추모객들이 오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020년 5월24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종이신문과 온라인 메인 화면에 코로나로 유명을 달리한 10만명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흡사 코로나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라 할 만큼 길었다. 이 부고 기사를 기획한 편집팀은 지면에 10만개의 점이나 막대그래프로 사망자 숫자를 기입하는 건 희생자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것이 국가 차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과 삶에 대한 기억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애도 방식은 간결하고 엄숙했다.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며 희생자의 존엄하고 아름다운 삶을 기렸다. “가족들 사이에서 비프스튜 잘 만들기로 유명한 지저스 오만 멜렌데즈, 49살, 뉴욕”,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한한 열정을 보였던 루크 워코프, 33살, 뉴욕”, “한달 동안 용감하게 코로나와 사투를 벌였던 존 조셉 크로우, 56살, 플로리다”, “눈에 항상 미소와 반짝임이 있었던 빈시 테레사 드로즈, 57살, 알링턴”.

2020년 5월24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코로나로 유명을 달리한 10만 명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긴 사망자 명단에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두가 사회적 비극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담겨 있다. 숫자는 비극의 크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지만, 인간의 조건에 숫자가 적용될 경우 결코 개인의 삶을 나타낼 수 없다. 그가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났는지 숫자 뒤에 은폐된다. 숫자로 표현된 죽음은 그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최근 한 달간 코로나에 의한 사망자는 크게 늘어나 11월14일 기준 일주일 동안 328명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 평균 47명에 달한다.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는데도 언론보도에서 눈에 띄는 건 사망자 증가에 대한 숫자와 그래프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다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생명에 대한 애도와 슬픔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숫자로 죽음을 다루는 미디어의 비인간적이면서 무기력한 보도는 이태원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태원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로서 참사(慘事)와 비참한 죽음으로서의 참사(慘死)라는 이중성격을 지닌 사회적 참사이자 국가적 참사이다. 개인의 불운한 사고가 아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 중 일부는 희생자 인권 보호, 유가족 동의를 핑계 삼아 희생자의 삶과 사연을 거의 조망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재난 보도 취재 윤리와 희생자 취재 가이드라인을 정립한 해외 언론들은 사고 초기부터 희생자의 사연을 담아 애도를 표했고, 꿈 많던 젊은이들의 목숨에 대한 책임은 정부 당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 언론에 바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마식 보도는 멈춰야 한다. ‘토끼머리띠’를 한 남성과 아보카도 오일을 뿌렸다는 ‘각시탈’ 괴담을 쫓아 경찰청 특수본의 헛발질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보다 참사 원인과 책임 규명을 비판적 시각에서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예컨대 참사 희생자들이 놀러 갔다 당한 사고니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의 소문을 무분별하게 인용해 마치 여론인 양 실어나르는 것도 문제다. 이것이야말로 2차 가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고 초기에 시민 사회 모두가 유족과 슬픔을 나누고 공개적으로 희생자에 대한 관심을 쏟아야 마땅했다. 현재까지 사망자 158명, 사회적 참사에 희생된 소중한 생명을 숫자 덩어리로 애도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최선영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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